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부모가 되고도 부모를 몰라
[살며 사랑하며] 부모가 되고도 부모를 몰라
  • 임길자
  • 승인 2022.05.01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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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리며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가정의 달 5월이다. 어버이날에 즈음하여 지난 28개월간 주말에 만난 아버지를 자식의 언어로 소리 내 본다. 아버지는 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이 선택해 준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 당시 아내는 19살, 남편은 스무 살이었다. 일 년 후 그들 사이에서 세상 구경을 시작한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눈에 새기기도 전에 국가의 부름으로 군인이 되었다. 내가 네 살 되던 해 겨울쯤으로 기억하는데, 빳빳하게 각이 세워진 예비군복을 입고 대문을 들어서며 집안 어르신(나에게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등)들에게 거수경례하던 60년 전 아버지 모습이 어렴풋하다.

2019년 12월부터 아버지와 나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함께 점심을 먹는다. 당초 목표는 ‘홀로 계신 아버지와 일주일에 세끼 밥 먹기’였는데 실제 실천은 두 끼(2식(食)) 정도로 실행하고 있다. 아버지가 차려주신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 주중에 있었던 아버지의 일상을 듣는다. 아버지의 밥상은 언제나 한결같다. ‘갓 지은 따스운 찰진 밥에 구운 두부 두 쪽, 생선(굴비, 고등어, 임연수어 중) 한 토막, 구운 김, 고추튀김’ 등이다. 여름철엔 상추와 풋고추가 곁들여지기도 하고, 가끔 막내 동생이 사 온 추어탕, 순대국, 갈비탕 등의 국물이 곁들여진다. 전날 먹다 남은 밥이 밥통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 밥을 지으신다. 찬밥은 당신이 혼자 먹어도 되고, 해피(반려견)를 주면 된단다. 어쩌다 아버지께 점심 약속이 생기면 가지런히 밥상을 차려놓고 나가신다. 또 어떤 날은 누군가 밥을 먹자고 전화를 하면 “에이~ 오늘은 딸이 온 걸, 이 사람(딸) 밥 차려줘야 해”라며 거절한다. 

아버지는 사남매(딸, 아들, 딸, 아들)를 두었다. 지난해 여름 남동생이 찾아와 “누나! 아버지께서 저에게 땅을 증여해 주셨어요. 아버지께서 누나에겐 말씀 안 하신 것 같아서요. 죄송해요. 저라도 먼저 말씀드려야 하는데…”

아버지는 왜 그러셨을까? 왜 비밀스럽게 그리하셨을까? 아버지 물건을 아버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예나 지금이나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무엇이든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잠깐 헝클어졌다. 그러나 내 안에 혼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매주 날 위해 밥을 지으며 반찬을 챙기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아버지의 전부였을 것이다. 토요일 아침이면 여시재(如是齋) 문을 열어놓고 날 기다리고, 저녁이면 주변 쓰레기를 정리하며 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먼 산을 바라보다 들어가시는 그 일상 속 아버지의 가슴 한가운데는 오직 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된다.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나를 만드신 그 한 사람이 아직도 내 곁에서 나의 수다를 즐겁게 들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이고 기쁨이다. 

노인복지사업을 시작한 지 15년이 되었다. 여러 가정사를 보았다. 아들 타령에 딸들은 돌아서고, 큰아들 작은아들 간에 누구 떡이 더 큰 것인가를 놓고 갈등한다. 갈등의 중심에는 언제나 돈(재산 나누기)이었다. 늙은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문제는 모든 자식들의 역할이고 책임이고 의무이다. 주어진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부모님을 덜 불편하게 부양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들이 곳곳에 개발되어 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정보에 능한 사람이 먼저 의견을 내고 논의하면 좋겠다. 그리고 서로 미루지 말고 형편껏 각자의 몫을 표현하면 좋겠다. 너의 부모이기도 하고 나의 부모이기도 하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으랴’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우리 아버지를 보면서 분명 더 아픈 손가락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하하.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나면 부모를 다 알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님 앞에서 우리는 자식일 뿐이다. 자식의 머리로 생각을 하고, 자식의 언어로 말을 하며, 자식의 눈으로 부모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우리들이다. 이제부터라도 부모의 눈으로 부모님을 보고자 다시금 옷매무새를 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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