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왕국의 클래식 이야기 (188) 베르디 (2) 베르디의 삶과 음악
최왕국의 클래식 이야기 (188) 베르디 (2) 베르디의 삶과 음악
  • 최왕국
  • 승인 2023.04.0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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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초연된 오페라 「나부코」는
애국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당시 오스트리아의 압제하에 있던
이탈리아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최왕국 [작곡가]
△최왕국 [작곡가]

< 이탈리아 오페라의 자존심 베르디 >

「나부코」, 「아이다」,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椿姬)」, 「일 트로바토레」 등 수많은 걸작 오페라를 남기며 ‘오페라의 황제’라는 닉네임이 따라다니는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

로시니(1792~1868, 윌리엄텔, 세비야의 이발사), 도니제티(1797~1848, 사랑의 묘약), 벨리니(1801~1835, 노르마) 등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트로이카를 이루던 거장들이 세상을 떠난 후 베르디는 요즘 흔히 쓰는 말로 ‘원탑(one Top) 작곡가’다.

< 베르디의 삶과 음악 >

베르디는 1813년 이탈리아 북부지방의 ‘레론콜레’라는 농촌의 영세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1813년은 베르디의 라이벌인 ‘바그너’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는 음악적인 감수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흘러나오는 악기(오르간, 바이올린 등) 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닌데, 7세때 미사를 반주할 수 있을 정도로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10세때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채용되었고, 그 때부터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베르디는 12세 되던 해부터 붓세토라는 인근 중소도시의 학교에서 음악을 배웠는데, 나중에는 그곳의 부호이자 열렬한 음악 애호가였던 바레치의 집에 거주하게 된다. 바레치는 단순한 음악 애호가를 넘어서 자신이 직접 악기도 연주하고 관현악단도 조직했던 인물이다. 베르디는 23세때 바레치의 딸 마르게리타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첫 오페라인 「산 보니파치오의 오베르토」의 반응도 시들했고, 설상가상으로 아내와 두 자녀까지 세상을 떠나게 된다. 우울하고 불행한 나날을 보내던 베르디는 친구들의 위로와 응원에 힘을 얻어 작곡을 재개했고, 오페라 「나부코」의 성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1842년 초연된 오페라 「나부코」는 애국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당시 오스트리아의 압제하에 있던 이탈리아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이후 발표된 작품들이 줄줄이 호평을 받으면서 이름이 알려졌고 38세 때는 불후의 명작 「리골레토」, 40세 때는 「일트로바토레」의 대성공으로 그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의 원탑으로 굳건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 끊임없는 학구열의 소유자 베르디 >

필자는 베르디의 훌륭함을 그의 겸손함에서 찾았다. 58세때 발표한 오페라 「아이다」의 어마어마한 흥행으로 그의 작곡가로서의 입지는 굳건한 아성이 되었고, 그쯤 되면 원로작곡가로서 음악적인 색채를 굳힐 수 있었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60이 넘은 나이에, 그것도 그의 라이벌이며 동갑내기인 바그너의 오페라 기법과 관현악 편곡법을 연구하여 새로운 창작의 길을 모색했다.

그를 추종하는 후배 음악가들과 이탈리아의 오페라 팬들을 생각한다면 그러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좀 더 나은 음악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망설이지 않던 베르디의 겸손한 열정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 베르디 음악의 특징 >

베르디 음악의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지킴

2)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하면서도 가창력이 돋보이는 독창

3) 극에 잘 어울리는 탁월한 앙상블 (중창, 합창, 관현악)

4) 음악적인 요소들이 전반적으로 통일감 있게 잘 어울림

오늘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중 유명한 <개선행진곡>을 감상해 보도록 하겠다. 누구에게나 매우 익숙하고 친근한 멜로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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