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 칼럼> 재판에서 이기고도 돈을 돌려준 사람
<이재구 칼럼> 재판에서 이기고도 돈을 돌려준 사람
  • 이재구
  • 승인 2017.07.17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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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구<변호사>

변호사 개업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매매계약의 해제와 관련된 사건을 선임한 적이 있다.매수인은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급한 후 마음이 변하여 “매도인이 토지의 진입로를 내주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억지 주장을 하면서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매수인은 ‘매도인의 계약위반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얼마 후 매수인은 법원에 계약금 등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실제 매도인은 진입로 개설에 필요한 농지전용허가를 받아서 도로를 개설했다. 매수인이 주장하는 것은 도로의 상태였는데 진입도로 사용하는데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매수인은 토지를 살 생각이 없어지가 괜히 트집을 잡는 것이 명백했다.


법원은 ‘매도인이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매수인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으므로,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몰취하고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매매계약의 계약금은 위약금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매계약이 해제되면 매도인이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몰취하게 된다. 매수인은 즉시 항소하였다. 항소심도 이길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매도인이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재판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계약금을 돌려주고 재판을 끝내고 싶습니다.”
계약금을 포기할 생각라면 진작 포기하지 왜 1심 재판까지 이겨놓고 항소심에서 뒤늦게 포기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매도인은 며칠 후 다시 전화를 해서 이미 계약금을 다 돌려주고 끝냈다고 하였다.
1심에서 지불한 변호사 비용에 대하여 묻자 그것도 그냥 포기하고 자신이 손해를 감수하겠다고 했다.


1심 재판에서 이겼는데 항소심에서 포기를 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의뢰인의 태도에 속이 많이 상했다. 억지를 쓰는 상대방에게 모든 것은 순순히 양보하고 돌려준 이유가 궁금했다. 그 의뢰인은 몇 년 전에 직장암 수술을 했다고 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상대방이 자신이 사는 마을 주민들에게 자신이 재판에서 이긴다고 큰소리 치고 가고, 1심이 끝나면 항소도 할 것이고 대법원까지 재판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1심 판결이 나고 항소심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1년 이상이 흘렀다. 그 동안 재판 때문에 많은 신경을 썼던 의뢰인은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살도 빠지고 몸 상태도 악화되었다. 결국 의뢰인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암이 다시 발병할 것 같은 상태까지 건강이 악화되었다. 더 이상 재판에 신경을 쓸 여유도 없었고, 계속 신경쓰다 보면 암이 재발하여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비용을 지출하고 1심 재판까지 이겼지만 결국 항소심 계속 중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수인에게 받은 돈을 모두 돌려준 매도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계약금은 원래 내 돈이 아니었어요. 내가 쓰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어차피 돌려줄 돈이라고 생각을 바꾸면 재판을 포기하고 돈을 돌려주더라도 속상하지 않을 것이다. 의뢰인은 자신이 먼저 상대방에게 굴복하고 돈을 돌려주었지만 더 이상 그로인해 억울한 생각을 갖지 않으려고 매수인에 대한 미운 감정을 버렸고, 자신이 몰취할 수 있었던 돈에 대한 욕심도 버리면서도 자존심도 버렸기 때문에 건강과 마음의 평온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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