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
[기고] 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
  • 이주은
  • 승인 2023.12.17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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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커뮤니티에 생기를 불어넣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보석같은 작품에 박수를 보낸다
△이주은 [사단법인 한지개발원 사무국장]
△이주은 [사단법인 한지개발원 사무국장]

의식주라는 것은 사회 안의 인간에게 꼭 필요한 3대 요소로 화폐로 구입 가능한 것들이다.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누군가 무상으로 우리에게 제공해 줄 수 있다면, 특히 경제활동이 불규칙적이거나 전무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에게 제공해준다면?

예술가에게 한시적으로 창작 공간, 숙식, 결과보고 전시 등을 지원해주는 사업을 작가 레지던시 혹은 창작 스튜디오 사업이라고 칭한다. 이 사업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지난 30년 간 민간과 공공기관 부문 모두 양적 질적 팽창을 가져왔다. 지역의 유휴공간 활용과 도시 재생의 한 역할, 그리고 작가가 상주·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결국에는 예술가의 사회 참여와 문화의 주체로서 그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까지 작가 레지던시의 순기능은 끊임없이 확인된다.

미국의 최초 폐교 창작 스튜디오 전환사업인 ‘P.S. 1(Public school Number 1)’과 같이 우리나라의 폐교 창작 스튜디오 지원사업은 1982년 소규모 학교가 통폐합되어 전국에 폐교가 늘어나면서 미술계의 제안으로 시작되었고, 1998년 시작된 쌈지스튜디오는 20~30대 청년작가를 위한 도심형 창작 스튜디오 지원사업의 효시이다. 그 외 서울시립미술관이 운영하며 전시, 연구 및 학술, 교류로 지원 프로그램을 세분화해 운영하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가나아트갤러리가 후원하는 가나 아뜰리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창동미술 스튜디오, 잠실창작스튜디오, 신진작가부터 원로작가까지 아우르는 영은미술관 경안창작스튜디오,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등 국내 프로그램과 실행기관의 수는 일일이 손꼽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원주에서는 토지문화재단의 ‘창작실’ 운영사업이 작가 레지던시의 대표 사례로 볼 수 있다. 토지문화재단의 토지문화관은 고 박경리 작가가 후배의 창작 후원을 위해 1999년 조성한 공간이다. 토지문화관은 본관, 귀래관, 매지사로 이루어져 있고 매지리의 자연을 벗삼아 편안하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예술가에게는 텃밭에서 생산된 건강한 먹을거리가 제공되는 특징이 있다. 토지문화관은 2001년부터 기숙형 창작실로 운영하면서 국내 최초로 문인 창작실 사업을 시작했고 2004년 국내 예술인 창작실, 2007년 국외 예술인 창작실, 2023년 전문장애예술인 창작실까지 운영하고 있다. 개관부터 현재까지 1,476명의 예술가가 원주의 토지문화관에서 머물며 많은 작품을 생산하며 성과를 냈다.

지난 12월 6일에 올해 토지문화관에서 머물며 창작활동을 이어간 작가 7명의 결과보고회인 <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 전시 개막식에 참석했다. 이 전시는 치악예술관 지하 1층의 전시 공간을 경계, 공존, 존재라는 세 개의 주제로 나눠 전시를 진행했다. 한지와 색을 탐구하는 박진선 작가, 전통 평면작업으로 상상하고 명상하는 최종선 작가, 도시와 자연을 이야기하는 한민경·전소영 작가, 그림책 작업을 하는 한연서 작가, 장애인 예술가이면서 청년구단의 대표로 활동하는 김종훈 작가, 인간 본연의 존재를 점묘로 탐구하는 엄덕용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고, 중간에 작가노트도 설치하여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등 전시 구성이 짜임새 있었고 실무자들의 보이지 않는 애정도 느낄 수 있었다.

숲 속을 헤메다 오는 그들

식사를 끝내고 흩어지는 그들

마치

누에꼬치 속으로 숨어들 듯

창작실 문 안으로 사라지는 그들

오묘한 생각 품은 듯 청결하고

젊은 매같이 고독해 보인다

- 박경리 시 ‘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 중에서 발췌

△전시 오픈식 중 김종훈 작가 [사진=이주은]
△전시 오픈식 중 김종훈 작가 [사진=이주은]

이번 전시의 제목이 박경리 작가의 시의 제목이기도 하며 박경리 작가는 오늘도 본인의 시 속에서 현 시대 예술가를 격려하고 존중한다. 우리가 앞으로 예술가를 내 곁의 동료로,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며 지지해줄 수 있는 것이 최소 예술가를 바라보는 태도라고 생각하며 알게 모르게 우리 커뮤니티에 생기를 불어넣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보석같은 작품에 박수를 보내며 전시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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