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저항, 그 끝없는 변화
[세상의 자막들] 저항, 그 끝없는 변화
  • 임영석
  • 승인 2022.05.15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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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먼저 코로나19로 인하여 유명을 달리한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전 세계적으로 잘살든 못살든 삶의 질을 가리지 않고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복병이었음을 상기시키는 것은 이 코로나19였다. 2022년 5월 9일 집계된 수치만 놓고 사망률을 보면, 미국 1.2%(99만 2,792명), 인도 1.2%(52만 4,093명), 브라질 2.2%(66만 4,374명), 프랑스 0.5%(14만 3,531명), 독일 0.5%(13만 6,538명), 영국 0.8%(17만 6,384명) 러시아 2.1%(36만 9,350명), 한국 0.08%(2만 3,400명) 등이다. 이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아마도 사람이 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한 또 하나의 질병으로 사람 삶의 숨통을 조여 올 것이다.

어떤 이는 한국의 코로나19 대처가 성공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실패를 했다고 한다. 이는 정치적 지형에 따라 극명하게 구분되는 마음을 지녔다고 본다. 정치적 지형의 문제가 아님에도 정치적 접근으로 시각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며 코로나19는 과연 사람의 삶의 안위를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세상은 사람이 만든 무기로 인하여 죽는 수보다 질병으로 인하여 죽어가는 수가 더 많다고 한다. 독감, 폐렴, 암, 말라리아 등과 같은 병이 지속적으로 변화하여 사람의 몸을 괴롭힌다. 어쩌면 세상은 지금 이 병들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폭탄이 날아다니고 미사일이 이곳, 저곳에서 팡팡 터져야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이는 가장 비극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질병은 그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을 지녔기 때문에 오고 가는 길목을 차단할 방법이 뚜렷이 많지 않다. 중국에서는 도시 전체를 통제하는 바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간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얼마나 행복한 나라에 살아왔는가를 보면 사망률을 놓고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장사하지 못 해 먹고 사는 일이 힘들었다고 아우성치며 정부를 비판해 왔다. 질병과 천재지변은 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좌회전 금지구역에서 / 좌회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 / 택시기사가 핏대를 세우고 덤벼들었지만 / 나도 보험에 들었다 / 문짝 찌그러진 택시는 견인차에 끌려가고 / 조수석에 탔다가 이마를 다친 남자에게 / 나는 눈도 꿈쩍하지 않고 / 법대로 하자고 했다 / 나도 보험에 들었다 / 좌회전이든 우회전이든 /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 나의 불행이나 사고가 적극적일수록 / 보험금은 높아질 것이고 / 아내는 기왕이면 좀 더 큰 걸 들지 않은 걸 후회하며 / 그걸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가구를 바꾸며 / 이 세계와 연대할 것이다 / 나도 보험에 들었다

▲ 이상국 시 「나도 보험에 들었다」전문

우리가 교통사고나 질병을 대비해서 각종 보험을 든다. 요즘은 가뭄이나 태풍 등이 자주 있기 때문에 이 피해를 위한 농산물 등의 보험도 판매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이 질병을 치료하고자 새로운 신약을 만들어내면 만들어내는 족족 또 다른 질병이 그 신약의 약발을 뿌리치고 저항을 해온다. 앞으로는 질병의 끝없는 변화의 저항이 사람이 살아가는 역사가 될 것이다. 질병은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가축이나 동물, 어류, 새, 나무, 풀 등등 모든 곳에서 발생한다. 여러 가지 치유의 목적을 제시하는 학자들도 있다. 환경파괴가 가장 큰 주범이라고 하고, 기후 변화가 그다음이고, 사람의 이기심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미래는 장수 시대라고 한다. 오래 산다는 게 행복할까? 질문을 해 본다. 행복하게 오래 살아야 행복한 것이지, 괴롭게 오래 산다면 그것은 이 세상이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죽음도 선택적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으로 살아있는 의식을 잃고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이 살아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문학의 포괄적 주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 삶과 죽음 속에서 파생된 이야기가 예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질병이 하나 더 있다. 갈등의 병이다. 이 갈등의 고리를 풀지 못하면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저항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오른손과 왼손이 따로따로 놀아난다면 사람의 삶은 참담할 것이다. 갈등의 사회적 질병부터 치료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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