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이정오 作 / 데이트
[시가 있는 아침]이정오 作 / 데이트
  • 임영석
  • 승인 2021.05.02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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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이정오

 

자르는 게 커트인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야

얼마나 아름답게 남기느냐

그게 커트였어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어

 

오늘 커트 잘했어

 

고마워

 

계간 『다시올문학』2020년 가을호에서 

 

이정오 시인의 시 「데이트」를 읽으면서 생각하는 관점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무엇이냐에 따라 우리들 삶의 모습이 확연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머리를 함께 자르는 일도 데이트고, 커피를 마시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데이트다.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그것보다 '커트'라는 말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삶의 발견이라 해야 할 것이다. 잘라내는 게 커트의 전부라 느껴왔던 경계선을 넘어 얼마나 아름답게 남기고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만드느냐가 커트의 미학이었다는 사실이다. 머리를 깎는 것은 추한 모습을 버리는 것이다. 잔디를 깎는 것도, 길가의 풀을 메는 것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우리들 삶에서 커트시킨 일들이 무수히 많을 것이다. 친구도 잘라내고, 만나던 사람도 잘라내고, 회사에서는 직원을 잘라내고, 세상에서는 삶의 시간을 잘라내는 일, 이 모든 일이 아름다움을 남기는 일로 받아들이니 이 세상의 수많은 갈등들이 커트를 이해하는 방법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머리를 자르듯이, 커트하듯이 적당한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하는 커트라면 세상이 시끄럽지 않고 복잡하지 않을 듯도 하다. 너무 많은 커트, 너무 많은 변화, 너무 많은 모습을 바꾸기 위한 어제였기에 부작용이 생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정오 시인은 바로 그러한 조화에 목적을 주고 커트를 하며 데이트를 즐겼다고 읽힌다. 

                                                                                             임영석<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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