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왕국의 클래식 이야기] (173) 콘트라베이스 이야기
[최왕국의 클래식 이야기] (173) 콘트라베이스 이야기
  • 최왕국
  • 승인 2022.09.0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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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왕국 [작곡가]
△최왕국 [작곡가]

< 에피소드 1 >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음대의 입시 실기시험에서 현악기 파트 실기시험 진행을 맡은 적이 있다.

그런데 콘트라베이스 실기시험이 있던 어느 날, 대기실에서 어떤 여학생이 서럽게 울고 있었다. 시험 과제 중 각 조의 스케일을 연주하는 것이 있었는데, 학생은 그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

'저런... 저 학생은 떨어지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 영화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함께 콘트라베이스에 응시한 핸섬하게 생긴 남학생이 그 여학생에게 다가가더니, 울지 말라고 달래 주면서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서로 존댓말을 쓰는 걸로 봐서 초면이었던 것 같다.

2명 모집에 3명이 왔는데, 그 중 한명이 과제곡을 숙지하지 않았다면 그 시험은 "땅 짚고 헤엄치기"인데, 확실하게 보장된 합격을 포기한 그 남학생의 행동이 참 순수해 보였다. 정황상 혹시 그 핸섬가이가 여학생에게 딴 마음을 품고 그러한 선행을 베풀었을 확률은 거의 없었으니까...

결과를 보니 그 여학생은 합격했고, 남학생은 불합격이었다.
필자도 음대 출신이니 당연히 대입 실기시험 경험이 있는데, 피아노 실기시험 때 왔던 경쟁자가 화성학 시험 보는 날 오지 않으니 은근히 기뻤던 기억이 있다. 필자가 놀부 심보라서 그런 건지, 남들도 대부분 같은 심정일지는 모르겠다.

남을 도와준다는 것...

남을 도와주다가 정작 자기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요즘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 콘트라베이스란? >

콘트라베이스는 ‘바이올린족(Violin family)’ 악기들 중 몸집이 가장 크고,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악기로서, “베이스(Bass) 파트를 담당하는 첼로(Violon Cello)보다 더 아래쪽 음역을 연주하는 악기”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첼로(주로 Bass 음역을 담당)’의 선율을 한 옥타브 아래에서 더블링(doubling)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블 베이스(Double Bass)’라고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본 칼럼 46회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으니 아직 안읽으신 분들게 일독을 권한다.

<https://www.iwj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026>

< 에피소드 2 >

에피소드 1과 비슷한 시기, 필자는 모 의대의 오케스트라 지휘를 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잠시 등장했던 소위 ‘의대생 군기’를 엿볼 수 있던 때였는데, 최고참이라 할 수 있는 본과 4학년 학생이 정기 연주회의 협주곡 독주를 하게 되었다.

콘트라베이스(더블베이스)를 연주하던 그 학생은 넉넉한 풍채에 사람도 좋게 생겨서 후배들에게도 항상 친절한 모습이었다. 바쁜 의대생 생활에도 악기를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거의 전공자를 뺨칠 정도였다.

연주회의 다른 곡들은 지휘자인 내가 정할 수 있었지만, 협주곡만큼은 독주를 맡은 학생이 결정하는 것이 그 쪽 세계의 불문율이었다. 음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협주곡 솔로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학생은 몇 안되었고, 선발된 학생들도 새로운 레퍼토리를 연습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연주회에서 내가 고른 곡은 멘델스존의 서곡 ‘핑갈의 동굴’과 슈베르트의 교향곡 4번 ‘비극적(Tragic)’, 협주곡은 그 풍채 좋은 의대생이 고른 ‘G. B. Cimador’의 ‘더블베이스 협주곡 G장조’였다.

콘트라베이스 협주곡은 그리 흔하지가 않다. 또한 아무리 연주를 잘 하는 뮤지션들도 초저음역을 담당하는 악기인 콘트라베이스로 중음역 이상의 음으로 선율을 연주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학생 연주를 참 잘했다는 좋은 기억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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