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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련 만세 노무현 운동권 대한민국농단대란 실행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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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 2017-05-04 23:22:11  |  icon 조회: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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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련 만세 노무현 운동권 대한민국농단대란 실행주범


2012 붉은연대 연합연방 반역통일대란 실행정범


운동권 문재인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바람앞의 촛불입니다.





또 속으면 끝입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편도망국행입니다.











1997. 노무현 -- 전민련



[ ..... 노무현 ...국회의원 시절에도 만약 전민련에서 의원 배지를 떼라면 뗄 각오가 돼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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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숭동에서’는 매달 주제를 갖고 관훈토론식 포럼을 열었다. 그 중에서도 1997년 가을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은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노변호사는 92년 14대 총선, 95년 부산시장 선거, 96년 15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하고, 야권통합과 ‘3김청산’을 주장하며 조직된 국민통합추진위원회(통추)에 몸담고 있다.


“2시간 정도 노변호사가 자신이 걸어온 길과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뒤늦게 운동에 뛰어들어 인권변호사가 된 그의 의식화 연령은 386과 비슷했다. 특히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에 대한 강한 ‘로열티’를 보였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만약 전민련에서 의원 배지를 떼라면 뗄 각오가 돼 있었다는 말도 했다. 그만큼 진정성을 갖고 운동을 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1~2년 정도 지나보니 실제 운동하는 사람들이 그런 각오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실망했다는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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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3/11/25/200311250500011/200311250500011_1.html

[집중 분석]
‘386’ 7년... 여전한 전위부대, 그러나 주류 꿈꾸는 파워맨들









* 전민련 = 전국연합




[ .... 민중해방과 진정한 자유 ·평등 사회 .....


.... 국가보안법 철폐, 토지공개념도입, 민주자유당 해체등의 반파쇼민주화운동과 ... 주한미군 철수 등의 반미자주화운동 ...... ]




[ .... 전국연합)이 결성되면서 해체 ..... ]



*

전민련의 설립 및 활동




설명


1989년 1월 21일 노동자와 농민 등 8개 부문단체와 전국12개 지역단체, 2백여 개별단체가 총망라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1,100여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세대 강당에서 출범하였다. 전민련은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민족민주운동연합 단체였다.



1987년 대통령선거와 1988년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심한 분열상을 보였던 민족민주운동 단체들은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대중운동의 성장을 토대로, 87년 10월부터 민족민주세력의 구심을 형성하기 위한 ‘전국민중운동연합’ 건설논의를 시작했다. 1988년 9월 2일 〈전국민족민주운동협의회 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킨 뒤, 비로소 이날 발족식을 가졌다. 1970년대 명망가 위주의 재야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민중운동의 토대위에서 민족민주운동을 새롭게 발전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전민련은 결성선언문을 통해 진정한 민중해방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반외세 자주화운동, 반독재민주화운동, 그리고 조국통일에 매진할 것을 천명하였다.



조직의 목표는 민중해방과 진정한 자유 ·평등 사회의 실현으로, 이를 위한 당면과제로서 반외세자주화 ·반독재민주화 ·조국통일을 설정하였다. 출범 이후 국가보안법 철폐, 토지공개념도입, 민주자유당 해체등의 반파쇼민주화운동과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 주한미군 철수 등의 반미자주화운동 그리고 8 ·15범민족대회 등의 조국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90년 4월 21일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약칭 전노협)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약칭 전대협) 등 13개 재야단체와 함께 국민연합을 결성하는 등 운동세력의 통일단결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합법정당의 건설을 위해 이부영등이 탈퇴하고, 강기훈유서대필사건등 정권의 탄압으로 조직역량이 약화되었다.


1991년 12월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이 결성되면서 해체되었다.



http://db.kdemocracy.or.kr/photo-archives/view/0075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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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민련 = 범민련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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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한민족의 통일방안과 통일실천에 대해 논의하자는 목적으로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남한의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 1990년 8월 15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제1회 범민족대회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범민족적 통일운동체를 결성하기로 결정해 1990년 11월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남·북한·해외동포 3자 회담을 개최, 범민련을 결성했으며 1990년 12월 범민련 해외본부[1], 1991년 1월23일 범민련 남측본부, 1991년 1월25일 범민련 북측본부가 탄생했다. 범민련은 남, 북, 해외동포에 각각 본부를 구성하는 한편 따로 중앙본부를 꾸리고 남북한, 해외에서 공동의장 1명을 각각 선출하며 부의장과 중앙위원을 따로 선출했다.



문익환 목사[2]가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재독출신 음악가 윤이상이 해외지부 초대위원장을 역임했다.##김구의 남북회담에 김신, 선우진과 함께 북한에 갔다온 신창균(2007년 별세)이 명예회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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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 해마루 -- 이덕우 -- 천정배 -- 임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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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년 조용한 출발, 93년 盧합류



해마루의 출발은 조용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모임)에서 활동하던 천정배ㆍ임종인ㆍ이덕우 변호사는 92년 5월 해마루(해가 돋는 산마루)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이듬해엔 14대 총선에 낙선한 노 대통령이 해마루에 몸을 담았다. 천 원내대표와 민변에서 맺어진 인연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몸만 해마루에 두었지 주로 정치활동을 하느라 천ㆍ임 두 사람이 해마루를 이끌었다고 한다. 해마루의 핵심인사 3인 중 노 대통령은 13대 때, 천 원내대표와 임 당선자는 각각 15대와 17대 때 국회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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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hankooki.com/lpage/politic/200405/wk2004052518464937050.htm







[ .... 93년 노 대통령은 ... 해마루에 합류해 98년까지 활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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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해마루



해마루는 법무법인 중에서 현 정부의 인재 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해마루는 노무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지난 93년 노 대통령은 천정배 변호사, 임종인 변호사 등이 주도한 해마루에 합류해 98년까지 활동했다.



이후 세 사람은 동료 변호사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 천정배 변호사는 지난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현역의원으로는 처음으로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 그는 3선 국회의원으로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가 됐다.


군 법무관 출신인 임종인 변호사도 지난 95년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통추의 주축이던 노 대통령을 도왔다. 임 변호사는 수년째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변론을 맡고 있으며 17대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했다. 지난 17일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전해철 변호사도 해마루 소속이다.



그러나 현재 11명인 해마루 소속 변호사들 중에는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면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변호사들도 포함돼 있다. 박갑주·김수정·이민종 변호사 등은 민노당 인권위원으로 활동하며 지난 총선에선 민노당을 지지하는 변호사 89명의 공동 선언에도 이름을 올렸다.




◆민변



민변에는 500여명의 변호사들이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민변출신 17대 국회의원 당선자 가운데 3선의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재선의 송영길, 이종걸, 유선호 당선자등이 열린우리당 소속이다.

이밖에 행정부에서는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이 민변 초대회장이며,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은 직전 회장이었다.


‘왕수석’으로 통하는 문재인 시민사회수석과 이용철 법무비서관, 박주현 전 참여혁신수석, 최은순 전 민원제안비서관, 이석태 전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청와대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다.



[ 2004.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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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405/200405230365.html










해마루 -- 전민련 후신 전국연합






[ ... 민변)'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하던 임종인, 천정배, 이덕우 세명의 변호사가 의기투합해 .....


.... 소속변호사중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당원이 각각 절반정도씩 ...... ]



[ ... 노무현 대통령도 변호사 시절 해마루에 몸담은 적이 있다...... ]






<7>법무법인 해마루



'수지 김 사건'등 사회적 이슈된 사건에 주도적 관여

천정배, 임종인, 전해철 등 참여정부에도 적극 참여



2004-09-17




얼마전 헌법재판소가 '양심상 병역 거부 행위'의 처벌조항인 병역법 88조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을 당시 이 결정을 특히 관심있게 지켜 본 변호사들이 있다.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종인, 김수정 변호사 등이 그들인데, 이 사건의 대리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법원 전원합의부에서 유죄 판결이 선고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합헌결정이 나는 것으로 법적 시비가 일단락되긴 했지만,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끄집어 내 이슈화시키고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를 이끌어 낸 실질적인 당사자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8월 사건 발생 16년만에 유족들에게 42억원의 손해배상판결이 내려진 '수지 김 사건'도 전해철 변호사 등 법무법인 해마루의 변호사들에 의해 사건의 실체가 규명되고 유족들의 한이 얼마나마 풀릴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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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1년여 전인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하던 임종인, 천정배, 이덕우 세명의 변호사가 의기투합해 해마루합동법률사무소를 설립한 게 시작이라고 한다. 이덕우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 창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초기부터 서울사무소 외에 기업체와 근로자들이 많이 있는 경기도 안산에 근거를 마련한 것도 특징인데, 지금도 공증업무를 수행하는 안산사무소가 주사무소로 돼 있다.


또 한 때 이름을 법무법인 안산으로 바꾼 적도 있지만 서울사무소가 업무의 중심임은 물론이다.

해마루 사람들은 "안산 지원과 지청이 생기기 훨씬 전에 해마루가 안산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해 왔다"고 강조한다.



안산에도 사무소…시국 사건 등에 앞장



이후 뜻을 함께하는 변호사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발전을 거듭해 왔는데, 특히 시국 사건이나 인권 관련 사건 처리에 앞장서 온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12명으로 늘어난 소속변호사 거의 대부분이 민변 소속으로 이른바 '민변 계열'의 대표적인 법률사무소로 분류되며, 소속변호사들은 정치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인 천정배 의원(안산시 단원구갑)과 임종인 의원(안산시 상록구을)을 비롯해 소속변호사중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당원이 각각 절반정도씩 된다고 한다.


전해철 변호사는 지난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노무현 대통령도 변호사 시절 해마루에 몸담은 적이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밖에선 해마루가 참여정부들어 일종의 특수를 누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은 게 사실이나 해마루 사람들은 "그런 사정들이 부담스러울 뿐"이라며 세간의 추측을 부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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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한글 이름인 해마루는 '해가 뜨는 산마루'라는 뜻으로, 해가 뜰 때 이 일대가 가장 환하다고 해마루 관계자는 전했다.










[ 노무현 -- 해마루 -- 이덕우 -- 천정배 -- 임종인 ]



http://weekly.hankooki.com/lpage/politic/200405/wk200405251846493705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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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년 조용한 출발, 93년 盧합류


해마루의 출발은 조용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모임)에서 활동하던 천정배ㆍ임종인ㆍ이덕우 변호사는 92년 5월 해마루(해가 돋는 산마루)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이듬해엔 14대 총선에 낙선한 노 대통령이 해마루에 몸을 담았다. 천 원내대표와 민변에서 맺어진 인연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몸만 해마루에 두었지 주로 정치활동을 하느라 천ㆍ임 두 사람이 해마루를 이끌었다고 한다. 해마루의 핵심인사 3인 중 노 대통령은 13대 때, 천 원내대표와 임 당선자는 각각 15대와 17대 때 국회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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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년 노 대통령은 천정배 변호사, 임종인 변호사 등이 주도한 해마루에 합류해 98년까지 활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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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해마루



해마루는 법무법인 중에서 현 정부의 인재 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해마루는 노무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지난 93년 노 대통령은 천정배 변호사, 임종인 변호사 등이 주도한 해마루에 합류해 98년까지 활동했다.


이후 세 사람은 동료 변호사로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긴밀하게 협력해 왔다. 천정배 변호사는 지난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현역의원으로는 처음으로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 그는 3선 국회의원으로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가 됐다.


군 법무관 출신인 임종인 변호사도 지난 95년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통추의 주축이던 노 대통령을 도왔다. 임 변호사는 수년째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변론을 맡고 있으며 17대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했다. 지난 17일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전해철 변호사도 해마루 소속이다.



그러나 현재 11명인 해마루 소속 변호사들 중에는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면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변호사들도 포함돼 있다. 박갑주·김수정·이민종 변호사 등은 민노당 인권위원으로 활동하며 지난 총선에선 민노당을 지지하는 변호사 89명의 공동 선언에도 이름을 올렸다.



◆민변



민변에는 500여명의 변호사들이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민변출신 17대 국회의원 당선자 가운데 3선의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재선의 송영길, 이종걸, 유선호 당선자등이 열린우리당 소속이다.
이밖에 행정부에서는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이 민변 초대회장이며,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은 직전 회장이었다.

‘왕수석’으로 통하는 문재인 시민사회수석과 이용철 법무비서관, 박주현 전 참여혁신수석, 최은순 전 민원제안비서관, 이석태 전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청와대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다.


[ 2004.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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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405/200405230365.html








* [ 임종인 -- 천정배 -- 전국연합 인권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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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대변인을 맡았다. 변호사로서는 의외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임종인 : 민변에서 일을 하면서 변호사와 사회활동가 사이에 지나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기왕에 하는 일인데 ‘돕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직접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5명의 민변 변호사와 함께 인권위를 만들어 합류한 것이다. 이때 같이 갔던 사람이 지금의 천정배, 유선호, 이종걸 의원 등이다. 4년 일해서 대변인 맡게 되었는데, 이런 게 바로 변호사가 도와주는 관점이 아니라 같은 동지로서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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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7/20040723/20040723111400.html











[ 문재인 ]




2007년 8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위원장

2007년 ~ 2008년 2월 대통령 비서실 실장
2005년 ~ 2006년 5월 대통령 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4년 ~ 2005년 1월 대통령 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2003년 ~ 2004년 2월 대통령 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1996년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민주 사회를 위한 부산-경남 변호사 모임 대표










< 전국연합 전현직간부들 국회의원 등 다수 진출 >






[ .... 임종인(林鍾仁)의원은 1992년~1995년 전국연합 대변인을 .....


....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전국연합을 이끌었던 황인성(黃寅成)씨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차관급)으로 .....


... 전국연합 인권위원장으로 일했던 전해철(全海澈)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차관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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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연합前現職 간부들 국회의원 등 다수 진출>




盧정권 내에는 국보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라는 북한의 對南노선에 동조해 온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 간부들이 상당수에 달한다.



現職 간부로 공직에 진출해 있는 이들은 김금수(金錦守.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 노사정위 위원장·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민간위원), 이창복(李昌馥.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 경기대 관선이사장), 김상근(金祥根.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 법무부 감찰위원회 위원장, `前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위원장), 정동익(전국연합 감사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감사·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위원)씨 등을 들 수 있다.



함세웅(咸世雄) 씨는 2004년 10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명단에서 삭제됐다. 그는 99년 이래 3년여에 걸쳐 덕성여대에 관선이사로 활동해 온 데 이어 최근에는 세종대 관선이사로 파견됐다.




전국연합의 前職 간부들은 열린당과 청와대에 진출한 사람이 많다. 이인영(李仁榮) 의원은 全大協 1기 의장 출신으로 1997년 전국연합 조직국장을 역임했고, 우상호(禹相虎) 의원은 全大協 부의장 출신으로 1992년 전국연합 부대변인을 역임했다.



임종인(林鍾仁)의원은 1992년~1995년 전국연합 대변인을, 이기우(李基宇)의원은 1991년 전국연합 경기남부 조직부장을, 유선호(柳宣浩) 의원은 1992~1993년 전국연합 인권위원, 최규성(崔圭成)의원은 1991년 전국연합 제도정치위원장을 역임했다.




김희선(金希宣) 의원의 경우 1991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범민련)’ 준비위원을 거쳐 1992년 전국연합 통일위원장을 역임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결성단계인 지난 91년 11월1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利敵團體로 判示받은 바 있으며, 지난 97년 5월16일 다시 대법원에서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다시 利敵團體판정을 받았다.





열린당 경기 고양일산을 공천을 받은 김두수(金斗守)씨는 1996~1998년 전국연합 정치국장을 역임했다. 낙선 후 대통령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2005년 11월15일에는 90년대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전국연합을 이끌었던 황인성(黃寅成)씨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차관급)으로 임명됐다. 그는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창립당시 사무국장으로 공직에 진출했고, 2004년 4월에는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발탁됐었다.



2006년 5월3일에는 1996~1997년간 전국연합 인권위원장으로 일했던 전해철(全海澈)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차관급)으로 발탁됐다. 전씨는 2000년 10월 이래 사법부에 의해 ‘반국가단체’로 판시돼 있는 한통련의 명예회복 및 고국방문을 위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밖에도 전국연합 現職간부인 천영세(千永世. 전국연합 상임지도위원, 前전국연합 공동의장), 강기갑(姜基甲. 전국연합 대의원)씨는 민노당 국회의원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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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hogabje.com/board/view.asp?C_IDX=15408&C_CC=BJ


노무현 정권의 正體
淸算야 할 盧정권 내 金日成주의자 등

金成昱

2006-10-30










열린당으로 간 전국연합...`美帝몰아내자`는 남한혁명의 求心


전국연합, ‘2005년 연방제통일 3개년계획’ 결의




전민련의 후신으로 지난 91년 설립된 전국연합의 간부출신자들의 열린당진출도 이번 총선의 특징 중 하나이다.


열린당 서울 구로갑 공천을 받은 이인영씨는 전대협 1기의장 출신으로 1997년 전국연합 조직국장을 역임했고, 열린당 서울 서대문갑 공천을 받은 우상호씨는 전대협 부의장 출신으로 1992년 전국연합 부대변인을, 열린당 부산 해운대기장갑 공천을 받은 최인호 씨는 역시 전대협 부의장 출신으로 1993~1995년 전국연합 산하 부산연합 조직국장을 역임했다.



또 열린당 경기 수원권선 공천을 받은 이기우씨는 1991년 전국연합 경기남부 조직부장을 역임했고, 열린당 경기 안산 상록을 공천을 받은 임종인 씨는 1992년~1995년 전국연합 대변인을, 열린당 경기 안산 단원을 공천을 받은 유선호 씨는 1992~1993년 전국연합 인권위원을, 열린당 경기 고양일산을 공천을 받은 김두수 씨는 1996~1998년 전국연합 정치국장을 역임했다.



한편 열린당 서울 동대문갑 공천을 받고 출마하는 김희선 의원의 경우 지난 1991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이하 범남본) 준비위원을 거쳐 1992년 전국연합 통일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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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과 민중해방을 위해’ 설립된 전국연합은 국내 재야운동권단체를 망라한 통일전선체격의 조직으로서 공안전문가들 사이에서 ‘남한혁명을 리드하는 구심(求心)조직’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전국연합은 설립 이래 국가보안법철폐,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철수, 연방제통일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5일 전국연합 결성 12주년 기념행사에서는 ‘2005년 연방제통일’을 목표로 한 ‘3개년계획완수’를 공식표방하기도 했다.



전국연합은 지난 1월 5일 전국연합사무실에서 열린 29차 상임집행위원회에서 2003년 한 해 동안 전개해온 이라크파병반대 등 반미반전투쟁, 한·칠레FTA체결반대투쟁, 反한나라당투쟁, 송두율석방투쟁 등을 점검한 뒤 향후 4·15총선에 대비한 한나라당해체투쟁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결의하기도 했다.


또 전국연합 오종렬 상임의장은 지난 1월 9일 동국대 중강당에서 열린 ‘우리민족 대 미국의 大결전승리를 위한 결의대회’에서 “130년 동안 내 동포형제들을 그렇게 많이 죽였던 美제국주의를 몰아내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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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기자 2004-04-01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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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 국가안전기획부 「남한 조선노동당」사건 수사결과 발표중에서 ]




[ .... 전국련합에 모든 민주세력을 집중시켜 련합을 튼튼히 꾸리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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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손병선에게 지령한 A-3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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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면하여 민중당 핵심 및 주류 지구당을 이끌고 <전국련합>에 합류하여 전국련합의 강화발전에 기여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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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6. 4


□ 대선국면을 리용 전국련합에 모든 민주세력을 집중시켜 련합을 튼튼히 꾸리며 조직체계를 정비 보강하도록 조직바람

□ 대선시 민주당 후보 밀어주며 이 기회에 침체된 대성 운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임

□ 민주세력 독자후보론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각종악법 철폐 양심수석방, 비핵군축 등을 민주당 후보 지지카드로 리용해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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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이덕우 -- 범민련 후원회 감사




[ .... 공동대표에 ... 이규재 ... 감사에 이덕우 변호사를 선임 .....

....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도 참석 ...... ]





[ ....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 "범민련 12돌을 열렬히 축한한다" ....

.... 저 검은 구름, 비바람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있다" ...... ]





범민련 결성 12돌, `아직도 이적단체 굴레`

후원회 2주년 기념행사도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2002-11-24




남, 북, 해외 3자연대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범민련이 아직 `이적단체`의 굴레를 벗지 못한 채 출범 12주년을 맞았다.

24일 오후 4시 홍익대 체육관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는 400여명의 회원과 축하객이 모인 가운데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12돌 기념대회`를 갖고 6.15공동선언 이행 등을 결의했다.



범민련 남측본부 이종린 의장은 대회사를 통해 "되돌아보면 범민련이 걸어온 길은 통일의 신념과 민족대단결의 의지, 그리고 뜨거운 동포애가 아니었다면, 단 한순간도 지켜낼 수 없었던 혹독하고 엄중한 노정이었"다고 회고하고 "오늘 범민련은 반통일세력들의 민족분열책동에 맞서 민족공조, 민족자주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남, 북, 해외의 광범위한 각계각층을 6.15공동선언의 기치아래 묶어세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자고 호소했다.




범민련 북측본부 안경호 의장은 녹음된 `범민련 북측본부 대회사`를 통해 "참으로 남측본부는 가장 엄혹한 시기에 민족자주와 대단결의 구호를 높이 들고 사상과 정견,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북남해외의 3자연대로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고 조국통일운동을 거족적으로 벌여옴으로써 우리민족 통일운동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기었"다고 평가하고 "현정세속에서 우리 칠천만 겨레 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족공조로 조미불가침조약체결을 위한 운동과 미국의 핵전쟁위험을 막고 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 벌여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첫 번째 축사를 통해 "범민련 12돌을 열렬히 축한한다"고 인사하고 "범민련은 지금 고비에 와 있다.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치고 있다. 그러나 저 검은 구름, 비바람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있다"고 말하고 "잡은 손 놓지 말고 전진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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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오후 2시부터 홍익대 휴게실에서 `범민련 남측본부 후원회 2차 정기총회와 기념행사`가 열려 회칙개정과 임원진 선출이 진행됐다.

70여명의 후원회원과 범민련 관계자들은 2002년 후원회 사업을 보고받고 2003년 사업계획을 승인했으며, 새로운 임원으로 공동대표에 김승훈 신부, 명진 스님, 이규재 건설연맹 지도위원 등을 선임하고 운영위원에 이승호 사이버노동대학 대표등 7명을, 감사에 이덕우 변호사를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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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철 운영위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후원회에는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회원들이 참석했으며,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도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기념대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같은 장소에서 범민련 남측본부와 통일연대가 공동으로 주최한 `평화와 통일의 밤`이라는 문화행사를 관람했다.




<인터뷰 > `국보법 철폐만이 합법화의 길` - 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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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적단체 문제를 돌파할 방안은 무엇인가?

■ 법률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철폐돼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 않고서는 3자연대가 합법화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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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공동선언 이후 `통일연대`가 결성돼 활동하고 있다. 범민련과의 상호관계는 무엇인가?

■ 통일연대는 남쪽의 통일운동 역량을 결집하는 전선체이다. 범민련은 전민족의 통일운동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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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4









[ .... 전민련)이 ... 약화되자 여러 재야운동세력이 재결집해 만든 민족민주진영의 단체 ...... ]



2001.9. 전국연합



[ .... '3년 안에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과 민족민주정당을 건설하여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자.' ...... ]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은 1991년 12월에 결성하여 2007년까지 활동한 대한민국의 정치단체다.



역사



전국연합은 1989년 1월 결성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이 내부 논쟁과 정권의 탄압으로 약화되자 여러 재야운동세력이 재결집해 만든 민족민주진영의 단체였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전국농민회총연맹, 한총련의 전신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등 14개 운동단체와 13개 지역운동단체 등이 포함돼 있다.




1991년 10월 22일 상설연합 준비위원회가 구성됐다. 고광석 전빈련 의장, 지선 전민련 공동의장, 윤정석 대구경북 추진위원회 대표가 준비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같은 해 12월 1일 연세대학교에서 각 운동 부문, 지역 대의원 및 시민 5천여 명이 창립 대의원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대의원들은 강령 등을 확정했다. 창립 대의원대회는 고광석 전빈련 의장, 권종대 전농 의장, 지선 전민련 의장 등을 공동의장으로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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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임시정당이었던 국민승리21이 2000년 민주노동당으로 정식으로 창당할 때 전국연합은 공식적으로는 불참을 결정하였으나, 경기동부, 부산-울산, 광주전남 등 일부 지역연합 구성원들은 민주노동당 창당 시부터 개별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여 활동하였다.



2001년 9월 전국연합은 '3년 안에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과 민족민주정당을 건설하여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자.' 는 취지의 특별결의문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 또는 '9월 테제(9월 방침)'를 채택하였고, 이 결의 이후 전국연합 소속의 인천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한총련 등 단체의 구성원들이 조직적으로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였다.



이에 민주노동당은 당원 수가 크게 증가하고, 전국의 지역기반-조직이 공고해질 수 있었으나, 이 무렵 자주파 계열의 당원들이 증가하면서 창당 당시에는 부각되지 않았던 정파간 노선의 차이 및 이념적 지향을 둘러싼 논쟁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전선운동체인 한국진보연대가 창립되면서 2008년에 전국연합이 공식적으로 해산되지만 전국연합의 조직원들은 각 지역연합별로 그룹화 하여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꾸준히 활동하였다. 통합진보당이 부정 경선과 폭력사건에 따른 분당사태,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한 당 해산을 거치면서 현재는 방향을 달리하고 있다



내부계파


2008년 전국연합의 공식 해체 이후 지역연합들도 실제로는 같이 해체되지만, 해체 이후에도 진보운동 안팎에서는 전국연합의 지역조직을 기준으로 정파분류를 해 오고 있다.


경기동부연합[편집]


경기동부연합(1997년 '성남연합'에서 개칭)은 외대 용인캠퍼스를 비롯한 경기 동남부 학생운동 출신, 성남의 재야세력 등 실제 전국연합에 참가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들과 사상적, 인적 네트워크를 이룬 민족 해방계열 인사(특히 한총련, 한대련 등 학생운동 출신 등)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석기를 중심으로 한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 출신 인사들과의 연계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성남 구 시가지의 도시빈민운동을 기반으로 성장하였고, 1996년 북한동포돕기운동을 통해 조직력을 높였다. 2000년 이전부터 민주노동당에 결합하여 2006년에는 민주노동당의 당권을 쥐었으며, 2012년 7월 부정 경선 사건 이후 혁신 지도부가 구성되기 전까지 광주전남연합과 함께 '당권파'로 활동하였다.


관련 인물로는 이석기 전 의원, 김미희 전 의원, 정형주 전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위원장, 이상규 전 의원, 김재연 전 의원이, 광주전남연합은 김선동 전 의원, 장원섭 전 통합진보당 사무총장, 오병윤 전 의원 등이 있다. 일부 인사들은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2016년 민중연합당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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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9월 22일...소위‘군자산의 약속'...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을 결의......


“2012년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자”는 ......]






[...2005년 7월17일 작성된‘낮은단계연방제 진입국면, 민족민주세력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라는 반제민전 문건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는 낮은단계 연방제가 수립될 수 있고, 향후 민주노동당 집권을 통해 자주적 민주정부가 들어서야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 건설될 수 있다”며 이렇게 적고 있다......]




北 "2012민노당 집권=고려연방제 실현"




민노당 기관지 “盧 정권은 낮은단계연방제 실현”



북한과 남한 내 친북운동권은 연방제 실현에 대해 어떠한 타임테이블을 세워놓고 있을까? 남한 내 상당수 국민들은 노무현 정권의 급속한 친북화로 2007년 대선 이전 연방제 시도 가능성에 우려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북한과 친북운동권은 2012년 민주노동당 집권 시기를 고려연방제 실현 시기로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2007년에 좌파정권을 재창출시킨 뒤 2012년에 민주노동당을 집권시켜 소위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 고려연방제 즉 ‘높은단계 연방제’에 들어간다는 전략이다.

같은 맥락에서 2007년 이전 노무현 정권 임기 내에는 고려연방제 실현을 위한 사전단계인‘낮은 단계의 연방제’또는 그에 준하는 준비작업을 한다는 전술이 도출된다.




2001년 군자산의 약속, 2012연방제 결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상임의장 오종렬) 등 친북운동권은 2001년 9월 22일에서 23일간 충북 보람원 수련원에서 열린 ‘민족민주전선일꾼대회’소위 ‘군자산의 약속’에서는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을 결의한 바 있다. 핵심은 “2012년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자”는 것으로서, 이를 위해 “민주노동당 등 진보적 정당운동 세력과 긴밀히 협력할 것”을 결의했다.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을 통해 원내 10석을 차지하고, 전국연합 계열이 민주노동당 실권을 장악하자, “2012년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은 “2012년 민노당 집권”과 동일시 돼 표현되고 있다.



지난 해 7월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에 실린‘민주노동당의 집권과 높은 단계 연방제 통일의 변증법(21세기코리아연구소 소장 조덕원 著)’이라는 글을 보면, 친북운동권이 노무현 정권은 ‘낮은단계 연방제’를 이룰 정권으로, 민주노동당은‘높은단계 연방제’를 이룰 정당으로 구별해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부를 인용해 보자.


>“以北정권은 진정으로 열린우리당 정권과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을 이룩하려고 한다...낮은 단계 연방제는 以北정권과 열린우리당 정권 사이에도 실현가능하지만 높은 단계 연방제는 以北정권과 자주적 민주정권(민주노동당정권) 사이에서만 실현가능하다. 높은 단계 연방제가 중앙정부에 정치외교권과 군사권을 이양하는 명실상부한 1국가2정부제도이기 때문이다...6.15공동선언을 조국통일의 이정표로 삼고 이를 민족통일선언으로 확인한 조건에서 조국통일의 합법칙적 경로는 以北정권과 以南의 열린우리당 정권(6.15공동선언 지지 親美개량정권)이 낮은 단계 연방제를 실현하고, 以北정권과 以南의 민주노동당정권(연방제 지지 反美진보정권)이 높은 단계 연방제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철학범주로 설명하면 以北정권의 합작대상이 열린우리당 정권에서 민주노동당 정권으로 변증법적 부정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반제민전에 올려진 문건들 역시 친북운동권과 같은 인식을 보이고 있다. 다만 친북운동권은 ‘고려’를 뺀‘연방제’또는‘높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반해 북한은 ‘고려연방제’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2005년 7월17일 작성된‘낮은단계연방제 진입국면, 민족민주세력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라는 반제민전 문건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는 낮은단계 연방제가 수립될 수 있고, 향후 민주노동당 집권을 통해 자주적 민주정부가 들어서야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 건설될 수 있다”며 이렇게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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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기자 2006-03-14











[.... 10년 후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연방통일조국을 ......

.....3년의 계획아래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을 .....]


[ ....민족민주 정당을 건설 ... 대중조직, 전선, 정당 사업을 통일적으로 ...... ]




[ ... 가까운 시일 안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통일이 실현되고 향후 10년을 전후하여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연방통일조국을 ...... ]





* 2001.9.22.



[.....자주, 민주, 통일로 나아가는 우리 민중의 도도한 흐름을 막아 나설 수 있는 힘은 그 어디에도 없다....... ]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를 맞는
전국연합의 정치 조직방침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정당 건설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하여 연방통일조국 건설하자!






시련과 혼란을 마감하고 승리의 새시대를 선언한다.




갑오농민전쟁의 봉화가 오른 이후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 민중은 시련과 고난에 찬 반외세 자주화,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일구어 왔다.
3.1운동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이르기까지 인류역사상 가장 잔악한 일제와 맞서 싸워 조국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애국투사들의 피가 조국산하 곳곳에 배어 있다.


피로서 쟁취한 조국의 해방이 외래 침략자들에 의해 무참히 유린되고 민족의 혈맥이 잘리고 국토가 양단된 채 살아온 지난 55년의 분단 역사는 7천만 겨레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을 안겨 주었다. 민족사의 최대비극인 참혹한 전쟁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측량할 수 없는 민족의 에너지를 민족내부의 대결과 반목에 쏟아 부어야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외세와 사대매국 세력의 가혹한 착취와 극악한 파쇼통치 속에서 민족의 존엄과 정기는 무참히 파괴되고 민중의 삶은 철저히 유린당하였다.

그러나 식민과 분단, 압제의 고통이 클수록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향한 우리 민중의 열망은 더욱 더 뜨겁게 불타올랐으며 55년의 분단역사를 자랑스런 투쟁의 역사로 수놓았다.



4월 혁명에서 부마항쟁으로, 광주민중항쟁에서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온 우리민중의 투쟁의 역사는 말로는 다 못할 고난과 시련의 역사이자 영광스런 승리의 역사이다.

얼마나 많은 애국자들이 자주, 민주, 통일의 제단에 피를 뿌렸던가?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감옥으로 끌려갔던가?



역사의 고비길마다 조국산하를 적셨던 애국열사들의 그 숭고한 피와 땀은 마침내 이 땅 광범위한 민중을 투쟁의 주역으로 불러 일으켰다.

외세와 극악한 매국통치배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었던 각계각층의 대중조직이 전국적으로 만들어지고 마침내 자주, 민주, 통일의 기치아래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었으니 1991년에 창립을 선언한 전국연합은 바로 100여 년에 걸친 우리 민중의 반외세 자주화, 반독재 민주화, 조국통일투쟁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민중의 여망을 안고 출발한 전국연합의 앞길은 시련과 혼란 분열의 연속이었다. 선장이 없는 배가 풍랑을 만나 좌초하듯 지도구심이 없이 분열과 갈등, 이탈을 되풀이하면서 민중의 여망을 저버리고 끝내는 역사 속에서 부끄러운 운명을 마쳐야 하는 위기로까지 내몰렸다.


그러나 이 모든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조국과 민중을 향한 약속을 변함 없이 심장에 새기며 현장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간부일꾼들이 자주민주통일의 기치를 지켜내기 위해 전국연합으로 재차 결집하였다.
그 결과 분열과 혼란의 역사를 마감하고 8기 전국연합을 출범시킬 수 있었다. 거센 풍랑을 만나 부서진 난파선을 수습하여 새롭게 닻을 올린 것이다.




그로부터 간고한 투쟁을 거듭하기를 2년여, 이제 우리는 중대한 역사적 과업을 가슴에 품은 채 새로운 출발을 내외에 선포한다. 전국연합이 겪은 우여곡절은 전선운동의 지도부와 간부들이 실천을 통해 검증되고 단련되는 과정이었기에 새로운 승리를 잉태해 온 역사이다.


신념이 약하고 사상이 똑바르지 않으며, 민중 속에 뿌리박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시련의 고비길에서 낙오하거나 변절하였다. 지금 전국연합에는 지난 10년 동안 온갖 시련과 고난, 혼란 속에서도 민중 속에 몸을 깊이 묻고 묵묵히 기층을 일구며 실천 속에서 단련된 수천의 간부들이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오늘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수립과 연방통일조국 건설의 역사적 대업을 이루고 말리라는 통 큰 전략 목표를 민중 앞에 감히 제시한다.
우리의 이러한 결의와 선언은 우리의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민중 속에 깊이 들어가 민중으로부터 배우고 민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얻으면 필승한다는 신념에 기초한 것이다.




1.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를 맞이하여 10년 후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연방통일조국을 완성하기 위한 비상한 태세를 갖추자!



6.15공동선언은 머지 않은 장래에 분단의 장벽을 걷어내고 겨레를 광명된 통일세상으로 인도할 통일의 대장정이자 이정표이다.

6.15공동선언 이후 정세는 ‘조국통일의 대사변기’로 규정할 수 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통일이 실현되고 향후 10년을 전후하여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연방통일조국을 완성할 수 있는 승리의 길이 열린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것처럼 보이던 제국주의는 침략성과 약탈성으로 말미암아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제국주의 나라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고, 심각한 경제적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전세계적 범위에서 반미 반제투쟁이 거세게 전개되는 가운데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반미, 반제연합전선이 급속히 복원되고 있으며, 미제국주의의 민족분열책동은 파산을 맞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반민주적이며 반통일적인 악법들이 사문화 되는 등 분단지배체제가 근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민족대단결운동이 유례 없는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조국통일운동이 전민족적인 범위에서 힘있게 벌어지는 환경 속에서 광범위한 민중들이 식민통치자, 조국통일의 근본장애물인 미국의 정체를 깨닫게 됨으로써 반미자주화투쟁도 새롭게 고조되고 있다. 반미자주화투쟁이 일부 선각자들과 특정단체를 넘어 노동자, 농민들과 지역민중들, 그리고 시민운동단체, 지식인들에게까지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사회가 민족자주와 민주주의, 조국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로 되고 있다. 이러한 격동적인 정세는 민족민주운동진영에게 10년 내에 자주적 민주정부수립과 연방통일 조국 건설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확고히 세우고 최후의 승리를 위한 주체역량의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을 절박하게 요청하고 있다.




2. 민족민주전선은 승리의 조직적 담보이다. 3년의 계획아래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을 구축하자.



단결은 승리의 요체이며, 단결의 최고 그릇은 민족민주전선이다. 자주, 민주, 통일의 기치 아래 각계각층의 애국적 민주역량을 망라하는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구축은 민족민주운동 승리의 결정적 열쇠이다. 전국연합은 각계각층이 자주, 민주, 통일의 주역으로 거대하게 나서고 있는 정세의 요구에 화답하여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이 중심에 확고히 서고 각계각층 애국적 민주역량을 망라한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구축에 과감하게 떨쳐나설 것이다.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수립과 연방통일조국 건설이라는 역사적 위업을 실현할 민중의 강력한 무기인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 건설!


이는 결코 주관적 희망이 아니다. 우리는 이를 위한 3년의 계획을 세우고 비상한 각오와 비상한 속도로 전개할 것이며,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추진해 나감으로써 눈앞의 현실로 창조할 것이다.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명실상부한 민족민주전선은 첫째, 지역토대를 더욱 굳건히 하는 가운데 부문조직을 폭넓게 결속지음으로써 군중적 기반을 튼튼히 하며, 둘째, 민족민주 정당을 건설함으로써 민중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의 정치세력으로 우뚝 서고, 셋째, 민족민주 간부일꾼들이 전국연합으로의 결집을 강화함으로써 광범위한 민족민주전선을 건설하고 이끌어갈 정치적 구심을 만드는 가운데 건설되어 질 것이다. 그러하기에 민족민주전선일꾼들은 전국연합을 중심으로 정치적 조직적 일치성을 더욱 드높이는 가운데 대중조직, 전선, 정당 사업을 통일적으로 전개해 나가자. 우리 모두의 시선을 3년 뒤 역사를 바꿀 민족민주전선 건설에 두고 각 방면에서의 사업 방향을 일치시키고 하나의 지점에서 결실 맺도록 힘과 지혜를 남김없이 쏟아 붓자.




3. 부문조직의 폭넓은 결집과 지역토대 구축을 통해 민족민주전선의 군중 기반을 비약적으로 확장시키자.



민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 기층 민중 등 부문조직을 결집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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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근거지를 중심으로 지역토대를 비상히 강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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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민중연대, 통일연대를 강화함으로써 각계각층 속으로 민족민주전선을 부단히 확장시켜 나가자.



민족민주전선의 요체는 사상과 정견의 차이를 뛰어 넘어 자주민주통일의 기치아래 단합하여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데 있다. 미 제국주의의 신자유주의 경제침략과 민족분열책동, 호전적 군사패권정책이 노골화되고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이 발표됨에 따라 자주민주통일이 광범위한 대중 자신의 지향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민족민주전선을 폭넓게 확장시키기 위한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국민중연대를 강화하여 각계각층 민중을 반미자주화투쟁으로 안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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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연대를 중심으로 통일민주세력의 광범위한 연대연합을 실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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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층과의 사업을 강화하여 민족민주전선을 비상히 확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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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민족민주정당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정치적 담보이다. 모두가 민족민주정당 건설에 주체적으로 나서자.



부패하고 타락한 기성정치세력에 대한 국민대중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 민중은 자기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할 정당을 가질 권리를 피로서 쟁취해 왔다. 이제 민중의 피로서 쟁취한 합법공간으로까지 과감하게 진출하여 자주, 민주, 통일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광범위한 민중을 정치의 주인으로 묶어 세우자.


식민지 지배질서가 온존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전 민중의 전면적인 항쟁은 미국의 식민지배와 분단장벽을 허물고 자주와 민주, 통일의 새 세상을 안아올 수 있는 지름길이다. 민족민주전선이 자주, 민주, 통일의 기치아래 전민중적 항쟁으로 승리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정당을 가짐으로써 정치적 대안세력으로 다가가야 한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조국통일의 정세에 주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민중의 의사를 대변하는 민족민주정당 건설에 떨쳐나서야 한다.




우리가 건설할 민족민주정당은 자주민주통일을 지향하는 민족민주운동의 본성적 요구에 맞게 준비되고 건설되어야 한다.


첫째,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하는 정당이다.
둘째,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을 중심으로 하고 각계각층 광범위한 애국적 민주역량을 망라한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이다.

셋째, 각계각층 대중조직에 기반하고 민족민주전선에 복무하는 정당이다.
넷째, 선거투쟁과 대중투쟁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정당이다.
다섯째, 민중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는 대중주체의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새로운 형의 정당이다.



민족민주정당의 성패는 간부의 준비와 튼튼한 골간부대의 준비에 달려 있다. 그런만큼 긴 안목을 갖고 간부를 준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아울러 민족민주정당은 수십만 당원을 갖는 양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노동, 농민, 중간세력에서 반드시 정당 건설 주체가 나와야 한다. 이 세 세력이 손을 잡을 때 대중의 자발성을 발동함으로써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자면 다음과 같은 민족민주정당 건설 방침을 구현해야 한다. .



첫째, 각자의 실정과 조건에 맞는 준비태세를 구축한다. 먼저 준비된 지역과 부문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범을 만들고 이를 전파해 나가자.

둘째, 정당사업은 반드시 대중조직을 강화한 데 기초해야 하며 또 기층단체를 활성화하는 데 복무해야 한다. 대중조직, 전선, 정당사업을 통일적으로 결합하자.

셋째, 전략근거지를 선정하고 여기에 힘을 집중하여 제도정치권을 돌파하자.

넷째, 민주노동당 등 진보적인 정당운동 세력과 긴밀히 협력하고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민족민주전당 건설 사업이 폭넓은 통일 단결에 기초하여 추진될 수 있도록 하자.

다섯째, 2002년 지자체 선거와 대선 등 선거투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민족민주정당을 실천적으로 준비하자.



6. 전국연합으로의 일치는 강고한 민족민주전선 건설의 선결 조건이다. 전국연합 대오의 정치적 조직적 통일성을 더욱 강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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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낡은 사업방식을 과감히 혁파하고 사상혁신, 조직혁신, 사업혁신을 통해 자주시대, 통일시대를 열어갈 간부일꾼으로 우뚝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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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2001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가 자주, 민주, 통일운동사에 커다란 족적으로 남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조국과 민족 앞에, 앞서간 선배열사의 영전에 바친 오늘의 약속을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지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다지지 않으면 안된다.


민중의 냉철한 시선은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 지켜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얽매여 편향에 빠지고 오류를 범한다면 역사에 낱낱이 기록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참으로 조국과 민중의 이익에 자신을 복종시키고 역사의 발전 방향에 발걸음을 일치시키며 굳건한 동지애로서 운명을 함께 할 민족민주전선일꾼이 되어 승리의 시대로 기록될 민족민주전선운동의 새로운 10년을 힘있게 개척해 나가자.


21세기는 자주, 통일의 시대이다. 자주, 민주, 통일로 나아가는 우리 민중의 도도한 흐름을 막아 나설 수 있는 힘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고 연방통일조국이 건설되는 그 순간 조국 한반도를 적신 우리들의 피와 땀을 되새기며 뜨겁게 손잡고 승리의 만세를 목청껏 부르자.



2001년 9월 22일











* [ 3년 후 ]




2004.4.15. 과반 의석을 넘는 거대 여당으로 재탄생한 열린우리당.


* 열린당으로 간 전국연합...`美帝몰아내자`는 남한혁명의 求心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45




*

"참여정부, 우리들의 정권이라 생각했죠"


[인터뷰] 운동권 여학생→농사꾼→의성군 의원으로 살아온 임미애씨

07.08.0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6023







2004.6. `전국연합`이 민노당 장악.



[....11명의 최고위원을 뽑는 당 대회에서 전국연합 출신 인물들은 김창현 사무총장을 비롯, 최규엽, 이영희, 하연호, 박인숙, 김미희, 유선희, 이정미 씨 등 모두 8명. 이로써 당연직 최고위원인 천영세 의원을 포함해 12명의 최고위원 중 모두 9명이 전국연합 계열로 구성됐다......]





2005.1. 범민련 남측본부 신년사 2005년 자주통일원년을 맞으며


2005.3. 6.15 남북해외 공동준비위 발족



2005.3.23.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을 반제민족민주전선(반제민전)으로 개칭.





2012.3.10.



야권연대 극적 타결…전국 158곳 후보단일화

막판 진통, 한명숙·이정희 심야 긴급회동 끝에 합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3444




2012.12.16.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 전격 사퇴









* 2003 인터넷에서



[ 수군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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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르조아, 유일한 지배계급의 변모 : 범개혁 국민전선형 신당




<낡은 정치 vs 새로운 정치>가 한국 부르조아 신자유주의 국민개혁의 슬로건이다. 실제로 노무현을 비롯한 새로운 부르조아 정치세력이 내년 총선을 <독자신당론>으로 돌파할 것이라 보아야 한다. 이처럼 <낡은 정치 vs 새로운 정치>라는 슬로건이 대단한 흡수력으로 88% 한국 피지배 신분층들을 결속시키고 있음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묘한 열정과 낭만이 <범개혁 국민전선형 신당> 추진세력들을 들뜨게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안희정-임종석-김근태 등으로 대변되는 민족해방파 국민정치가들의 <민족과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구 국민통합추진회의 출신들-개혁당-국민의 힘-민주당 개혁파-한나라당 개혁파 등등이 <새로운 정치>의 부르조아적 자원들이다. 이들 자유우파 부르조아들과 전국연합-전농-전교조-한국노총-민노총 국민파-범대위-한총련-민노당 자통위-민노당 학생위에 포진한 민족해방파와의 커넥션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이들 좌우 민족주의 국민통합 커넥션을 우습게 보는 논자들에게 다시 당부한다. <새로운 국민통합 정치>의 전개는 민족주의 좌우파의 통합을 바탕으로 강제되는 것이다. 현재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의 유의미한 정치영토의 태반은 민족해방파에 의해서 장악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동격서> 전법이란 것이다.




이러한 좌우를 망라한 <새로운 국민통합 정치>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내부에 두가지 이질적 모순을 담고 있게 된다. 하나는 민족해방파 특유의 '자주적 민주정부'노선으로써 안희정-임종석-민노당 NL류의 종북적 경향들이며, 다른 하나는 신기남-유시민-천정배류의 보다 초국적 신자유주의에 영합하는 국민통합 경향이다. 현재 이 둘은 <민족공조>와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공통목표에 의해 접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 새로운 국민통합 정치의 조직 기반이 과거 민족해방파들인 386 선진층들이며, 정치자금 역시 이제 국가권력을 장악한 노무현에게서 충분하게 제공되리라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조직과 돈, 양자에서 이들 <새로운 국민통합 정치 커넥션>이 독립행보를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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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 노무현 -- 열우당 -- 민노당




[..... 열린우리당은 우리당대로 또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대로 각기 자기 구심을 굳건하게 세워서 그렇게 가는데, 멀리 뒤에서 조그마한 노력이라도 보탤 생각이다." ....... ]





노 대통령 "퇴임 후 정치 할 수 없다"

6월항쟁 인사 초청 오찬... "진보세력에 작은 노력이라도 보탤 것"



황방열 (hby)



[기사 보강 : 19일 오후 6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퇴임 후에 "열린우리당이 지금 흔들리고 있지만 어쨌든 또 열린우리당은 우리당대로 또 민주노동당은 민주노동당대로 각기 자기 구심을 굳건하게 세워서 그렇게 가는데, 멀리 뒤에서 조그마한 노력이라도 보탤 생각"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19일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씨와 박형규 목사, 함세웅 신부 등 6월항쟁 관련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같이 한 자리에서 자신의 퇴임후 계획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현실적으로 퇴임 후 정치할 수 없어"



"남은 20년 동안 얘기를 자꾸 하니까 정치 또 할 거냐 묻는데, 한국의 정서가 대통령제 국가여서 대통령을 마친 사람이 정치를 또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내각제에서는 총리를 마친 사람이 정치를 한다. 정치를 현실적으로 제가 할 수 없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정치를 하지 않으면서도 한국 사회의
2017-05-04 23: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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