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목소리의 공간성
[안부를 묻다]목소리의 공간성
  • 임이송
  • 승인 2022.05.15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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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깊이 생각할 게 있고 책도 읽고 싶어 카페로 갔다. 자주 갔던 몇몇 카페를 떠올린 후 그 안에 느껴졌던 분위기를 생각하여 한 곳을 택했다. 오늘 가는 공간은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설령 점심 모임을 끝낸 팀이 온다 해도 주변 분위기에 맞춰 대화를 나눈다면 별문제 없을 듯했다. 동네 카페들이 대부분 규모가 작기 때문에 목적에 따라 신중하게 선택하는 편이다.

오후 한 시, 내 예상대로 혼자 공부하는 사람들만 몇 테이블 있다. 다행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책을 펴려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 여섯 명이 우르르 몰려와 앉았다. 그들은 차를 시키는 것부터 시작하여 단 한 순간도 차분하지 않았다. 중간 톤의 목소리로 대화를 나눠도 카페 안이 조용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서로 경쟁하듯 큰 소리로 떠들었다. 마치 장터 같았다. 여섯 명이 목청껏 웃어대는 소리 또한 카페를 뒤흔들고도 남았다. 심지어 테이블을 내려치고 박수까지 쳐가며 웃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공부하던 사람들과 내 눈이 여러 번 마주쳤다. 그러곤 우리들은 동시에 시끄러운 테이블의 그들을 바라보았다. 몇 번을 그렇게 하여도 그들이 조용해지지 않자, 공부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책을 정리하여 카페를 나갔다. 여섯 명 중 아무도 그 상황을 눈치채지 못했다. 

카페가 조용할 거라는 기대를 하고 간 건 아니었다. 웅성웅성 백색소음과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여러 테이블에서 도란도란 말하는 소리는 오히려 집중이 잘 되고 온기마저 느껴져 좋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보다 카페를 선호하는 편이다. 오늘처럼 바로 옆에서 카페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시끄러울 땐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 못 견디는 사람이 카페를 나가야 하고 남은 사람들도 마주 앉은 사람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더욱더 큰 소리로 말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나는 목소리가 작은 편이다. 초등학교 4학년 음악 시간이었다. 실기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큰 소리로 박자와 음정에 맞게 노래를 불러야 한다. 안 그래도 목소리가 작은 나는 시험이라 긴장하여 더욱 작아졌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자꾸만 혼내었다. 선생님이 원하는 소리를 내지 못할 때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커지고 거칠어졌다. 반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숨죽이며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은 날이었다. 그것도 아주 호되게. 내 목소리는 끝내 커지지 않았고 음악 점수는 예상대로 형편없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가끔 노래방에 갈 일이 생겨도 탬버린만 친다. 

며칠 전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조용한 공간에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책을 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쏠렸다. 전화의 주인은 큰 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서 말하는 소리도 열람실로 되울려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몇 년 전, 외국에서 인상 깊은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빌딩과 빌딩 사이 좁은 골목에 카페 겸 바가 있었다. 평일에는 커피를 팔고 금요일 다섯 시 이후에는 술을 팔았다. 커피를 마실 때의 골목은 조용했다. 그러나 술을 마실 수 있는 금요일 저녁에는 사람도 바글바글 소리도 와글와글했다. 얼마나 시끄럽던지 머리가 흔들릴 지경이었다. 그들은 술잔을 들고 한 무리씩 모여, 하나같이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궁금했다. 저렇게 시끄러운 데서도 대화가 가능한지가. 그러나 그들은 웃음을 띠었고 고개를 끄덕여가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즐거운 소란이었다.

오늘 카페에서의 일은 남의 일만이 아니다. 나 또한 무리 지어 음식점이나 카페에 자주 간다. 여럿이 어울리다 보면 주변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할 때가 있다. 살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목소리를 때와 장소에 어울리게 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알맞은 소리는 공간을 살리고 아름답지만, 그렇지 못한 소리는 모두 소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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