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명랑한 오후
[안부를 묻다] 명랑한 오후
  • 임이송
  • 승인 2023.09.10 2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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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어쩌면 가공할 만한 명랑함과
웃음을 억지로라도 장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사람들은 언제 무서울까. 작가 장 그르니에는 ⌜고양이 물루⌟에서 하루에 세 번 무섭다고 했다. 해가 저물 때와 잠들려 할 때와 잠을 깰 때라고 했다. 나는 하루에 몇 번 무서운가. 나는 장 그르니에보다 더 자주 무서운 듯하다. 그와 비슷한 것들로도 무섭지만, 그와 다른 것들로도 무섭기 때문이다. 전에는 나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으로 두려웠는데, 지금은 외부에서 오는 것들로 인하여 더욱 자주 공포를 느낀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와 사건과 사회와 정치 변화로 인한.

한 달 전, 서현역에서 명랑한 오후가 사라졌다. ‘묻지마 칼부림’ 사건으로. 서현역은 우리 아들과 딸의 아지트였다. 성남에서 자란 아이들 대부분은 서현역에 모여 청소년기를 즐긴다. 그곳은 그들의 광장이자 심장 같은 곳이다. 늘 생기가 넘치고 빠른 음악이 흐르고 새로운 물건들이 즐비하고 웃음이 가득하고 맛있는 음식들로 넘쳐난다. 그곳은 나에게도 결코 가벼운 공간이 아니다.

그런데 그곳이 트라우마를 가진 장소로 전락되고 말았다. 광장이 두렵고 무섭고 공포스러우면 사람들은 안으로 숨어든다. 점점 밀실로 들어가 나오지 않으려 한다. 광장이 줄어들고 밀실이 늘어나면 사회가 우울해진다. 요즘 여기저기서 접하는 무차별폭력 사건들을 보면 마치 벽 너머에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움츠려든다.

예측이 빗나가는 무서운 사건들 앞에서, 나는 매번 무력하고 속수무책으로 안타까워만 할 뿐이다. 서현역이 무서워졌고 오리역이 무서워지고 신림역이 무서워졌고 강남역이 두렵다. 이제 어떤 공간과 장소도 우리에게 안전하지 않다. 이러다가 우리는 정답고 그리운 공간들을 하나씩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공간을 함께할 사람들까지도.

장 그르니에가 세 번이나 무서워한 공통점은 허공을 향하여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해가 저물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잠이 들면 잠 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잠에서 깨면 잠 밖으로 나와야 하는.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세계가 자신을 저버리는, 그 세 번을, 그는 두려워했다. 낮잠을 자다가 깼을 때, 낯설고 무서웠던 경험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딘지, 어리둥절한. 그가 무서워한 것들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그의 두려움은 지금의 나에겐 너무나 철학적으로만 다가온다. 나와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구체적 공포와는 결이 너무도 다르기에.

우리는 이제 어쩌면 가공할 만한 명랑함과 웃음을 억지로라도 장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으로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위로하고 지키며 살아야할 것 같다. 곳곳에 장갑차가 등장하고 의경까지 뽑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위험한 일은 그것들을 피해서 언제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칼부림 사건으로 육십 대 여성이 죽고 뇌사상태에 빠졌던 스무 살 여성도 오늘 끝내 숨졌다. 육십 대 여성은 한 남성의 첫사랑이자 아내인 희남 씨고, 스무 살 여성은 중년 부부의 외동딸인 혜빈 씨다.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신상을 공개한 이유는 범인보다 피해자들을 기억해달라는 의미에서였다.

우울증을 앓던 여성이 매일 낮 햇빛이 가장 반짝이는 시간에 사람들이 붐비는 광장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많이 치유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광장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를 따뜻하게 하고 사람들을 위로한다. 우린 어떻게 해야 명랑하고 활기차고 즐거운 장소와 사람들은 지킬 수 있을까. 끔찍함을 꽃다발과 추모의 기운만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광장과 밀실이 조화로운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또 다른 비극적인 사건이 터졌다는 뉴스를 접한 이 시간, 아무래도 우리는 더 자주 광장으로 나가 서로의 따스함을 나눠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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