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그 많은 비밀은 다 어디로
[안부를 묻다] 그 많은 비밀은 다 어디로
  • 임이송
  • 승인 2022.06.19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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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있잖아요, 이건 극비예요. 당신한테만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 비밀 꼭 지켜줘요.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극비라고 말하는 순간 그건 비밀로 전락하고, 비밀이라며 건네는 순간 그 내용은 소문으로 몸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오늘 나는 커다란 비밀 하나를 안게 되었다. 느닷없이 안게 되어 당혹스럽다. 그는 연신 비밀이라는 걸 강조했다. 그 이야기가 너무 커서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우리 모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재차 당부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울타리가 처졌다. 그는 나에게 말하고 나서 가벼워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슴에 빗장 하나 가로질러 놓은 것처럼 답답하다. 나는 비교적 안과 밖이 비슷한 사람이다. 무얼 숨기고 감추는 걸 잘 못 한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솔직하게 대하는 것만큼 좋은 예의가 없다는 게, 내 신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하나 이상의 크고 작은 비밀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감추려 하기보다 상대에게 굳이 말할 필요가 없거나 말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쁜 의도로 비밀을 품은 적은 없다. 사람들은 나에게 깊은 속내를 곧잘 말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그 사람과 관련이 있거나 함께 아는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옮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품고 있는 비밀이 꽤 많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 비밀은 나에게 털어놓은 사람들의 것이지 내 것은 아니다. 

한때 고향 친구들은 나를 두고 비밀스러운 사람이라 부른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무렵 내가 암 전문병원을 드나든 것이 소문의 발단이었고, 그 사정을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나를 나도 모르게 비밀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암 병원에 간 걸 우연히 알게 된 친구가, 내가 뇌종양에 걸렸다고 생각하여 그걸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면서 일은 커졌다. 그때 나는 심한 두통을 앓고 있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검사해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해 암 전문병원에 갔던 것이 와전된 모양이었다. 나는 친구들이 그런 오해를 하고 있는 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는 비밀을 많이 가진 사람이 무섭다. 그 비밀들은 당사자를 옭아맬 뿐만 아니라 타인을 무겁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비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 깊이 생각한다. 나로 인해 상대방이 무거워지거나 내가 한 말이 무심결에 떠돌아다니게 될까 봐. 

그건 상대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비밀의 속성 때문이다. 안전하게 말할 터를 가진 사람은 큰 복을 받은 거다. 힘든 세상에 미더운 사람 하나 곁에 있다는 건 숨통 트이는 일이며 그런 사람을 가진 건‘좋은 터’를 가진 것과 같다. 

나 또한 얼마 전 말할 터를 찾아다녔다.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속 깊은, 안전한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을 찾으려면 아는 사람의 친구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한 친구에게 몇 번 들은 적 있는 그의 친구를 소개해 달라고 말해볼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내가 안고 있는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대답이 듣고 싶었다. 곁에 있는 친구는 그만 힘들게 하자는 마음도 한몫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더이상은 진행시키지 않았다.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속을 털어놓으면 내 마음은 가벼워질 수 있겠지만, 친구의 친구는 얼마나 당혹스러울 것이며, 친구는 또 얼마나 나를 걱정할 것인가. 

나는 오늘 안은 비밀을 비밀 되게 해야 한다. 그 부피와 무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 안에서 조용히 분해해야 한다. 들은 적 없었던 것처럼. 비밀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놀란 마음까지도 감쪽같이. 누군가는 비밀은 셋 중 둘이 죽었을 때만 지켜질 수 있고, 혹여 사람이 아닌 바람에게 털어놓았다 해도 바람은 반드시 나무에게 말할 것이며, 비밀에게도 비밀이 필요하다고. 오늘은 외출하지 않아야겠다. 바람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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