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안녕
[안부를 묻다] 안녕
  • 임이송
  • 승인 2022.07.17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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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이웃의 안녕을 요즘처럼 간절히 바란 적이 없다. 뉴스에 생사가 달린 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그들의 안녕을 빈다. 그것은 온 국민과 함께한 바람이다. 지금 내 이웃은 안녕은 나 혼자 오롯이 하는 기도다. 

어제도 세탁소에 불이 꺼져 있었다. 그가 온다는 날짜가 한참 지났는데도. 나는 그가 오기로 한 전날부터 기다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지 못한다고 한 그다음 날부터 기다렸다. 외출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러 오갈 때마다 집 앞의 세탁소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온 후론 일요일을 제외하곤 가게에 불이 꺼진 적이 없다. 아주머니는 늘 가게 안이 훤히 보이는 통창 앞에서 다림질하거나 수선작업을 했다. 

나는 그와 세탁물에 관한 것 말고는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그가 말수가 적어 보이기도 했거니와 특별히 나눠야 할 이야기도 없었다. 그런데 지난주 세탁물을 맡기러 간 나에게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파서 수술받는다며 몸의 상태를 말해주었다. 나는 수술 잘 받고 오라는 인사를 건넸다. 아프다고 한 부위가 까다로운 곳이라 걱정이 되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다. 세탁소를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먹먹했다. 

그가 수술한다는 날, 불 꺼진 가게 안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정말 그가 없었다. 창에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개인 사정으로 가게 문을 일주일 닫습니다’ 내가 가져간 세탁물을 살필 때 배를 움켜쥐며 힘들어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일주일간은 그가 오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일 가게를 바라보았다. 

엿새째 되던 날 혹 그가 왔을까, 기대하며 가보았다. 가게는 여전히 캄캄했다. 늘 보던 건물이 사라지고 늘 보이던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건물이나 그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붙인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그들 존재 자체가 내 삶의 반경 안에 들어와 풍경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 세월호 참사, 천안함 사건, 코로나 시기를 겪는 동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매번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 나 또한 그 일들로 마음에 멍이 들었다. 그런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나의 평안이 나 이외의 것들에서 오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기도 외에 다른 사람들의 평안도 함께 기도한다.

스물네 살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자취집 할머니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상처로 남아 있다. 여느 때처럼 할머니에게 안부전화를 드렸는데 평소와 달리 할머니의 아들이 받았다. 그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것도 한 달이나 지났다고. 내 연락처를 몰라 연락하지 못했노라 했다. 할머니는 자취하는 내가 안쓰럽다며 처음엔 반찬 한두 가지를 챙겨 주시다가 어느 날부턴가는 저녁을 먹으러 건너오라고 했다. 급기야는 내 걱정에 삼시세끼를 다 챙겨 주셨다. 친자식이 없는 할머니에겐 나는 딸이자 손녀였다. 언제든 전화하면 할머니가 받을 거라는 마음이 깨진 날은, 참으로 막막했다. 엄마보다 따뜻한 분이었는데…

사람도 그렇지만 단골 가게도 뜻밖의 서운함을 안긴다. 십여 년을 드나들던 카페가, 어느 날 닫혀 있었다. 두어 달 후, 리모델링 된 가게에는 낯선 사람이 주인으로 와 있었다.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나는 가게 앞을 한참 서성였다. 카페 주인과의 인연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몇 년 전에는 낮에 같이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가 한밤중에 부고로 날아든 적도 있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끝내 말하지 못한 아픔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면서도 야속하다. 

오늘은 세탁소 문이 닫힌 지 열흘째. 세탁소에 불이 환하게 커져 있다. 반갑다. 오가며 수없이 기도했는데. 그런데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장을 보러 갈 때도 빵집에 갈 때도 산책을 나갈 때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세탁물을 찾으러 들어가 보려다 말았다. 그간 일을 하지 못했을 테고, 무엇보다도 그가 안녕할지가 겁이 났다. 나는 지금 이웃 앓이를 하고 있다. 궁금함 속에는 걱정이 한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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