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응원이 필요해
[살며 사랑하며] 응원이 필요해
  • 임길자
  • 승인 2021.07.04 22:0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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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지정면 신평석화로 274에 위치한 ‘여시재(如是齋)’라는 찻집은 주말이면 문을 연다. 처음 여시재가 문을 열게 된 동기는 혼자 계시는 아버지와 일주일에 세끼 밥 먹기를 실천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18개월이 되었다. 코로나19로 세상이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도 여시재는 한결같이 주말엔 문이 열렸고, 주중엔 문이 닫혔다. 그 길을 지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은 주말이면 그 곳에 들려 그리 요란하지 않은 언어로 인생살이의 고비고비를 슬기롭게 녹여내는 일명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숨터’라고 나는 설명하고 싶다.

지난 5월 어느 일요일 허○님이 여시재에 들렸다. 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아니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 번째 방문 시 그가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는 휠체어가 없으면 생활이 곤란한 척추장애인이었다. 장애인을 세심히 살피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했다. 지금도 늦었지만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 서둘러 공사를 시작했다. 좋은 사람들의 노력과 마음이 보태진 덕분에 대단히 훌륭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변화한 공간을 사진으로 알렸다. 어느 토요일 아침 그의 이름으로 해피트리(나무) 화분이 나 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휠체어 몸을 싣고 여시재 내부로 들어섰다. 그는 눈물이 났다.

그는 2006년 가을, 평창 어느 공사현장에서 중장비에 몸이 눌렸다. 이젠 정말 죽었구나 싶었는데 그래도 목숨은 부지(扶持)했다. 당시 공사 현장은 큰 나무들을 벌채(伐採)하는 일로 위험한 장비들이 요란하게 움직이는 곳이었다.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일사불란한 질서유지와 정확한 의사소통이 아니면 언제든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는 중간관리자로서 솔선수범하며 구성원들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 했을텐데 정작 자신의 안전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엄청난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는 한 여자의 남편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로,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즐겁게 여기며 사는 평범한 남자였다. 사고 당시 그의 나이는 42살이었는데, 그날은 막내딸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재롱이 잔치가 있었다. 아이를 향한 기대와 설렘은 보통의 부모들이 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 역시 보통의 아비였고 몸도 맘도 급해진 부분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기간 힘겨운 치료를 견뎌내고 이젠 휠체어를 몸에 붙이고 산다. 사고를 당하고 맨 먼저 떠오른 사람이 아내였다고 한다. 나이 차이가 좀 있는 아내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건강한 남매를 낳아주었고, 나름대로의 소소한 행복을 가꿔준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내에게 너무나 큰 짐을 지우게 된 자신이 원망스러워 불편과 불안으로 수많은 나날을 잠 못 이루며 지냈단다.

어느 정도 재활치료를 마치고 나서는 자신의 신체적 환경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양손의 조작 기능은 가능하여 차량은 직접 운전하며 본인의 행선지를 알아서 다닐 수 있는 정도는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앉아서 할 수 있는 일, 붓글씨, 그림, 악기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을 시작했다. 그러던 끝에 만난 것이 판소리라고 했다. 그런데 모든 소리는 단전에 힘이 있어야 가능하듯 판소리는 더욱더 그러할 진대, 그의 신체적 조건으로 판소리를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난 10년을 판소리에 매달렸다. 피를 토하고 성대 결절을 경험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렸다.

그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하다고 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든 꾸준하게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나이가 90에 가까운 우공(愚公)이란 사람이 왕래를 불편하게 하는 두 산을 대대로 노력하여 옮기려고 하자, 이 정성에 감동한 옥황상제가 산을 옮겨 주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그의 도전은 무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들려주는 판소리가 그 누군가엔 희망의 심지(心地)가 될 것이다.

스스로를 “척추장애인 판소리꾼 허정”이라고 말하는 그의 2021년도 목표는 ‘2021 판소리 대회 일반부 대상’이라고 한다. 그는 오늘도 소리 연습을 위해 어느 산골짜기에서 아우성치고 있을 것이다. 올 가을쯤 횡성문화원에서 ‘흥보가 완창’ 공연 계획이 있다고 했다. 그에게 지금은 응원이 필요하다. 지나침이 없도록, 모자람이 없도록, 이유 달지 말고 그냥 따뜻한 관심이면 좋겠다. 그가 행복하면 우리 모두가 즐거울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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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개헌 2021-07-21 04:32:59
http://www.todaypeople.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4

최개헌 2021-07-21 04: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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