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 세상에 단 한사람 내 어머니 내 아버지
[살며 사랑하며]이 세상에 단 한사람 내 어머니 내 아버지
  • 임길자
  • 승인 2021.06.06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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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오랜기간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 및 방역지침이행’으로 대부분의 관계 환경이 바꿔 버린 현실이 몹시 불편하고 불안한 나날이었다. 더욱이 어르신들을 모시고 사는 집단시설 운영자들에겐 매일이 가시방석이었다.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는 있지만 간간히 가족들의 방문이 이어졌고, 종사자들의 퇴근시간 이후의 일상을 일일이 간섭할 수 없다 보니 한 기관을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는 잠시도 멈춤없이 안팎을 점검하고 단속하며 긴장해야 했다. 

드디어 지난주에 코로나19 예방백신 2차 접종을 마쳤다. 시설 종사자들은 끝이 났고, 어르신들도 6월 중순이면 2차 접종이 모두 끝난다. 일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고, 일부는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 백신접종이 시작되기 전 부작용에 대한 걱정도 없지 않았다. 직접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종사자들에게 이상 징후가 발생하게 되면 서비스 공백 우려가 걱정되었고, 어르신들에게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위험한 상황을 상상하게 되어 불안함이 밀려왔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별 이상 징후 없이 고요한 일상을 살고 있다. 백신에 대한 의심으로 망설이고 있는 분들에게 “괜찮습니다.”라고 희망을 얹어드리고 싶다.

두 번의 백신 접종을 마치고 2주가 지난 뒤 홀가분해 진 마음으로 같은 입장(코로나19 예방백신 2회 접종을 마친 사람들)에 있는 지인들과 맘 편한 외식(점심)을 즐겼다. 식당 내부엔 여전히 방역지침이행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및 마스크 착용이 지켜지고 있었다. 즐겁게 식사를 끝내고 나오는데 식당 주인(남자)이 내게 말을 건넸다. “○○○원장님이시지요?”라고.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듯하여 일행을 먼저 보내고 그 분(식당 주인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은 제가 ○○○님의 아들입니다.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이 열리질 않습니다. 엄마가 가끔 보고 싶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데 아직도 제 마음이 열리질 않습니다. 나도 이런 자신이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그 남자는 눈물을 훔쳐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원장님께 다 털어 놓을 순 없는데 가슴에 맺힌 것이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말속엔 불안과 외로움이 함께 묻어났다. 두서없이 쏟아내는 말로는 정확한 사연의 줄거리를 알 수 없었지만 부모님들에 대한 서운함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가 담겨있는 듯 했다. 백일홍님(그 남자의 어머니)은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 후 알츠하이머(치매) 진단을 받고 누군가의 직접 돌봄이 필요해진 상태가 되어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다. 입소 당시 어르신은 여러 가지 이상 징후가 있었고, 저마다 벌어야 먹고 사는 가족들이 돌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입소 당시 주보호자는 차남이었고, 이후 딸들이 종종 시설을 방문하여 어머님을 살폈다. 장남(식당 주인 남자)은 시설에 입소 한 어머님을 면회하지 않았다. 

어르신을 모시고 사는 일이 올해로 14년차를 맞는다. 그 동안 여러 가정을 만났고, 다양한 사연들을 들었다. 누가 더 잘 못했겠지. 누가 더 아팠겠지. 누가 더 후회하겠지. 결국 그 ‘누구’는 누구나의 자신이 될 수도 있어서 저마다의 다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백일홍님에게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 자식의 이름과 얼굴이 기억 속에서 이미 지워졌고, 살아있다는 사실에 인생의 의미가 망각된 지 오래인데, 자식은 지난 시간에 묶여 아직도 부모님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니… 이 세상에 단 한사람! 내 어머니, 내 아버지인데 무슨 갈등이 있었길래, 얼마나 상처가 크고 깊었길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상태를 설명하거나 그 분의 심정을 짐작해서는 안되니까 그냥 들었다. 그리고 전했다.

“어머님은 잘 모시고 있을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건강상태도 그만그만 하십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내 뒤통수를 향해 “우리 어머니 코로나19 예방백신은 맞으셨습니까?”라며 현재 자신의 감정을 알렸다. 조만간 어머님을 뵈러 올 아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어떤 대화를 나눌지는 궁금하지 않다. 부모와 자신은 천륜(天倫)이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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