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원주여중 벚꽃 길이 그립다
[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원주여중 벚꽃 길이 그립다
  • 김대중
  • 승인 2023.04.0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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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는 수명이 60~70년이다.
잘린 자리에는 보란 듯이 중국단풍들이 들어섰다.
나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경수를 사랑한 탓일 게다.
△김대중 [원주옻칠기공예관장]
△김대중 [원주옻칠기공예관장]

매년 이맘때만 되면 머릿속에만 있는 잔상이 있다. 무실로 하나로 마트 사거리에서 원주여중 가는 벚꽃길이다. 이 길의 3년 전 모습을 기억한다면 잊지 못하는 그림 같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도로변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던 벚나무는 정확히 32그루다. 흔한 벚나무를 굳이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일부러 기억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원주여중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1978년을 전후해서 식재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50여 년은 족히 됐을 것으로 보인다. 원주에서 수령이 이 정도 되는 가로수 벚나무는 어디에도 없다.

짧은 구간이었지만 인상 깊게 각인된 것은 나무와 꽃 때문이다. 벚꽃이 만개할 때면 환상적인 선물이 된다. 수령이 오래된 고목(古木)이어서 껍질이 거의 검은 색이었다. 수형도 빼어났다. 여기에 벚나무 특성상 잎보다는 꽃이 먼저 피어나니 조화로움의 극치였다. 아름다운 수형의 검은 색 나무줄기와 흰 꽃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주먹 크기의 꽃송이들이 뭉텅뭉텅 져서 탐스럽기 이를 데가 없어 감동백배였다. 시민들이 밤에도 길에 나와 인증 샷을 날리며 즐겼다. 진해군항제의 벚나무가 결코 부럽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떨어지는 꽃잎들이 눈꽃이 되고 눈비가 되어 날릴 때면 저마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함박미소가 가득했다. 원주여중 가는 길 32그루의 고목 벚나무들은 그런 존재였다.

그 길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그 길을 기억하는 시민들이라면 궁금해할 것이다. 시민들을 행복하게 했던 그 길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3년 전 거대한 장비들에 의해 무참히 잘리고 뽑혀 나가는 장면을 본 시민들은 기억할 것이다. 아니 그들에게서도 이미 잊히고 있다. 당시 도륙을 주도한 원주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 없다고 전광석화처럼 해치우고 모른 척 했을지도 모른다. 보물 같은 원주여중 벚나무들은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조경 사업에 참 이상하게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전임 시장 때의 일이다.

벚나무는 수명이 60~70년이다. 물론 환경에 따라 몇백 년씩 사는 나무들도 많다. 하지만 도심의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가로수로서의 벚나무 수명은 이처럼 짧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벚나무를 가로수로 잘 활용하는 지자체들은 금지옥엽하며 나무의 건강관리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임 시장이 그 아름다운 벚나무들을 날린 이유는 관리의 어려움 때문이었을까. 진짜 궁금하다. 그 벚나무들이 잘린 자리에는 보란 듯이 중국단풍들이 들어섰다. 나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경수를 사랑한 탓일 게다. 나무는 나이 들어가면서 아름다워진다. 보물이 된다.

시민들은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이 있다면 슬퍼하고 분노할 것이다. 이런 식의 일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먹고살기 바빠서 그깟 정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작지만 소중한 일에 무관심하면 습관이 되고 더 큰 것을 잃게 된다. 나라를 팔아먹고 동네를 말아 먹어도 무관심해진다. 후대에 뭘 남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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