대신이라는 말
-암 병동에서
심인자
한 방울 피도 못 되는 지랄 같은 슬픔이
목울대 밀어 올리며 새벽을 찍어 누른다
어둠 속 불 켠 전자시계 초초히 떨며 가고
불면을 이기지 못한 난장판 심연은
삽날에 뒤집히는 두려움 끌어안고
속죄의 제물을 자원한다 대신은 안 될까요
말라버린 눈물과 뭉그러지는 기도만
투두둑 가슴 안에서 때 없이 분질러진다
서른은 너무하잖아요
내 생을 떼 흥정한다
심인자 시조집 『대신이라는 말』, 《책만드는집》에서
삶을 바꿀 수 있거나 아픔을 대신 아파할 수 없는 게 生인듯싶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것은 외적인 환경이지 내적인 환경은 아니다.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키는 것도 온전히 내 몸에서 이루어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생각도 맑고 흐리고 슬프고 기쁘다는 것도 다 내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이다. 심인자 시조집의 표제 작품 「대신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아픔을 대신 아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생각에서 시작하여 대신할 수 없는 부정의 현실에서 고뇌해야 하는 처지의 입장을 나타내 주는 마음을 펼쳐 보이고 있다. 사람의 몸도 수만 가지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작은 뼛조각 하나 어긋나 있어도 통증이 오고 아픔이 뒤따른다. 하물며 암이라는 것에 억눌려 있는 한 사람의 생명을 놓고 그 간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현실의 짐이다. 바꿀 수 있는 방법과 수단이 있다면 어떤 비책을 써서라도 바꾸어내고 싶을 것이다. 내 생을 떼 흥정을 한다는 마음에는 그 모든 희망을 담아내기 위한 기도뿐이지만, 그 기도도 뭉그러지고 가슴에서 분질러지고 마는 아픔으로만 남아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세상의 어둠을 이겨내는 게 희망이라고 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도 그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대신이라는 말은 보로 그 희망을 꺼트리지 않으려는 그 간절함을 소망하는 메아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