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뷔시 음악의 특징 >

2) 독특한 화음 진행 

드뷔시 음악의 ‘인상주의적 특징’은 화음 진행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드뷔시의 음악은 기존의 틀을 혁파한 전혀 새로운 형태였지만, 아직은 (바로크–고전–낭만주의로 이어진) ‘정통 유럽음악’의 근간이었던 ‘조성음악(tonal music)’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드뷔시 화음 진행의 독특함을 설명하기 위하여 부득불 다소 전문적인 내용을 잠깐 언급하자면…

‘화음(Chord)’이란 두 개 이상의 음들이 동시에 울리는 것을 말하고, ‘화성(Harmony)’이란 그 ‘화음’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일정한 원칙에 따라서 진행되는 것을 말한다. (본 칼럼 24회 참조)

즉, 전통적인 서양음악에서 화음(단어)들은 저마다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문장(화성)을 완성시키는 ‘단어’로 취급되었으며, 각각의 화음들이 진행될 때 적용되는 ‘원칙’은 ‘문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드뷔시는 그 ‘문법체계’를 벗어나 순간적인 느낌에 따라 화음들을 사용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진행(progression)’이 아닌 ‘연결(succession)’이 된 것…

결국 드뷔시는 음악의 전반적인 흐름보다는 각 화음 자체의 ‘색채’를 강조한 최초의 작곡가라 평할 수 있으며, 이 또한 드뷔시의 파격적인 작곡 기법의 하나다.

3) 여러 가지 음악 요소들의 혼합

드뷔시는 기존 음악이 지나치게 각종 틀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러 종류의 음악 요소들을 기존 음악 어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결합시켜 새로운 표현 기법을 만들어냈다. 

드뷔시가 혼합하여 사용했던 여러 가지 음악적 요소로는 음계, 리듬, 화음 외에도 유럽 각국의 민속음악들도 있었는데, 심지어 교향시 ‘바다’ 같은 경우에는 일본 목판화(가츠시카 호쿠사이 작품)의 영향도 받았다. 그러나 드뷔시는 당시 다른 민족주의 음악가들처럼 민속음악의 선율을 차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슬라브 민족의 화려한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러시아의 민속음악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고, 러시아 민족주의 작곡가들로부터 꽤 많은 영향을 받았다. 

4) 자연의 영향 

드뷔시는 자연, 특히 ‘바다’와 ‘빛’에 관심이 많았는데, 인상주의 미술과 상징주의적인 시(詩)를 결합한 감정적이고 선이 뚜렷하지 않은 모호한 표현을 구사하였다. 

인상주의 미술이 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사물이 달라 보이는 것을 순간적인 느낌으로 묘사한 것처럼 드뷔시도 전통적인 음악 어법과 규칙의 틀을 깨고 순간순간의 분위기나 느낌을 자신만의 화음과 리듬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했던 것. 그래서 그런지 곡 제목들도 시각적인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것들이 많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교향시 ‘바다(La Mer, 1905)’는 ‘3개의 교향적 스케치’라는 부제를 갖고 있으며 각 악장마다 별도의 부제가 있는 작품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다의 모습은 ‘순간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인상파 작품으로서는 아주 적절한 소재였기 때문에, 드뷔시는 ‘바다’를 소재로 여러 작품들을 작곡했고, 그 중 이 곡이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곡도 인상주의 작품답게 ‘바다의 풍경’이라는 시각적, 객관적 모습보다는 자신이 ‘바다’에 대하여 상상했던 느낌과 분위기를 주관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급변하는 소용돌이와 끊임없는 밀물과 썰물, 그리고 바다가 가지고 있는 막연한 경이로움과 수수께끼 같은 신비로움을 즉흥적이고 느낌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마치 한 폭의 인상주의 회화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과 같은 이 작품의 각 악장 부제는 다음과 같다.

* 1악장 - 바다 위의 새벽부터 한낮까지
* 2악장 – 파도의 유희
* 3악장 – 바람과 바다의 대화 

https://youtu.be/BOCmqva1WLw (드뷔시 바다)

최왕국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