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어머니도 그 누군가의 자식이었을테니…
[살며 사랑하며] 어머니도 그 누군가의 자식이었을테니…
  • 임길자
  • 승인 2022.01.0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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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진달래(어르신의 예명)님은 1926년생이니까 호랑이띠에 태어나 올해(2022년)로 만 96세가 되었다. 연초(年初)가 되면 시설의 장은 어르신 개인별 상담을 진행하는데, 올해 첫 번째 대상은 진달래 님이었다. 진달래 님의 올해 소원은 아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13년 8월 중순쯤 시설에 입소했다. 시설 입소 계약서류상에 보호자는 큰며느리로 되어 있고, 어르신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은 실제 큰 며느리가 챙겨왔다. 시설 입소 후 초기에는 세 명의 딸들이 가끔 시설을 방문하여 어머님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날이 갈수록 딸들의 방문은 줄었고, 코로나19가 나타난 후 거의 연락이 끊어진 상태이다.

어머님의 시설 입소를 도왔던 아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시설을 방문하지 않았다. 딸들이 시설을 다녀가던 시절에는 아들을 찾지 않았는데 딸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면서 그는 아들을 그리워하고 자주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올해 진달래 님의 새해 소원은 아들을 만나는 것이다. 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겠어. 그냥 아들이니까 얼굴 한번 보고 싶은 거지. 내 아들도 내가 보고 싶을 거 아냐. 왜냐하면 내가 배 아파 낳은 내 아들이니까. 그런데 왜 나를 보러 안 오는지 모르겠어. 원장님이 내 아들 좀 불러줘. 내가 너무 늙어서 아들이 나를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중략>” 

여러 가지 노인성 질환 중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 치매(Dementia)이다. 치매라는 질병을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배가 아프면 복통이 왔다고 하고, 머리가 아프면 두통이 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치매는 뇌에 통증이 온 것이다. 대부분은 노인이 되어서 나타나는 것으로 기억, 언어, 판단력 등 여러 영역의 인지 기능이 감소하여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임상 증후군을 의미한다. 여러 통계자료에 의하면, 흔히 알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치매)은 원인 미상의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전체 50~60%가 여기에 해당되고, 20~30%는 혈관성 치매라고 하는 뇌의 혈액순환장애에 의해 발병한다고 알려져 있다. 

알츠하이머병은 두뇌의 수많은 신경세포가 쇠퇴하면서 뇌 조직이 소실되고 뇌가 위축되는 질환이다. 혈관성 치매는 뇌 안에서 혈액순환이 잘 이뤄지지 않아 서서히 신경세포가 죽거나, 갑자기 큰 뇌혈관이 막히거나 뇌혈관이 터지는 관계로 뇌세포가 죽으면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다시 말하면 치매는 뇌 기능의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질환이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 의학계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세포의 유전적 질환이 아닌지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을 뿐 아직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더욱이 유전적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발병하는 알츠하이머병이 치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노인들을 더욱 두렵게 하는 것이다. 

진달래 님은 아주 오래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 보호자(큰며느리)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시댁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진달래 님은 아들과 관계가 몹시 나빴다고 한다. 유난히 아들에게 가혹했고, 아들은 그런 어머님의 양육 태도를 견디지 못해 청소년기 여러 번 가출했었다는 이야기를 남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부모 노릇을 학습하거나 미리 연습해 보고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모두 좋은 부모일 수도 없고, 모두 좋은 자식일 수도 없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부모도 자식을 선택할 수 없다. 어린 시절 들었던 할머님 말씀이 생각난다. “혈육은 삼신할머니께서 점지해 주시는 대로 만나게 되는 관계”라고. 

서로 선택할 수 없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무한책임이 수반되는 것이 부모자식인 것 같다. 어머니도 예전엔 그 누군가의 자식이었을 테고, 그 자식 또한 현재는 그 누군가의 부모이니 누구의 책임이 더 크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서로를 향한 ‘탓’은 의미 없는 다툼이기도 하다. 오늘은 오늘의 환경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올해는 꼭 진달래 님의 소원이 성취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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