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쪽파바게트 같은 마음
[안부를 묻다] 쪽파바게트 같은 마음
  • 임이송
  • 승인 2024.03.07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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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리움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것은 생경한 공간을 빨리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이사를 했다. 짐 정리는 밀쳐두고 새 동네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제일 시급한 카페와 마트를 찾기 위해서다.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할 때마다 가장 먼저 찾아보는 곳이 카페와 마트다. 다른 것들은 불편해도 견딜 수 있지만, 이 두 곳이 여의치 않으면 내 삶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집 근처에 큰 마트가 있었는데 얼마 전에 문을 닫아, 장을 볼 만한 곳이 없다는 건 금세 알게 되었다. 집을 중심으로 반경을 넓혀가며 카페 여남은 곳을 찾아냈다.

그다음 날, 가장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가 보았다. 커피 맛과 분위기가 괜찮았다. 그곳에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카페에서 돌아오는 길에 빵집, 세탁소, 편의점, 정육점, 약국, 병원…, 생활에 필요한 공간을 찾아 입력해 두었다. 그다음 날에도 동네를 더 멀리까지 돌아다녀 보았다. 좁은 골목이 주는 낯섦 뒤에 설렘이 따라 붙었다. 미지의 역에 막 도착한 것 같은. 어제를 잊고 오늘을 갓 맞이한 것 같은. 두고 온 동네에 대한 그리움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사를 스무 번쯤 다녔다. 그래서 장소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많다. 그것들로 내 마음에 약도를 그려보라면 그릴 수 있을 만큼이나. 어느 날 그리움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것은 생경한 공간을 빨리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짐 정리를 내버려두고, 동네부터 자꾸만 돌아다닌다.

하루는 또 다른 장소를 걸어 다니다가 나무공예를 하는 가게를 만났다. 궁금하여 들어가 보았다. 주인장이 차를 대접하여 한 시간이나 그곳에 머물렀다. 공예품에 대한 것보다 주인장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다가 왔다.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듯 진심을 다해 들었다. 그가 조그마한 공예품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이제 그곳이 더 이상은 낯선 곳이 아닌, 스토리를 지닌 공간이 되었다.

이사 온 지 일주일 만에 전에 살던 아파트에 가보았다. 4년이나 살았던 곳이 낯설게 다가왔다. 수없이 드나들었던 1층 현관과 우편함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단박에 어떻게 그렇게 흐를 수 있는지 의아했다. 이런 기분을 이번에만 느낀 건 아니다. 같은 도시 안에서 움직였을 때, 우편물을 가지러 전에 살던 곳을 다녀올 적마다 그런 감정을 느꼈다.

사람의 마음 안에 무슨 야릇한 것이 숨어 있기에 그리도 익숙했던 곳을 낯설게 낯선 곳을 익숙하게 만드는지. 그리움에 사무치지 않아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서운했다. 17년을 살다가 떠나온 첫 집을 오래도록 그리워했다. 쉰이 넘어 찾아간 집은 내가 내내 그리워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마당엔 이웃집의 농기계가, 툇마루엔 상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담배 건조실과 마구간은 허물어져 있었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간 몸이 시리도록 그리워했던 감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깨져버린 감정은 동시에 고향마저 잃어버리게 했다. 그리움은 지나온 시간과 사람들과 어울렸던 공간에 의해 내 안에 만들어지는 감정인데….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내 아파트 마당을 나오는데 그곳에서 살았던 시간이 먹먹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람은 제각기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 그리하는 게 자신에게 이로워 내 마음을 그렇게 움직이도록 하였을 것이다.

오늘도 또 동네를 탐색하러 나섰다가, 언젠가 들은 적 있는 유명한 빵집을 만났다. 처음 보는 쪽파바게트를 샀다. 어떤 맛일지 예상이 되면서도 궁금하다. 다음에 빵을 사러 갈 때는 아는 가게가 되어 있을 테지. 나는 이제 새로이 알아가는 것만큼 잊는, 가벼운 마음을 지니게 된 것 같다. 아마도 나이가 주는, 아니면 여러 번의 이사가 부린 마법 때문이겠지. 마음을 마음대로 해도 무해하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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