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감자의 생각
[안부를 묻다] 감자의 생각
  • 임이송
  • 승인 2023.04.09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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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씨감자 심은 데에선
실팍한 감자가 달리겠지.
이것은 나의 생각이고 감자의 희망이다.
△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상자에 담아둔 감자에 싹이 나 있다. 조금만 더 보관하면 씨감자로 쓸 수도 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나에겐 심을 땅이 없다. 농사를 지었을 때 씨감자가 어떤 씨알을 매달지, 매번 기대하며 심었다.

나에겐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아기들을 보고 있으면 미래가 장차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창창해진다. 아기들의 눈망울은 맑고 선하고 깨끗하다. 꼭 쥔 작은 손은 천사의 날개 같다. 아기의 몸 어디에도 나쁜 기운이 스미어 있지 않다.

요즘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정치인이 없는 나라가 있다면 그곳에 가서 살고 싶을 정도다. 정치인들 중 간혹 몇몇은 전에 했던 자신의 말이 문제가 되면, 그 말에는 주어가 없다며 억지를 부린다. 그가 그 말을 할 당시엔 그 문장의 주체가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달랑 한 구절만 잘라내어 그 문장의 주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며, 비겁한 태도로 위기를 모면하려 든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그런 화법을 쓰면 절연당할 일인데, 공인이 국민과 정적을 상대로 그렇듯 저열한 행동을 하다니 어처구니없다.

그들은 어느 시점부터 잘못된 걸까. 아기 때는 분명 모두가 하얀 도화지 같았는데. 자라고 나이를 먹는 동안 무엇이 사람을 그렇게 바꿔놓을까. 감자를 잘 자라게 하려면 이른 봄 땅을 갈아엎은 후 흙과 퇴비를 고루 섞어 비를 두세 번 맞춰야 한다. 그래야 퇴비의 영양분이 땅속에 잘 스며들게 된다. 심은 씨감자의 잎이 자라면 순도 치고 북도 주고 웃거름도 주어야 한다. 나머지는 햇빛과 바람과 비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닭볶음탕을 하려고 감자 다섯 알을 씻었다. 싹이 난 곳을 깊게 도려냈다. 한 평의 땅만 있어도 심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감자 눈이 많아 도려내고 나니 먹을 게 별로 없다. 대신 수분이 날아가서인지 당도는 높다.

감자는 잎이 무성해지면 꽃을 피운다. 하얀 감자는 하얀 꽃을, 자주 감자는 자주 꽃을. 사람들은 감자꽃을 호박꽃만큼이나 무심히 보는 듯하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라면 작물이 피운 모든 꽃들이 아름답다는 걸 안다. 문제는 감자의 예쁜 꽃을 아낌없이 따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자의 입장에선 봉변이라도 당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알이 큰 감자를 얻기 위해선 감수해야 할 시련이다.

정치인들을 보노라면 그들은 높은 곳에 이를수록 필요 이상으로 비료를 주고 또한 독한 농약도 마구 치는 것 같다. 알이 무실(無實)해지는 줄도 모르고. 쓸데없이 웃자라기만 하는 꽃을 위해.

갈수록 존경할 만한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 건 껍데기만 화려한 이가 많아서인 것 같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라면 양심 정도는 씹던 껌 뱉듯 버리고 국민도 밥 먹듯이 갈라치기 한다. 서로 죽자며 비방하던 사이도 같은 목표를 위해선 잠시 손잡았다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곧바로 등을 돌려버린다.

오늘 한 정치인이 나라의 경제사정도 어려운데 전직 대통령이 한가하게 감자나 심는다며, 비난하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감자를 심는 사람은 감자를 심어 잘 가꾸면 되고, 정치를 하는 사람은 선정을 하면 그만인 것을. 그리고 더 바란다면 말을 할 땐 반드시 문장에 주어를 넣어 정확하게 말해 버릇하고.

씨감자는 또 다른 감자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종자다. 그러나 오늘 나처럼 써먹을 데가 없으면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정치인들도 스스로 자신의 격을 떨어뜨렸다고 생각되어지면 머리 위의 꽃을 서슴없이 따주어야 한다.

실한 감자 싹을 버려 마음이 아픈 저녁이다. 광고에 나오는 아기의 투명한 눈망울에 빠져들 것만 같다. 좋은 씨감자 심은 데에선 실팍한 감자가 달리겠지. 이것은 나의 생각이고 감자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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