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권리(權利)와 의무(義務)사이에서
[살며 사랑하며]권리(權利)와 의무(義務)사이에서
  • 임길자
  • 승인 2021.05.02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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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센터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센터 정토마을 원장]

지난 토요일 아침 시설을 이용하는 어르신의 자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13시에 어머님 면회를 하고 싶다.”고. 코로나19로 인하여 시설에서는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나 어르신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사전예약제로 면회를 허용하고 있다. 사전 약속을 부탁하는 이유는 가족들 간 거리두기 및 동선(動線) 중복을 막기 위해서다. 전화 예약은 사무실 직원들이 근무하는 시간(평일)에 해 주길 바라고, 실제 면회일정은 보호자들이 희망하는 날과 시간으로 편의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그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긴급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즉흥적이고 일방적인 경우가 많다. 언제 어디에 있던지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걸 잊은 적 없고, 어떤 상황이든 보호자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입장이란 것도 내려놓은 적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맘 편한 휴식이란 느끼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얼마 전 “공무원의 쉴 권리는 누가 보장해 주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점심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심시간 휴무제 예고’ 관련 기사를 읽었다. 민원부서에 근무하는 어떤 공무원은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탕비실에서 도시락을 먹다가 음식물을 채 삼키지 못한 채 민원인에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해야 하고, 또 어떤 이는 “어느 날에는 결국 음식을 다 먹지 못한 채로 업무를 재개하는 경우도 있다.”고 경험을 말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서는 점심시간 휴무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과 법정 외 근무시간인 점심시간에 업무를 본다는 점, 공무원의 쉴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점심시간 휴무제 도입을 요구했다. 점심시간 휴무제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민원인들을 위해 무인민원발급기 설치를 확대하는 등 인프라가 구축되면 문제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행정복지센터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꼭 점심시간을 이용해야 할 이유가 있어서 짬을 냈을 것이다. 여러가지 제증명은 무인민원발급기를 통해 증명서 발급이 가능하지만, 모두에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필자가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하면 무인발급기가 엄지손가락 지문을 인식하지 못해 부득이 민원창구를 찾은 사례가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실시한 2020년 공직생활실태조사 ‘공공봉사동기인식조사’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는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라는 질문에 20대의 경우 42.3%, 30대의 경우 44.3%, 40대에서는 57.7%, 50대에서는 70.4%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어느 지자체장은 “세상이 바뀌었지만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 시민의 봉사자”라며 “공직자가 조금 불편하고 힘들어야 시민들이 편하다. 그것이 공무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공무원은 “지금까지 민원인 배려 차원에서 양보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지방공무원법상 명시된 점심시간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요즘 사회 곳곳에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임)들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권리 주장에 적극적인 MZ세대들이 공직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워라밸(work-life balance ‘워크라이프 밸런스’를 줄여 이르는 말로, 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이르는 말)을 중시하고 공정한 처우를 요구하고 있다. 그 또래의 자식을 두고 있는 부모이기에 그들의 언어가 더 귀에 꽂힌다. 

권리(權利)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처리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자격으로 특정의 이익을 주장하거나 누리기 위해 그의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법률상의 능력'이다. 또 의무(義務)는 '당연히 해야 할 일로서 도덕적으로 필연성을 가지는 요구로서 인간의 의지 및 행위에 부과되는 강제나 구속'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대민서비스를 제공하는 분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세상이 따뜻해진다. 그들이 불행하면 세상도 어둡고 불편해질 것이다. 그들의 행복은 곧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리(權利)와 의무(義務)사이에서 불편한 진실의 갈등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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