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빨간 풍선을 타고 날아올라 볼까
[안부를 묻다] 빨간 풍선을 타고 날아올라 볼까
  • 임이송
  • 승인 2022.11.06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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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사람들은 언제 날고 싶을까. 왜 날고 싶을까.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날고 싶다. 한 사람이 평생 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십 년이란다.

요즘 날씨가 참 좋다. 이런 가을날은 일 년에 며칠 안 된다. 하늘은 파랗고 높으며 구름은 잘 핀 목화솜 같다. 바람은 알맞은 온도로 불어오고 볕은 기분 좋을 만큼 따끔하다. 날씨가 아까워 시간만 나면 도시 밖으로 나간다. 대도시에 사는 동안엔 코스모스를 보기 어려웠다. 원주로 이사 온 후로부턴 가을이면 조금만 야외로 나가도 어디서든 쉽게 코스모스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파란 풍선을 불어 하늘 높이 날린 적이 있다. 풍선은 바람을 타고 언덕을 넘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날아갔다. 어디까지 날아갔을까. 새파란 가을하늘을 보노라면 문득문득 내가 날려 보낸 풍선 생각이 난다. 하늘빛이 마치 풍선이 터지면서 쏟아놓은, 파란 물 같아서. 내가 날려 보낸 풍선은 따가운 햇볕이나 사나운 바람이나 날카로운 나뭇가지, 그도 아니면 스스로 삭아서 날고 날다가 터졌을 것이다.

사람은 한평생 몇 번이나 날아오를 수 있을까. 그때는 언제고 또 난 채로 얼마나 멀리까지 가서 무엇을 볼까. 내가 가장 높이 날아오른 때는 등단 파티가 있던 날이다. 그날도 햇살은, 손으로 만지고 싶을 만큼이나 투명하고 눈부셨다. 많은 문우들이 나를 축하해주었고 하루를 온통 나와 함께 해주었다. 그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두둥실 해진다. 그리고 신부의 엄마가 되었던 날도 좋았고, 다리를 건너 미술관에 갔던 날들도 좋았다. 가마 타고 오는 작은엄마를 기다렸던 정오 무렵의 쨍한 시간도 행복했고, 교생선생님을 짝사랑했던 때도 풍선을 탄 것처럼 울렁거렸다.

인생에서 생명력이 가장 낮은 지점에 이르면 누구든 웅크리게 된다. 뭉크가 그린 니체의 초상화를 보면 뭉크의 <절규>가 절로 연상된다. 둘은 생전에 서로 만난 적도 없는데 뭉크는 왜 그런 풍으로 니체의 초상화를 그렸을까.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죽음을 봐오며 자랐다는 것에, 뭉크가 자신도 모르게 니체의 영혼에 공명해서일까. 그들의 의식과 무의식에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늘 따라 다녔을 테고 그 공포를 어떤 형식으로든 발현해야 했을 것이다. 니체는 그것을 철학으로 뭉크는 그림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뭉크는 자신과 니체의 생의 저점을 비슷한 색감으로 표현하여 서로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한편, 오랜 시간 아주 낮게 움츠려야 했던 그들은 무척이나 날아오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어느 날 염세주의자를 그만 두는 것으로, 뭉크는 강렬한 색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걸로, 날아오르는 몸짓을 대신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풍선을 불어 날렸을 때가 내 나이 마흔 언저리였다. 그 무렵 나는 또 한 번 인생의 저점을 지나는 중이었다. 다시 날아오르는 것 말곤 어떤 특효약도 듣지 않을 시기였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등단의 기쁨을 안고 높이 날아오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최대한 숨을 많이 불어넣어 풍선을 크게 만들었다. 그 숨에는 세상에서 내가 최고로 여겨진 순간의 기쁨과 나이를 먹어도 달라지지 않는 슬픔과 조금씩 모습을 바꾸는 고뇌와 점점 가까이에서 찾는 행복과 가장 좋은 나이에 깨져버린 꿈과 첫아기를 만졌을 때의 설렘과 오래 함묵했던 비밀과 일몰처럼 사라지기를 바란 절망과 시월 오후 두 시의 빛 같은 따스함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것들이 하나로 섞여 날다가, 어느 순간 터지면서 하늘을 파랗게 물들여 놓았을 테고. 또한 그것이 때로는 멍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퍼져 지금까지 가을이면 파란 색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일 테고.

며칠 전, 전원주택에 사는 친구가 봄부터 여름 내내 키운 꽃들을 가위로 쑥덕쑥덕 잘라 주었다. 백일홍, 바늘꽃, 색이 각기 다른 달리아, 국화…. 나는 꽃이 잘려지는 게 안쓰러워 그냥 두고 보라며 말렸지만, 친구는 꽃은 예쁠 때 보아야 한다며, 극구 한 다발을 내게 안겼다. 친구는 내가 지금, 또 한 번의 저점을 지나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다. 친구의 마음 씀씀이에 가을이 통째 내게로 온 것 같았다.

가을은 그런 풍경이고 마음인 것 같다. 누구든 풍선을 타고 날고 싶은. 키 큰 코스모스처럼 하늘거리고 백일홍처럼 붉고 하늘처럼 파랗고 국화처럼 소박하고 구름처럼 보드라운. 마음이 바닥에 가라앉은 사람이 있다면, 가을하늘에 빨간 풍선 하나 날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풍선 위에 올라타 같이 높이높이 날아오르라고도. 나도 거기에 함께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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