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갑진년 새해에 심은 희망의 씨
[살며 사랑하며] 갑진년 새해에 심은 희망의 씨
  • 임길자
  • 승인 2023.12.31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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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믿음과 신뢰가 없는 세상에선 사람이 불안하다. 믿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신뢰를 저버리게 하는 것도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일은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하늘 땅 사이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가장 귀하게 여길 것은 성실함이니 조금이라도 속임이 없어야 한다. 하늘을 속이는 것이 가장 나쁘고, 임금과 어버이를 속이는 것부터 농부가 농부를 속이고, 상인이 상인을 속이는 데에 이르기까지 모두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라며 “성실함으로 남을 믿게 하려면 속이는 일부터 멈추라”고 했다.

또 “거듭 말하거니와 말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전체가 모두 완전하더라도 구멍 하나만 새면 이는 바로 깨진 옹기그릇일 뿐이요, 백 마디 말이 모두 믿을 만하더라도 한 마디의 거짓이 있다면, 이건 바로 도깨비 장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실은 거짓과 속임수가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현실이지만, 그런 성공은 순간적이고 일시적이므로 언젠가는 탄로가 나서 거짓으로 거둔 성공의 몇 십배에 이르는 큰 불행과 맞닥뜨리는 사람들을 우린 보았다.

장자는 “삶은 소풍이다”라고 했다.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또 중간에 틈나는 대로 쉬고 인생을 바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일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소풍을 권했다. 우리는 과거 생(生)에 누군가 지어놓은 공덕을 입고 이 세상에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났다. 그러므로 누군가로부터 삶을 선물 받은 것이다.

이 삶이라는 여행은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 하러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성공하려고 세상에 온 것도 아니다. 하늘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도 의미 없이 세상에 내지 않았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저 하늘이 내려준 하루하루의 삶 그 자체로서 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육십간지 41번째 청룡의 해로 푸른색의 ‘갑(甲)’과 용을 의미하는 ‘진(辰)’이 만나 권력, 힘, 풍요로움을 상징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건강과 화합을 다지는 해돋이를 함께 했다. 시설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어르신들은 갑진년 새해를 어떻게 느끼고 계실까?

“눈이 온 저 길을 내 맘대로 걸어봤으면 좋겠어. 안 되겠지?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부탁할 사람이 생각나질 않아. 애들은 다 바쁘니까. 영감이 5년만 더 살다 오라고 했는데 벌써 10년은 된 것 같아 걱정이네. 기다리다 떠났으면 어떻하지? 하하하” 아흔여덟의 어르신은 창밖을 내다보며 햇살 사이로 스미는 가느다란 기억들을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깊은 우물에서 힘껏 물을 길어 올리듯 어르신의 새해 아침은 깊이 패인 얼룩으로 시작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에 남모르는 희망의 씨 하나를 파묻고 살아간다. 그 희망의 씨앗이 언제 싹을 틔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희망의 싹이 트이기를 기다리며 사는 동안만큼은 살아있다는 사실 앞에서 여전히 순간의 찰나를 느끼며 주어진 길을 갈 것이다.

누군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누군가 그토록 간절히 살고 싶어 했던 세상”이라고 했다. 척박한 땅 돌 틈을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우는 민들레를 살피며 진지함을 배웠던 것처럼, 비바람에 쓸리고 꺾인 나뭇가지 끝에서 생명을 알리는 새순을 발견하며 겸손을 익혔다.

우리가 걸어가는 발자국 마다에 희망을 심으며, 소소히 건네는 언어로 진심을 옮기며, 머무는 곳곳마다 온기가 채워지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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