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문학의 바탕은 무엇일까?
[세상의 자막들] 문학의 바탕은 무엇일까?
  • 임영석
  • 승인 2022.03.15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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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내가 처음 글을 쓰겠다고 덤빈 것은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무모함이 나를 끝없는 수렁에 빠트려 헤어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 당연함을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깨닫는다. 글이란 백지 위에 생각을 적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백지 위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쓰여 있지 않은 생각들을 온전히 불살라서 더 하얀 백지를 만들어야 글의 밑천이 생긴다. 모래 위의 하얀 사막에 그 무엇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막의 넓은 공간이 모래를 하얗게 빛나게 해 주는 것이다.

문학이란 바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많은 문학인이 그 물음의 답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작품을 쓴다. 어느 사람은 사랑이라고 하고, 어느 사람은 생명이라고 하고, 어느 사람은 평화, 평등이라고도 한다. 무엇을 가져다 붙여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랑, 생명, 평화, 평등, 자연, 등등 우리들이 이 지상에서 들었던 모든 말들이 다 문학의 바탕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학의 바탕은 언제나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 앞에 마주 서야 한다. 창작의 본질은 백지 위에 그 무엇인가를 채워가는 과정이고 그 백지를 어떻게 채울까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질문을 완성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김어수(1909~1985) 시인의 낙서(落書)라는 작품을 스물둘에 읽고 매료되어 염치 불고 습작품을 편지로 보내어 시조를 쓰는 마음을 배웠던 적이 있다. 

찢어진 그 세월이 / 안개처럼 피는 저녁 // 한결 아쉬움이 / 여백餘白에 얼룩지고 // 다 낡은 조각 종이에 / 그이 이름 써보다. // 말이나 할것처럼 / 산은 앞에 다가서고 // 오월五月 긴 나절에 / 번저 드는 메아리를 // 공연히 턱 괴고 앉아 / 그저기는 내 마음. // 그립고 하 허전해 / 내 그림자 꼬집다가 // 불현듯 잔디밭에 / 먼 구름을 흘겨보고 // 쓰면서 나도 모르는 / 그 글자를 또 쓰오

▲ 김어수 시조 낙서(落書) 전문

나는 낙서라는 작품을 수천 번 읽었을 것이다. ‘쓰면서 나도 모르는 그 글자를 또 쓰오’라며 글을 쓰는 마음이 낙서라는 작품을 읽고 배웠기 때문이다. 결국 글이란 백지 위에 낙서하듯 쓰고, 쓰고, 또 쓰는 그런 마음이라는 것이다. 요즘 글을 쓰는 사람들도 예전보다는 많이 늘어났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이 늘었다고는 하나, 글을 읽는 사람은 예전과 비교하면 인터넷과 영상의 발달로 더 줄었다는 말을 한다.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내가 산문을 쓰며 시를 한편씩 소개하는 것은 가뭄에 물 한 방울이 어떤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목마른 그 누군가에게는 내가 소개하는 시가 삶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원주가 문학 창의도시라고 한다. 그러나 문학은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유되어서는 그 문학이 발전할 수가 없다. 끝없이 누군가의 마음에 새겨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서울의 지하철에는 수많은 시들을 읽게 해놓았다. 백지 위에 글을 쓰는 심정으로 그 백지를 가득 채워 놓아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얀 백지의 마음으로 태어난다. 그 마음 위에 수많은 것들을 채워가며 써 가며 그려가며 살아간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사를 짓는 마음을 새기고,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동물에 대한 것을 새기고, 직업에 따라 다양한 마음을 각자 새기며 살아간다. 그 지식이 하루아침에 쌓인 것은 아닐 것이다. 날마다 더 새로운 삶을 위해 노력을 해 왔기 때문에 새겨졌을 것이다.

문학의 바탕은 바로 하얀 백지에 더 새로운 마음을 그려가는 것이다. 성철 스님이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라는 말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일깨운 일이 있었다. 이 당연한 말을 누가 모르냐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물이 물로 있어야 할 자리, 산은 산으로 있어야 할 자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들리지 않을 것이다. 문학의 바탕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보면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고 처음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그 백지 같은 마음이 문학의 바탕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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