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깡촌이라서 서러운 주민들
[비로봉에서] 깡촌이라서 서러운 주민들
  • 심규정
  • 승인 2021.04.11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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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평소 드라이브하면서 원주시 외곽 읍면지역을 자주 방문한다. 목가적인 시골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부모님 나이 됨직한 어르신을 지켜보면 “아버님, 어머님이 아직 살아계셨으면…”하고 되뇐다. 원주시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곳(2,178명), 젊은 층 대부분 도시로 나가고 고령층만 상당수 사는 곳, 귀래면을 지나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석산이 밀집된 귀래1리의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곳에 현재 5곳의 채석단지가 있다. 이곳을 오가는 차량이 이용하는 도로는 404번 지방도(왕복 2차선)가 유일하다. 그런데 민가가 밀집된 승지골 입구에서부터 귀래3리 마을회관까지 1.04km 구간은 주민들이 차도를 보도 겸 이용하고 있다. ‘도로의 흉기’ 대형 덤프트럭이 쌩쌩 내달리는 가운데 지팡이, 실버카 등 여러 보행 보조기구에 의지하는 백발의 어르신들이 걷는 모습은 보기에도 아찔하다. 바람이 심하게 불 때면 트럭이 일으키는 바람과 겹쳐 어르신들이 기우뚱거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환경영향평가서에 담긴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서에는 “사업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문막읍 포진2리·비두리, 귀래면 귀래리의 많은 주민이 차량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의견서에 따라 문막읍 비두초교 앞을 살펴봤다. 역시 보도가 없이 차도로 학생들과 주민들이 보행하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현재 채석장을 드나드는 차량은 하루 800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자는 현재 채석단지 허가면적(255,241㎡)의 3.7배에 해당하는 699,424㎡를 추가로 확장하겠다고 한다. 이 계획대로라면 덤프트럭의 통행량이 앞으로 얼마나 증가할지는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라디오다. “도로 등 교통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차량이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주장은 백번 공감한다.

이렇게 열악한 도로 여건 속에서 주민들의 안전은 담보될 수 없다. 오랫동안 강 건너 불구경한다면 안전사각지대로 더 굳어질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사람이 얼마나 산다고…”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당국은 앞으로 민가가 밀집된 지역에 보도 확보와 함께 과속방지턱 추가설치 등 보행 환경 개선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주민들이 생활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한층 강화된 지도단속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간과해선 안 될 부분 하나 더. 현재 귀래면에서 생산되는 골재의 80% 이상이 서울, 경기, 인천, 충청권에 반출되고 있다. “골재 수급 계획을 수도권, 강원권, 충북권으로 확장해서 계획할 것이 아니라 강원권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가장 골재 수급량이 많은 수도권을 포함한다면 전국의 모든 지역이 채석단지가 필요하다.”라는 환경영향평가협의회 심의 의견서는 그래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요즘 희뿌연 미세먼지가 온 산하를 뒤덮는 날이 잦다. 여기에 채석단지를 오가는 덤프트럭이 일으키는 비산먼지, 소음으로 주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언제까지 최악의 생활환경에 내몰려야 하는가. 채석단지가 점점 대형화하면 생활공간은 점점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누가 귀래면을 이렇게 만들었나. 주민들도 당장 눈앞의 달콤한 마을발전기금에 현혹되어 삶의 질 개선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다면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마음의 빚을 질 수밖에 없다. 적막강산 귀래면이 점점 궁벽하고 황폐화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지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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