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후회의 값
[안부를 묻다]후회의 값
  • 임이송
  • 승인 2021.04.25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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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누구나 어찌할 수 없는 후회 하나쯤은 안고 산다. 나 또한 그렇다. 첫아이가 밤새 보챘을 때 짜증냈던 것, 행방불명이 된 제자를 더 이상 찾지 않은 것, 자주 생각나지만 연락이 안 되는 친구를 찾지 않은 것,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 이 모두가 후회된다.

그 외에도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게 있다. 운전이다. 면허는 20년 전에 땄다. 그간 도로 연수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여태 운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예쁘게 태어나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공부를 많이 하거나 출세를 하는 것들은 내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운전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래 전 친구와 길을 나섰다가 맞은편에서 중앙선을 넘어오는 트럭과 충돌한 적이 있다. 운전을 했던 친구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몇 년 후 같은 장소에서 남편의 차가 종잇장처럼 구겨진 걸 또 보게 되었다. 두 장면은 고스란히 공포로 남아 운전에 대한 갈증이 커갈수록 트라우마로 되살아났다. 그 스트레스는 곧잘 꿈으로 이어져 차가 하늘을 나는, 구불구불한 산길도 아주 능숙하게 운전하는, 고속도로도 쌩쌩 달리는 꿈으로까지 나타났다. 

원주라는 지역 특성상 움직이려면 차가 필요하고 내 나이도 더 이상은 운전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수없는 고민 끝에 올봄 도로연수 등록을 또 했다. 등록을 하고 돌아서는 순간 온몸에 진땀이 났다. 취소하고 싶은 마음에 운전학원을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거렸다. 거듭 생각한 끝에 528,000원을 후회의 값으로 치부하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8시간의 도로연수를 끝낸 후 세 번 운전을 나갔다. 여전히 무섭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눈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속도 울렁거렸다. 그러나 새로운 것들도 보였다. 다른 사람의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속도였다. 시속 30, 40, 50, 60, 70, 80인 곳이 각각 달랐다. 차가 도로의 곳곳을 다른 속도로 다닌다는 걸 몰랐다. 그리고 불법주정차를 한 차량이나 운전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도로의 상태나 양보운전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아직은 모르겠다. 연수비로 치른 것이 제값을 할런지 아니면 후회의 값이 될지는. 

사실, 운전보다 나를 더 오랫동안 옭죄어 온 게 있다. 강화 할머니에 관한 것이다. 교직에 있을 때 할머니 댁에서 자취를 했다. 그때 할머니는 내 어머니보다 더 살뜰히 나를 보살펴주었다. 3년 간 내방 연탄불을 갈아주었고 아침저녁 밥도 지어주었다. 할머니는 그 집안에서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젊은 시절 자식을 낳지 못해 시집에서 쫓겨나 홀로 지내다가 예순이 넘어 그 집에 환자를 돌보러 들어왔다가 눌러 살게 된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몫을 아껴 나를 챙겨주었다. 그때가 할머니 나이 여든이었다. 나를 위해 매일 새벽기도를 갔고 가을이면 갈대를 꺾어 내방 앞에 한 아름 갖다놓곤 했다.

결혼을 하여 강화를 떠나온 후에도 찾아뵙고 연락을 하며 지냈다.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은 상심에 빠져 있을 무렵,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셨다. 몇 번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그러나 정작 위독한 상황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죽음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한 계절이 지나고 할머니 댁에 전화를 했을 땐 결번이라는 메시지가 나왔고 그 집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가끔 할머니가 살아있을 거라는 착각을 한다. 어디선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어떤 안간힘을 써도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후회를 없앨 방법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돈으로 치를 수 있는 후회는 후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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