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소란한 여름
[안부를 묻다] 소란한 여름
  • 임이송
  • 승인 2022.09.18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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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나라가 정치권의 온갖 이슈로 어지럽다. 그 와중에 느닷없는 폭우로 온 국토는 물바다가 됐다. 게다가 나는 개인사까지 겹쳐 마음이 더욱 소란스럽다.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 나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낀다. 고마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다른 걸 살필 여력이 없어 이분법적 사고에 빠지고 만다.

계속 된 폭우로 나라는 쑥대밭이 되었고 수재민도 많이 생겼다. 심지어 목숨을 잃은 이도 있다. 나는 비를 무서워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홍수를 무서워한다. 2년 연거푸 가을장마에 집이 몽땅 잠기는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며칠 만에 들판과 마을은 오간 데 없었다. 마치 황하를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모든 걸 휩쓸고 간 황톳물은 잊을 수 없는 폭력으로 남아 있다. 물이 빠진 집은 각종 쓰레기와 진흙으로 뒤덮여 건질 만한 게 없었다.

눈앞이 캄캄하다는 관용어는, 그럴 때 정말 실감이 난다. 말 그대로 속수무책인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완벽한 절망이었다. 절망은 나에겐 희망의 반대말이 아니다.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이나 세상에 바라는 건 커다란 것들이 아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마음과 상황에 누군가 숨구멍만 열어주어도 살 힘이 생긴다. 가식이나 위선이 끼어들지 않은, 작고 소박한 공감도 위로가 된다. 습하고 춥고 빛조차 들지 않는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바람 또한 거대한 것들이 아닐 것이다. 햇살과 따뜻한 바람, 그 정도만으로도 숨이 쉬어질 것이다.

두 평짜리 셋방에서 가족 넷이 산 적이 있다. 네 사람의 짐이 방의 반이나 차지했다. 그 방에선 몸을 편히 뉘어 잘 수 없었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주인아주머니가 하는 잔소리였다. 화장실을 많이 쓰면 변소를 자주 퍼야 한다며, 하도 눈치를 줘 제때 볼일을 볼 수가 없었다. 잠은 몸을 구겨서라도 잘 수 있었지만, 생리적 현상은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때 숨통을 틔어준 사람이 있었다. 주인아저씨였다. 그는 자기 아내가 외출하면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편히 화장실을 사용하고 수돗물을 쓰라며. 우리는 그때 밀린 빨래를 하고 볼일을 봤다. 아저씨가 직장을 다녀 쉬는 날에나 집에 있었고 그때마다 아주머니가 외출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가끔 베풀어준 아저씨의 선의가 고마웠다.

물이 빠진 집에 들어갔을 때, 눈에 들어온 건 두 가지였다. 잠긴 우리 집과 잠기지 않은 높은 지대의 이웃집. 이질적인 두 풍경은 나와 가족들을 더 막막하게 했다. 마치 우리 가족만 세상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숟가락 하나 쓸 수 없고 쌀 한 톨을 건질 수 없는 우리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건네준 이웃의 손길은, 눈앞이 캄캄한 우리 가족에게 빛을 향해 나아갈 길을 터준 거나 다름없었다.

똑같은 고난을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고난에 처한 사람의 아픔을 온전히 공감하긴 어렵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기본 심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가여운 걸 가여워하고 안쓰러운 걸 안쓰러워할 줄 알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고 밤잠을 설치는 이웃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은 빨리 일상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번 수재로 반지하에 살던 사람이 죽었다. 그래서 반지하를 모두 없앤다고 한다. 그게 상책일까. 그런 곳이 필요한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인데. 그런 곳을 무조건 없애는 것보단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이 우선이다. 스무 살 때 두 평짜리 방은 우리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더 이상 넓은 건 우리 능력으론 감당할 수 없었다. 좁은 공간이더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쪽방이든 반지하든 원룸이든 고시원이든 옥탑방이든 수요는 늘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빛이다. 이웃과 함께 한다는 연대감과 사회적 안전장치 같은.

정치권의 바람 잘 날 없는 일들과 폭우로 온 국민이 심란한데 유례없는 태풍까지 와 온 나라를 할퀴고 지나갔다. 수런수런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잠재우고 위로해준 건, 폭우 속에서 배수구의 쓰레기를 빼내고 반지하에 물이 차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낸, 이웃들의 헌신과 따뜻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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