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창간 7주년, 공적 저널리즘 구현을 위한 다짐
[비로봉에서] 창간 7주년, 공적 저널리즘 구현을 위한 다짐
  • 심규정
  • 승인 2021.03.0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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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원주신문이 창간 7주년(7일)을 맞았다. 주변에서 “벌써….”라는 반응이 나온다. 창간 초 겪었던 홀대(?), 고발성 기사에 대한 압력, 피로가 누적되어 병원에 실려 갔던 일, 당시 순간순간이 지문처럼 지금도 망막에 찍혀 있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것은 “꼭 성공할 수 있다.”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인구 30만 명이 넘는 도시에 지역신문이 1개라니. 여론의 다양성 측면에서, 경쟁하면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측면에서 도전 정신이 솟구쳐 올라 일사천리로 정기간행물 등록증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 SNS 발전으로 인한 미디어 환경의 지각변동, 여기에 미증유의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은 급락하고 있다. 이미 10년 전부터 언론학자들은 “올드미디어인 신문은 죽었다.”라고 했지만, 기록성, 심층성, 일목요연함 때문에 신문은 질긴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할 것 같은 불안감, 이러다 죽지는 않더라도 꼬꾸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여전히 감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란 논란처럼 저널리즘의 본령이 우선인가, 비즈니스가 우선인가라는 해묵은 논쟁은 여전히 풀기 힘든 숙제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론은, 언론인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영혼이랄까, 정도랄까, 이런 걸 머릿속에 꼭꼭 붙들어 매고 있어야 한다. 취재원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 편집 방향이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무분별한 의혹 보도를 마치 언론의 통쾌한 채찍질로 착각하는 모습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이런 언론의 위험한 곡예는 그 매체의 경쟁력 지수와 직결된다. 건전한 과장은 귀엽게 봐줄 수 있지만, 악의적인 과장은 언젠가 부메랑이 될 것이다. 

의혹 제기가 있으면 당사자들의 입장을 입체적으로 들어보고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보도할 가치가 있는지 따져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신뢰재인 언론이 시민들한테서 점점 멀어지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회적 공기’인 언론의 역할을 되짚어 봐야 한다. 신문왕 퓰리처는 “첫째도 정확, 둘째도 정확, 셋째도 정확이다.”라고 강조했다. 명성과 신뢰는 영원불변하지 않는다. 추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정명(正名)을 잃은 언론은 존재가치가 없다. 

우리는 극단적 진영논리를 단호히 배격한다. 진보·보수, 여·야에 따라 발톱을 세우고 할퀴는 구태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네 편 내 편에 몰두하면 상대가 망가져야 내가 산다는 파괴적인 모습만 재연될 뿐이다. 원주시의회의 경우를 보자. 주변에서는 원주시의회를 빗대 ‘8.7.7당’이라고 비꼰다. 전체 22명의 의원들이 8대 7대 7로 나뉜 것을 말한다. 민주당 소속 15명의 의원이 8대 7로 갈라섰고, 여기에 국민의힘 소속이 7이다. 

이 말은 2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대화와 타협의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악평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줄 세우기 정치에서 벗어나 소신껏 정치를 한다는 호평 말이다. 아바타도 아니고, 정치인이 어떻게 각진 정치를 할 수 있는가. 소수당인 국민의힘도 철옹성처럼 응집력이 강해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소신파가 더러 있다. 

줏대 없이 진영에 매몰되면 정치 불신이 가속화되고 결국 시민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이네’라며 항의성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집 장롱 속에 꼭꼭 숨겨놓은 소신을 활짝 펼쳐 보일 때다. 

원주신문은 치악산 비로봉에서 원주시 전경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공적인 저널리즘 구현에 더욱 정진해 나갈 것이다. 대공무사(大公無私)의 자세를 변함없이 유지할 것이다. 주류 언론이 아닌 변두리 언론, 아직 갈 길이 먼 7살 새싹 신문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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