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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침략 중공군 항미원조 정율성 만세 백주의 반역이 대한민국을 작살내고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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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침략 중공군 항미원조 정율성 만세 백주의 반역이 대한민국을 작살내고 있읍니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바람앞의 촛불입니다.







2004.6.11.



[ ..... 정율성 선생을 기리는 국제학술대회를 ........

..... 허징즈(前 중국문화부장관) ... 최삼용(중국 정율성 회의 조직자) ... 등이 참석 ....... ]



[ ..... 정기적으로 북경과 연변에서 추모음악회가 개최 .......

..... 영화는 1992년 북한에서 처음 제작된 뒤 2002년 중국에서는 <태양을 향해서>란 제목으로 제작 ........ ]




[ .....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처럼 그를 추모하는 아시아국제음악제 등도 ...... ]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정율성

양림동 출신 '중국 최고 음악가'
남구청 오는 11일 학술대회 열어



정현주

2004-06-01



잊혀진 한 음악가의 생애와 음악을 가까이 불러오는 자리가 마련된다

남구청이 중국 최고 음악인으로 꼽히는 광주 양림동 출신 정율성 선생을 기리는 국제학술대회를 오는 11일 프라도호텔에서 연다.


고 정율성 선생(1914∼1976)은 `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국가 작곡가인 니에얼을 비롯, 샌싱하이 등과 함께 중국 최고 음악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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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의 음악과 독립운동 그리고 한·중 현대사’를 주제로 한 이번 `한·중 문화교류 촉진을 위한 음악가 정율성 기념 국제학술대회’에는 허징즈(前 중국문화부장관), 양회석(전남대 교수), 최삼용(중국 정율성 회의 조직자), 박준희(중국 영화감독), 신정호(전남대 문화예술연구원 교수)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중 현대사를 통해 정율성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한다.


정율성 선생의 부인 딩시에쑹씨와 딸 쩡샤오티씨도 초청된 상태이다.

이번 학술대회와 관련 신정호 연구교수는 “학문적 접근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을 중국 음악인이 직접 공연하는 시간을 갖는 등 의미있는 한·중 문화교류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이 혁명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정율성. 군가, 가사, 대합창, 가극, 영화 삽입곡, 동요 등 300여 곡을 작곡했는데, 대륙적 기질이 돋보이는 `팔로군 행진곡’은 인민해방군가로 88년 중국정부의 비준을 받았고,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식때 연주됐다.



그가 죽은 이듬해에 북경에서 정율성 기념 음악회가 열렸으며 그후 정기적으로 북경과 연변에서 추모음악회가 개최되고 있다. 정율성 관련 영화는 1992년 북한에서 처음 제작된 뒤 2002년 중국에서는 <태양을 향해서>란 제목으로 제작됐다.


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남구청 관계자는 “중국 최고 음악가이자 항일 운동가였던 정율성 선생의 고향이 광주라는 점은 상당히 뜻깊은 일이다. 기념관 건립 및 생가 복원사업을 통해 한·중 문화교류가 더욱 활성화됐으면 한다.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처럼 그를 추모하는 아시아국제음악제 등도 기획할 생각이다”고 사업의지를 밝혔다.


http://www.gjdream.com/v2/news/view.html?news_type=207&code_M=2&mode=view&uid=325511






[ .....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며, 중국인민해방군가로 공식 지정된 팔로군 행진곡등 팔로군대합창을 창작 ....... ]



[ ..... 조선인민군 행진곡(조선인민군을 상징하는 공식적인 군가) 두만강 대합창 등을 창작 .......

..... 12월 중국 인민지원군 창작조로 북한에

..... 1951년 1월께 서울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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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성은 섬북공학을 졸업한 뒤 1938년 3월 노신예술학원이 창립됨에 따라 노신학원에 입학해 음악학부에서 작곡과 성악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이 무렵 그가 작곡한 곡이 중국의 대표적인 항일음악이자 혁명가인 연안송이었다.



보탑산 봉우리에 노을 불타고
연하강 물결위에 달빛 흐르네
봄바람 들판으로 솔솔 불어치고
산과산 철벽 이뤘네
아 연안 장엄하고 웅위한 도시
항전의 노래 곳곳에 울린다.



1937년 중.일 전쟁에서 부터 1945년 일본 항복 때까지 8년간의 항일 전쟁 기간 중 이 노래가 정식으로 출판된 적은 없었지만, 마치 노래가 날개가 돋친 듯 연안에서, 전선으로, 해방구에서 국민당 통치구로 퍼져나갔다.

정율성은 연안송 창작 이후 유명세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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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송은 지금도 중국 대륙에 울려 퍼지고 있다.

중국 국영방송 CCTV 4에서 내보내는 중국혁명 드라마 제목이 바로 연안송이며, 주제곡 또한 그의 노래다.

이 다큐드라마는 수 백만개의 테이프로 제작돼 중국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다.

또 베이징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의 안내 모니터를 보면 대표적인 항일가요로 연안송이 흘러 나온다.

그 뿐 아니라 대도시 공원에서 노래를 배우는 합창단의 악보에는 어김없이 연안송이 들어있다.



1938년 7월말 노신예술학원을 졸업한 율성은 8월께 중국인민항일군정대학 정치부 선전과에 부임했고, 39년 1월 군정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며, 중국인민해방군가로 공식 지정된 팔로군 행진곡등 팔로군대합창을 창작한다.


1990년 9월22일 제11회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혁개방의 기치 속에서 비상을 위해 날개를 펼쳐든 13억 중국대륙의 자존심이 듬뿍 담긴 국가적인 메가 이벤트였다.

이를 상징하듯 중국은 경쾌하고 씩씩하면서도 장중한 중국인민해방군가의 대연주로 아시안게임 개막 테이프를 끊었다.

수 백명의 마칭 밴드가 연주한 중국인민해방군가는 다름아닌 정율성이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이였다.



또한 우리네 독립기념관과 유사한 중국인민항일전쟁 기념관에는 노래 동판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현재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니에얼 작곡)과 팔로군 군가 단 둘 뿐이다.
중국인민해방군가로 지정된 팔로군 행진곡과 항일기념관의 팔로군 군가는 정율성의 팔로군 대합창가운데 한 곡이다.

그의 군가에는 화약냄새가 풍겼으며, 최전선에 선 전사의 기백이 담겨 있었고, 서정송가에는 절절한 항일의 혼이 스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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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용군과 조선혁명군정학교 대원 400여명은 1945년 9월, 드디어 독립된 내 땅을 찾아 옌안을 떠난다. 1933년 중국에 건너왔으니, 어언 12년만에 내 나라 내 겨레를 찾아 가는 길이었다. 장가구(張家口), 금주(錦州)를 걸쳐 기차로 선양까지 도착했다. 해방 당시 2000명 가량이던 조선의용군을 석 달이 지난 11월 중순에 약8만 명으로 증가했다. 중국에 살던 조선 청년들과 특히 일본군으로 중국에 끌려와 있던 한인 병사들이 조선의용군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북으로 갈 수가 없었다. 1944년 조선의용군이 편제상 중공 팔로군 예하 부대로 편입돼 팔로군 명령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며, 특히 소련군이 의용군의 무장 입국을 불허한데서 비롯됐다.

정율성은 의용군 사령관 무정, 김두봉, 최창익, 한빈 등 소수의 노 혁명가에 포함돼 1945년 12월 평양으로 들어가 해주에 음악전문학교를 개교, 북한에 음악의 씨앗을 퍼뜨렸고 인민군 협주단을 창설해 전국 순회 공연을 했으며 조선인민군 행진곡(조선인민군을 상징하는 공식적인 군가) 두만강 대합창 등을 창작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으로 돌아간 뒤 12월 중국 인민지원군 창작조로 북한에 들어가서 활동 한 뒤 1951년 4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북경인민예술극장에서 활동했다.


1951년 1월께 서울에 내려왔을 때 그는 거리에서 귀중한 책자를 발견한다. 바로 조선궁정악보였다. 이 때 그가 챙긴 궁정악보집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유가족에 의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6년 부인 띵쉬에쑹은 문체부를 방문,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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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쟁시기 조선인민군 제6사단으로 개편된 원 중국인민해방군 166사단은 선봉부대로 개성을 공략하고 강화도, 금포를 점령한후 계속 서해안을 따라 전라도의 목포, 광주, 순천을 공략하고 남해안을 에돌아 경상남도의 하동, 진주까지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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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전 조선족, 그후 50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류동수의 흑백사진과 비극의 주인공들


04.06.02

조호진(mindl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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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도(77) "1946년 4월 조선족과 중국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인민해방군에 자원 입대했다. 1949년 7월 북한인민군 6사단 3연대에 편입됐고 1950년 9월 국군에게 포로로 잡혀 거제도에 수용됐다. 1956년 9월 중국으로 귀국했으나 국군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이유로 모든 혜택을 받지 못하고 멸시와 홀대를 받으며 외롭고 고통스러운 젊은 날을 보냈다."


장수학(81) "독립운동에 가담한 아버님이 친일파의 신고로 1930년 4월 일본군에 붙잡혀 총살을 당했다. 1945년 복수를 결심하고 일본 패망 후 잔존해 있던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중국해방전쟁에 참전했으나 3개월 후 동생이 찾아와 장남이니 어머니를 모시라고 지휘관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왕청으로 전출되어 정찰병이 되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남한의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해 참전했으나 장남이라는 이유로 지원군 통역관 반장 임무를 수행했다."


원용걸 "중국해방전쟁에 참전한 뒤 북한 인민군에 편입됐다. 북한 인민군 정예부대요원으로 발탁돼 한국전쟁에 참전, 전쟁 후 북한지역 복구사업에 동원되기까지 8년 정도 있다가 고향에 돌아와서야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8년이란 세월 동안 부모님과 아들을 위해 헌신한 아내가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한민족끼리 총을 겨누며 전쟁을 한 것이 매우 안타깝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기억들로 인해 가슴이 아프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남북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최기성(73) "연길사범에 다니던 1946년 조선족과 중국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동북인민연군에 자원입대, 1950년 북한 인민군 중위로 참전해 대구-부산간 철도폭파 작전을 수행하던 도중 매복 국군에 기습을 받고 중상을 입었다. 전쟁이 끝난 뒤 남파간첩 교관으로 복무하다 1958년 중국으로 귀국했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해 전쟁 당시 싸웠던 곳을 찾아다니면서 말문이 막혔다. 적국이었던 남한은 잘사는 반면, 젊은 날 목숨을 바쳐 싸웠던 북한은 오늘날 굶주림과 가난으로 중국으로의 탈북자들이 늘고 있으니 가슴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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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운하 "참전하고 싶지 않았으나 당시 사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나갔다. 1951년 연길에서 조선족으로 구성된 중공 인민지원군에 입대했으며 이때 함께 참전한 마을동료 13명 중 12명이 전사했다. 강원도 금성에서 조선족 동료들과 함께 미군 3명을 생포해 3급 훈장을 받고 1954년 중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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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89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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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은 중국 공산당 혁명열사들이 묻히는 스징산루(石景山路) 바바오산혁명공묘(八寶山革命公墓)에 묻혀 있으며 비문에 그의 공적이 적혀 있다.


중·북 2개국 군가 독보적…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때 ‘조선인민군행진곡’ 울려


중국 음악계는 정율성 음악가가 두 나라의 군가를 작곡한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일로 평가한다. 정율성은 해방뒤 팔로군총부 6호의 명령에 따라 무정 사령관 통솔하의 조선의용대에 소속돼 가족이 1945년 조선으로 가게 된다.


김일성 주석이 1948년 2월 정율성 음악가에게 수여한 표창장으로 정율성 기념관에 비치되어 있으며 윗상단에 인공기가 아닌 태극기가 표시되어 있다. ⓒ하성봉



북한에서 정율성은 조선국가보안대(조선인민군 전신) 구락부(군 문화부 부장에 해당), 조선노동당 황해도선전부 부장, 조선인민군협주단 단장, 조선국립음악대학작곡부 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 기간중에 조선인민의 투쟁과 중조우의를 담은 <조선인민군행진곡> <중조우의> <조선해방행진곡> <두만강> <동해어부> 등을 작곡하게 된다. 특히 북한은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때 평양 공항에 내린 김대중 대통령을 맞을 때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연주했다. 북한은 1992년 대형예술영화 <음악가 정률성>을 출품하는 등 정율성에 대해 여전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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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99722






2005.10.


광복60돌 기념, 한·중연대 ‘빛나는 항일투쟁사’ 조명


[경향신문 2005-10-17 ]



한국의 광복 60주년과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60주년을 맞아 한·중 역사학자들이 중국에서 의미있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지난 13~15일 한국근현대사학회(회장 장석흥 국민대교수)와 중국 푸단(復旦)대학 역사학계아주연구중심(주임 우징핑 교수) 공동주최로 상하이 푸단대에서 개최된 한국 광복 60주년 및 중국 항일전쟁 60주념 기념 국제학술대회. 20세기 전반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싸운 한·중 양국의 항일연대투쟁의 실상과 역사성을 규명하기 위해 열린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인 학자 11명, 중국인 학자 13명이 주제발표를 가졌다. 주제는 ‘한·중 연대의 항일혁명운동과 혁명가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중국 혁명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계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나 최근 우리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은 좌파 계열의 항일운동가들이 집중적으로 조명돼 눈길을 끌었다.


동국대 한철호 교수는 ‘광동코뮌과 김산’이라는 발표문에서 지난 8월 뒤늦게 건국훈장 애국장에서 추서된 김산(본명 장지락, 1905~1938)의 광동코뮌 활동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광동코뮌은 항일투쟁에 참여한 중국 공산당 남방국 광주위원회가 광동에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한 사건. 한교수는 발표에서 “당시 중국 광주 거주 한국인 대부분이 광동코뮌에 참여했으며 특히 중산의과대학을 다니다 코뮌에 참여한 김산은 전투병·통역관뿐 아니라 의료병으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고 밝혔다. 한교수는 “중국은 사회주의 정부 수립 이후 광동 봉기의 현장에 ‘중조인민혈의정’이라는 기념 정자를 세우며 김산을 비롯한 한국인의 활약상을 기념하고 있다”면서 광동코뮌을 한·중간 우호관계를 도모했던 역사적 사례로 꼽았다.



올해 김산과 함께 서훈을 받은 한위건(일명 이철부, 1896~1937)의 항일투쟁을 고찰한 장규식 박사(서울시립대)는 “3·1학생운동의 기획자, 신간회의 활동가 겸 이론가였던 한위건은 1928년 상하이로 망명한 이후 중국혁명과정에 참여해 이른바 ‘철부노선’을 통해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좌경모험주의를 비판할 정도로 뚜렷한 자취를 남긴 조선인이었다”면서 “한국의 민족해방운동과 중국의 혁명을 대중적 반제 항일투쟁을 매개로 엮어낸 중국 공산당의 거물”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인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연구하고 있는 손염홍 홍익대 교수는 아버지 김기창, 형 김승호·영호, 동생 김상호와 함께 다섯 부자가 중국에서 항일혁명운동에 참여한 주문빈(본명 김성호, 1908~1944)을 발굴, 소개했다. 평북 의주출신인 주문빈은 7살때 가족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간 뒤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 1920년대 중반 공산주의자가 됐다. 이후 고등학교도 마치기 전에 중국 공산당의 지시로 ‘주문빈’으로 개명, 탕산(唐山)·치동(冀東)·톈진(天津) 등지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하다 36세의 나이에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희생됐다. 조선의 애국청년에서 중국의 혁명가로 전환하는 과정을 파헤친 손교수는 주문빈을 허베이성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주도한 ‘국제주의 전사’라고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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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이밖에 이두산(1896~?), 김붕준(1888~?) 등 임정 계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와 동북항일연군에 소속돼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한 중국인 주보중(1902~64)의 항일투쟁이 처음 발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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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 제1회 정율성 국제음악제



[ .... 널리 연주되는 ... '인민해방군 군가'......

..... 혁명성지 옌안을 찬양한 그의'옌안송(延安頌)'과 함께 13억 중국인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노래다. ......

....."한국.북한.중국을 잇는 음악제로 발전시킬 계획" ........ ]




[ ..... 광주광역시 남구 ... 중국문화부 대외문화협력국과 공동 주최 ......

..... 연주는 중국교향악단합창단... 서울심포니...광주시향.광주시립합창단... 국립합창단 ...... ]




혁명음악가 정율성 음악세계 기린다


[중앙일보] 입력 2005.08.07



1990년 9월 22일 베이징 아시안 게임 개막식은 인민해방군 군악대의 힘찬 연주로 시작되었다. 중국에서 국가 '의용군 행진곡' 다음으로 널리 연주되는 '팔로군 행진곡'이었다. 1988년 중국군사위원회가 '인민해방군 군가'로 공식 인정한 이 곡의 작곡자가 한국 태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나 15세 때 중국 공산당에 투신해 항일투쟁을 벌였던 정율성(鄭律成.1914~76.사진)이 옌안(延安)에서 22세 때 작곡했다. 행진곡은 혁명성지 옌안을 찬양한 그의'옌안송(延安頌)'과 함께 13억 중국인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노래다. 300만 중국군이 아침 저녁으로 부를 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행사 때 어김없이 연주되고 있다.



중국인 애창곡 '팔로군 행진곡' 작곡자는 한국 태생


11월 11~12일 광주시에서 이곳 태생의 작곡가 정율성의 음악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국제 음악제가 열린다. 광주광역시 남구(구청장 황일봉)가 중국문화부 대외문화협력국과 공동 주최하는 제1회 정율성 국제음악제다.


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 설명회가 열렸다.참석자는 예술총감독 노동은 중앙대(한국음악학) 교수와 광주광역시 남구 황일봉 구청장, 정율성씨의 외동딸 정소제(62.작곡가)씨 등이다. 정율성이 남긴 작품은 360여편. 광주 문화예술회관에서 이틀간 열리는 이번 축제에서는 가곡.합창.관현악 등 정율성의 대표작 20여곡을 연주한다. 연주는 중국교향악단합창단(지휘 엄량곤), 서울심포니(지휘 조정수),광주시향.광주시립합창단(지휘 유병무).국립합창단(지휘 김명엽), 피아니스트 임미정(울산대 교수) 등이 맡는다.



축제조직위원회가 위촉한 강준일의 서곡 '아! 정율성', 김대성의 '정율성 주제에 의한 피아노 협주곡'도 초연된다.


정율성(본명 정부은)은 15세 때 중국공산당에 투신,항일투쟁을 벌이다 마오쩌둥을 따라 대장정에 참가했다. 옌안으로 건너가 루쉰(魯迅)예술학교에서 수학하면서 혁명음악을 작곡했다. 해방 후 북한에서 조선음악대학 작곡부장으로 활동하다 50년 중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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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일대기를 다룬 영화 '태양을 향하여'(走向太陽)가 상영됐고 정율성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정율성국제음악제는 기초 자치단체가 주도해서 만든 국제 음악제로는 처음이다. 정율성 생가와 기념관, 문화마을 방문 등의 프로그램으로 중국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정율성의 음악과 삶을 공통분모로 한.중 문화교류의 새로운 장을 열 계획이다. 노동은 예술총감독은 "첫 회인만큼 작품 소개에 중점을 뒀다"며 "한국.북한.중국을 잇는 음악제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http://news.joins.com/article/1652211







[ .... 중국 문화부 대외문화협력국과 공동으로 ... `제1회 광주정율성국제음악제’를 .......

....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과 손가정 중국 문화부장 .... 중국교향악단합창단과 지휘자 엄량곤 ........ ]



[ .... 노동은 교수와 북경웅앙음악학원 양무춘 교수, 북한 평양음악대학 김득청 교수를 포함한 남북한과 중국 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율성 선생 관련 학술세미나를 ....... ]



'정율성국제음악제' 11월에 열린다.

중국인 가슴에 살아 숨쉬는 광주 출신 작곡가



강련경 vovo@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05-08-05



중국의 인민해방군가인 `팔로군 행진곡’, 중국의 아리랑으로 불리는 `옌안송’ 등을 작곡한 광주 출신 음악인 정율성 선생(1914~1976)을 기리기 위한 음악제가 열린다.

남구는 중국 문화부 대외문화협력국과 공동으로 오는 11월11~12일 문예회관에서 `제1회 광주정율성국제음악제’를 연다.


`화합과 평화’를 테마로 고국에선 잊혀진 이름인 정율성을 부활시켜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 간 문화의 가교를 만들기 위해 열리는 이번 음악회에는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과 손가정 중국 문화부장을 비롯한 한·중 인사와 중국 관광객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교향악단합창단과 지휘자 엄량곤(嚴良坤)씨 등 중국의 유명 음악인들도 참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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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에는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중앙대 노동은 교수와 북경웅앙음악학원 양무춘 교수, 북한 평양음악대학 김득청 교수를 포함한 남북한과 중국 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율성 선생 관련 학술세미나를 연다.


정율성 선생은 중국 국민의 80% 이상이 그의 노래를 한 곡 이상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 중국에서는 3대 음악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동시에 항일투쟁가이자 혁명가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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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jdream.com/v2/news/view.html?news_type=207&code_M=2&mode=view&uid=342173







“광주정신이 음악에 녹아들어”

정율성 생가 찾은 쑨지야쩡 중국 문화부장



정현주

기사 게재일 : 2005-08-11



“독립과 자유를 선호하는 광주의 지역적 정서와 정신이 정율성 선생의 작품에도 담겨져 있다.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며 나라의 독립과 민주를 외치는 투쟁 과정에서 선생은 음악을 통해 중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광주를 찾은 장관급 인사 쑨지야쩡(孫家正) 중국 문화부장은 “정율성 선생의 예술작품은 한·중 양국 국민들에게 선물”이라며 정율성 음악제를 통한 양국의 문화 교류를 희망했다. 10일 오전 남구청장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오는 11월11∼12일 열릴 `정율성 음악제’에 관한 행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간담회에 앞서 정율성 생가를 방문한 그는 “광주에 처음 왔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광주가 차지한 역할과 정신을 잘 알고 있다. 정율성 선생의 고향인 광주에 와서 보니 선생이 어떻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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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지야쩡 문화부장은 “민간 음악축제로서 이번 음악제가 좋은 결과를 낳길 기대한다”면서 중국 대외문화연락국의 행정적 지원과 중국 언론 협조를 약속했다.


http://www.gjdream.com/v2/news/view.html?news_type=207&code_M=2&mode=view&uid=342394







* 중공군 '인민해방군 군가' , '조선인민군 행진곡' 서울침략 중공군 정율성은 헌양만세 , 이승만 박정희는 죽여죽여 항미원조 부역농단 반역망국 노정권입니다.






2003.3.1. 노무현


[ .....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습니다.

..... 이제 비로소 역사적 전환점이 마련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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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출범으로 이제 아픔의 근, 현대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지난날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좌절과 굴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역사적 전환점이 마련되었습니다. 국민이 진정 주인으로 대접받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참여정부에서는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설 땅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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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a.go.kr/research/contents/speech/index.jsp?spMode=view&artid=1309352

제84주년 3·1절 기념사

연설일자 2003.03.01





* 2005.7. 노무현


[ ..... 역사의 고비마다 ... 분열 세력이 승리 .......

..... 무엇보다 남북 간 분열을 극복해야 ..... ]



[ ..... 이승만 대통령의 남한 단독정권 수립, 이후 지역주의 조장 세력의 장기집권 등을 지칭 ........ ]



“역사 고비마다 분열세력이 승리”노대통령 언급

입력 20050701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평통 12기 전체회의’ 대회사를 통해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지난날 역사의 고비마다 통합을 주장한 사람들은 항상 좌절하고 분열 세력이 승리해왔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나라가 외세에 무릎을 꿇고 국민이 고통을 받았던 국난의 시기마다 내부에는 분열이 있었고 그렇게 겪은 치욕의 역사는 우리에게 분열을 강요해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무엇보다 남북 간 분열을 극복해야 하고, 우리 내부의 지역주의와 남남갈등도 극복할 때가 됐다”면서 “이제 배제와 타도가 아니라 공존하는 문화, 대결이 아니라 협력하는 문화, 투쟁과 타협이 조화를 이루는 문화, 독선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다른 주장과도 합의를 이뤄내는 관용의 문화를 키워가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분열세력 승리’ 언급의 의미와 관련, “이승만 대통령의 남한 단독정권 수립, 이후 지역주의 조장 세력의 장기집권 등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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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5070170367






* 2005.11.3.


윤이상, 겨레의 품으로 '귀환'하다

南조계사.北보현사서 10주기 공동추모법회 개최



2005년 11월 03일 이광길 기자



"이곳 남한의 심장부인 서울 조계사에서 피어오르는 향불과 북녘 보현사의 향불이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타올라가 구천에서 같이 만날 것입니다."


3일 오후 4시, '한국이 낳은 현대음악의 거장'이자 무엇보다 '하나된 민족을 염원'했던 윤이상 선생 10주기를 맞아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개최된 추모법회에서 윤이상평화재단 박재규 이사장은 이같이 선생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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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를 대표해 추도사에 나선 조계종 중앙종회 부회장 원택스님은 "오늘 이 추모제는 선생의 불행했던 영혼을 이제 우리 겨레의 품에 모시는 '윤이상 귀환'의 의미가 있다"면서 "이미 많은 국민들의 정서에 선생은 명예회복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원택스님은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민족지도자로서 삶을 사셨던 선생의 생애가 이제부터라도 마음껏 기려지고 현창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며 "우리 곁에 왔던 위대한 예술가에게 불행한 삶을 살게 했던 지난 시대의 과오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회"하기도 했다.



기독교계를 대표해 추도사를 전한 박형규 목사는 "그간 선생에게 배운 후학들이 많았으나 조국에 돌아와서는 '윤이상에게 배웠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이가 없었다"고 상기하고 "윤이상의 제자임을 떳떳하게 밝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 바란다"고 했다.

아울러 박 목사는 "윤이상은 살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보다 더 확실하게 아름답게 살아있는 걸 알고 슬픔을 거두어 주시길" 부인 이수자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에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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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추모법회에 이은 추모음악회에는 박재규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과 이종수 KBS 이사장, 박형규 목사, 박용길 장로,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신낙균 전 의원,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 특히 생전에 선생을 높이 평가했던 독일정부를 대표해 미하엘 가이어(Michael Geier) 주한독일대사가 참여했다.


열린우리당 신계륜 의원,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등을 비롯해 150여명의 정.관.문화계 인사와 일반시민들이 조계사 대웅전을 가득 메운 채 윤이상 선생을 추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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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0867





2007.9.20. 윤이상 칸타타 부산문화회관에서 초연




[..... 장엄하여라 백두산 억센 줄기

일하는자가 주인인 ......

모두모두 노동의 깃발아래 모여 하나인 ......

그리하여 아침해 부챗살처럼 빛나는 진리 내세울지어다 ......

가장 자연스럽게 외인부대 떠나는 날 .....

불의 노도, 불의 태풍, 혁명에의 전진이여! ...... ]




[ ..... 이제 빼앗는자가 빼앗김을 당해야 한다.

이제 누르는자가 눌림을 당해야 한다. ....... ]




Kantata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가사]




1. 역사



장엄하여라 백두산 억센 줄기
삼천리를 내리 뻗어
수려한 내나라는 동방의 금관
구만리 눈부신 하늘은 대지의 영원한 미소
너울지는 바다는 나부끼는 옷
우리 겨레는 하나이다. (경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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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여, 천지여, 맑은 샘물 넘쳐 흘러라
그리하여 나의 땅은 우뚝 선곳도
후미진곳도 없는 태평 삼천리
돛대 높은 곳엔 사람이 하늘이요
일하는자가 주인인
조상의 넋을 나부껴라. (백기완)


하늘과 땅의 축복으로
비와 눈과 바람과 이슬의 축복으로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를 누리는 나라
노래와 춤의 나라
종교도 도덕도 예술도 문학도
모두모두 노동의 깃발아래 모여 하나인
나라의 꿈
그래서 겨레사랑을 말로 하지 않고
얼싸안고 비벼대는 몸으로 하고
온 몸으로 노래하는 나라 (문익환)




2. 현실 1



한반도는 어둠과 아픔으로, 운명으로 깨달았다
그리하여 아침해 부챗살처럼 빛나는 진리 내세울지어다

이제 때가 왔다. 외세가 가랑잎처럼 구울러가고
이땅의 개망나니 총칼 독재 묻혀버리고
눈보라 개마고원에서, 남포에서, 광주, 마산에서
40년동안의 분단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태워버리고

모든 원한 다 풀어 헤치고 옷고름 풀어 헤치고
옛조선 이래의 질곡 휴전선 억새밭으로 몰려가
산토끼처럼 노루처럼 하늘의 멧새처럼 뛰노는 날

6백리 가시철망 모조리 걷어 치운 날
몇 백개 미사일 뜯어버리는 날 그 날.
아 그 언제인가
가장 자연스럽게 외인부대 떠나는 날
그 날이 닥칠지어다 (고 은)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는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문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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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실 2



우리는 아직도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

그 붉은 선혈로 나부끼는
우리의 깃발을 내릴 수가 없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절규를 멈춘 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 피불로 외쳐 뿜는
우리들의 피외침을 멈출 수가 없다.

불길이여! 우리들의 대열이여!
그 피에 젖은 주검을 밟고 넘는
불의 노도, 불의 태풍, 혁명에의 전진이여!


아름다운 강산에 아름다운 나라를,
아름다운 나라에 아름다운 겨레를,
아름다운 겨레에 아름다운 삶을.

우리들의 목표는 조국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지상에서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정의, 인도, 자유, 평등, 인간에의 승리인,
인민들의 승리인
우리들의 혁명을 전취할 때까지

아, 피를 피로 씻고,
불을 불로 싸뤄,
젊음이여! 정한 피여! 새 세대여! (박두진)





4.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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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가능성의 영원한 존재의 힘 나의 민족이여

일어나라, 더 이상 놀고 먹는자들의
쾌락을 위해 고통의 뿌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빼앗는자가 빼앗김을 당해야 한다.
이제 누르는자가 눌림을 당해야 한다.
바위같은 무게의 천년묵은 사슬을 끊어버려라.

싸워서 그대가 잃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쇠사슬 밖에는 승리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칼에 얼굴이 긁히고
도끼에 뿌리가 찍히고 회세 총알로
몸둥이가 온통 벌집투성이인 그러고도
삭풍에 으젓한 우리나라 상수리 나무여 (김남주)



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
새벽이 오면 이방인들과 그 추종자들이
무서움에 떨며 물으리니
누가 아침으로 가는길을 묻거든
눈들어 타오르는 해를 보게하라

오 오 영광 조국
동방에 나라있어
거기 사람이 살고 있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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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날이 오면
겨울이 가르켜준
모든 언어, 모든 진리로 영광을 빛내자
북을 쳐라, 바다여 춤춰라
오 영광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통일이여! (백기완)








[....온 겨레들을 자주와 통일 구국에의 성전에로 불러일으키는 높은 사상예술성을 가진 걸출한 작품으로서 ........

....조국통일을 앞당겨 오는데 거대한 기여를....... ]





[.... 이 몸이 산산이 쪼각나는 듯한 비통한 마음으로 위대하신 수령님의 서거의 통지를 접하고 허탈상태에 ......

....력사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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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는 애국애족의 충정으로 불타는 윤이상 선생의 숭고한 민족적 량심에서 터져 나온 걸출한 작품으로서...이 교성곡에 담겨있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리념은 무엇보다 먼저 작품의 주제에서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출처 上同)》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는 애국애족의 충정을 담은 작품의 고상한 사상성과 작곡가의 뛰어난 작곡기법에 의하여 담보된 높은 예술성이 훌륭하게 결합된 것으로...온 겨레들을 자주와 통일 구국에의 성전에로 불러일으키는 높은 사상예술성을 가진 걸출한 작품으로서 앞으로 우리 민족의 지상의 임무인 조국통일을 앞당겨 오는데 거대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출처 上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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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llinkorea.net/sub_read.html?uid=16579§ion=section12


'윤이상 공원' 조성, 대통령의 의지인가?

'김일성 집단에 愛國者 윤이상'을 기리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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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선생은 열렬한 애국자』 북한서 칭송받는 윤이상>




윤이상과 북한과의 커넥션을 입증하듯, 북한에서는 20여 년 전부터 「윤이상 음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평양에서는 매년 「윤이상 음악당」에서「윤이상 음악회」가 열린다. 2008년 제27회를 맞이한 「윤이상 음악회」는 같은 해 10월15일~17일 개최됐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개막 공연에는 북한의 중앙예술단체와 윤이상음악연구소 관현악단,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관현악단 예술인들이 출연했고...윤이상 선생의 부인과 딸, 신계륜 이사를 단장으로 한 남측 「윤이상 평화재단」 참관단이 공연을 관람했다.』


92년 북한은 윤이상을 모델로 한 「민족과 운명」이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황장엽 前북한로동당 비서는 자신의 책 「북한의 진실과 허위」에서 『김정일이 애국적 민주인사들을 끌어당기기 위하여 「민족과 운명」이란 제목 밑에 윤이상 선생에 대한 영화까지 만들도록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김정일이 직접 지도한 多부작 극영화 「민족과 운명」은 해외로 망명, 친북으로 변신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북한체제를 홍보하는 선전물이다. 99년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은 「민족과 운명」에 대해 『우리 수령(首領), 우리 당(黨), 우리 인민, 우리 사회주의 조국이 제일이라는 조선민족제일주의 사상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같은 사전은 윤이상 편을 다룬 세 편의 영화(14부~16부)에 대해 『남조선 사회를 등지고 해외에서 살면서 정의로운 음악창작활동으로 조국통일 위업에 적극 이바지한 재능 있는 음악가』가『사회주의 조국의 품에 안겨 작품을 더 훌륭히 되살리어 중앙무대에 내놓게 되며 인민들로부터 찬사를 받게 된다』는 내용으로 설명한다.


북한이 펴 낸 「조선영화(93년 10, 11, 12호)」는 이들 세 편의 영화에 대해『남조선괴뢰도당의 반민족적 분열주의 책동을 예리하게 까밝히면서 사회주의 조국의 품이야말로 개인의 희망도, 포부도, 재능도 활짝 꽃피워주는 참된 삶의 품이라는 것을 힘 있게 확증해주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윤이상을 애국자로 칭송한다. 북한 문건에는 『윤이상 선생은 열렬한 애국자』,『애국애족의 충정으로 불타는 윤이상 선생』,『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윤이상 선생의 애국충정을 헤아려 윤이상 음악 연구소를 꾸려주었다』는 식의 등의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열렬한 애국자가 아닌 작곡가는 애국주의적인 작품을 창작할 수 없으며 민족을 사랑하지 않는 예술가 역시 민족을 위한 예술을 창작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은 열렬한 애국자이며 저명한 반전파쑈민주인사인 것으로 하여 그처럼 숭고한 애국애족의 리념과 온 민족의 열렬한 지향과 념원 그리고 세계평화를 수호하려는 인류공동의 념원을 진실하게 반영한 음악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할 수 있었으며 우리 인민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그처럼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북한 발간 「음악연구」 1990년 2호, 「윤이상음악연구소 연구사, 리차윤」의 글 中)》



《바로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는 애국애족의 충정으로 불타는 윤이상 선생의 숭고한 민족적 량심에서 터져 나온 걸출한 작품으로서...이 교성곡에 담겨있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리념은 무엇보다 먼저 작품의 주제에서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출처 上同)》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는 애국애족의 충정을 담은 작품의 고상한 사상성과 작곡가의 뛰어난 작곡기법에 의하여 담보된 높은 예술성이 훌륭하게 결합된 것으로...온 겨레들을 자주와 통일 구국에의 성전에로 불러일으키는 높은 사상예술성을 가진 걸출한 작품으로서 앞으로 우리 민족의 지상의 임무인 조국통일을 앞당겨 오는데 거대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출처 上同)》



《그것(공연 성공)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에게 안겨주신 뜨거운 사랑과 배려의 결과로 이루어진 담력입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일찍이 윤이상 선생의 애국충정과 재능을 헤아려 우리 조국의 수도 평양에 관현악단을 갖춘 일류급의 윤이상 음악 연구소를 꾸려주시고 연구소의 관리와 운영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펴주시지 않았더라면 오늘과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이 세상에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지만 우리처럼 한 작곡가를 위해 크나큰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는 위대한 령도자를 모신 그러한 인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북한 발간 「음악연구」 2000년 28호, 「윤이상관현악단 악장 김철룡」인터뷰 中)》




<김일성 앞에서 『조국통일을 위해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



김일성은 윤이상을 극찬해왔다. 예컨대 2000년 북한이 펴 낸 김일성 교시집(敎示集) 「재(在)서독교포 윤이상 일행과 한 담화」「재(在)서독 교포 윤이상과 한 담화」등에 따르면, 김일성은 윤이상이『조국통일 위업에 커다란 공적을 쌓아올렸다』며 그를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애국지사』로 격찬했었다.


윤이상이 『조국통일을 위해 앞으로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고 했다』는 김일성의 언급도 나온다. 윤이상은 『주체사상은 현시대에 맞는 사상』이라고 말했고, 김일성은 『그것은 옳은 말』이라고 화답했다는 내용도 수록돼 있다.


조선로동당은 당(黨)규약에서 『조선로동당의...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명시하고, 이를 위해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라는 소위 연방제 통일을 주장해왔다. 논리적으로, 김일성이 말한 조국통일이란 적화(赤化)통일, 공산(共産)통일이다. 따라서 윤이상이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고 다짐했다는 조국통일 역시 적화통일, 공산통일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한민국이다. 북한정권의 『애국지사』 윤이상을 기념하는 음악당 건립에 1480억 원의 국고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상술(上述)한 교시집에서 교시집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윤이상 선생은 범민족통일음악회의 성과를 통하여 조국통일 위업에 커다란 공적을 쌓아올렸습니다....선생은 범민족통일음악회를 통하여 북에서 남조선당국자들의 기만선전을 깨는데도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선생이 조국통일을 위해 앞으로 자기의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고 하는데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나는 선생이 이 사업에서 큰 성과를 거두리라고 믿습니다(재서독교포 윤이상 일행과 한 담화 주체89-2000년 1월20일)》


《선생이 민족의 단결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북남동포호의 소집문제를 제기하였는데 그에 대하여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나는 북남동포회의를 하자는 선생의 제의가 매우 좋은 발기라고 생각하면서 전적으로 지지합니다...나는 선생과 같이 민족분렬을 끝장내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애국지사들이 있기 때문에 조국통일 위업은 반드시 앞당겨지리라고 확신합니다(재서독교포 윤이상과 한 담화. 2000년 1월20일)》


《선생이 주체사상(主體思想)은 현시대에 맞는 사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옳은 말입니다. 우리가 혁명과 건설에서 백전백승하며 커다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은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지침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아무 때든지 선생이 다시 와서 만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재서독교포 윤이상과 한 담화. 2000년 1월20일)》


《위대한 김일성 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내가 윤이상 선생을 아껴야 한다고 한 것은 음악계에서 그런 재간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드물기 때문입니다...그는 우리 민족의 귀중한 재산이고 재간둥이입니다」(북한 발간 음악연구 2000년 28호, 리철우가 쓴「내가 체험한 윤이상 음악」中)》




<『위대하신 수령님 영생불멸(永生不滅)하십시오』>



북한의 「문학예술출판사(주체92(2003)년 출간)」가 펴 낸 「영원한 추억」이란 책자에는 김일성 사망 및 사망 1주년 당시 윤이상과 부인 이수자氏가 썼다는 편지도 수록돼 있다.


윤이상의 편지는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우리 력사 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는 등 김일성에 대한 찬양일변도로 돼 있다.


사진으로도 촬영돼 있는 부인 이수자氏의 글은 김일성 사망 5년을 맞아 금수산기념궁전 방명록에 적은 것이다. 이 글은 『아-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영원한 추억」에 수록된 윤이상 부부의 편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아- 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수령님께서 떠나신지 벌써 어언 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를 이으신 장군님께서 한 치의 빈틈없이 나라 다스리심을 수령님께서 보고 계실 것입니다. 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 우리의 강토를 지켜주시고 민족의 념원인 통일됨을 열어주십시오. 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 (주체88년 7월 8일 리수자)》



《하늘이 무너진 듯한 충격과 이 몸이 산산이 쪼각나는 듯한 비통한 마음으로 위대하신 수령님의 서거의 통지를 접하고 허탈상태에 있는 이 몸이 병중에 있으므로 달려가 뵈옵지 못하는 원통한 심정을 표현하며 전 민족이 한결같이 우리 력사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 (1994.7.9 빠리에서. 치료 중에 있는 윤이상 부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서거 1돐을 맞이하여 그 영령 앞에 심심한 애도와 흠모를 절감하오며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 도이췰란드 베를린의 병원에서 윤이상 삼가 올립니다. (1995년 7월 8일)》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 수령님께서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민족의 재간둥이라고 부르시던 저의 남편 윤이상은 오늘 병원 병석에 누워있어 저와 같이 수령님 령전에 가서 수령님을 뵙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주만사의 원리라고는 하지마는 수령님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신지 벌써 1년이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항상 수령님께서 저희들 곁에 계심을 느끼며 수령님을 추모할 때마다 그 인자하시고 인정 많으시고 눈물 많으신 우주와 같이 넓으신 덕성과 도량, 세상의 최고의 찬사를 올려도 모자라는 수령님, 살아계셨어도 그러하였고 돌아가신 뒤도 부디부디 불우한 저의 민족의 운명을 굽어 살펴주소서. 수령님 령전에 무한한 평화와 명복을 빕니다. (1995년 7월 8일. 리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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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7.6.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 .....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 ... “저도 음악을 전공해서 윤 선생의 음악을 잘 알고 있다”.......


......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조국과 통영의 마음을 이곳에 남깁니다'라고 리본에 적은 꽃을 헌화 ....... ]




김정숙 여사, 윤이상 선생 묘소 찾아…통영서 공수한 동백나무 심어



등록 : 2017.07.06


"학창시절 영감 주신분…고향땅 못밟아 나도 많이 울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고(故) 윤이상 (1917-1995) 선생의 묘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다. 김 여사는 이날 오후 5시30분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Landschaftsfriedhof Gatow)를 찾았다.



'동백림(東伯林)' 사건에 연루된 윤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서다. 윤 선생은 조국 통일을 염원하며 남북한을 오갔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평생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독일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국 역대 대통령 부인이 윤 선생의 묘소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여사는 “윤 선생이 생전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고 고인을 기렸다.


특히 김 여사는 경남 통영의 동백나무 한 그루를 대통령 전용기로 공수해 와 윤 선생의 묘소 바로 옆에 심었다. 통영은 윤 선생의 고향으로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늦게나마 달래주고 싶다는 의미다. 어른 어깨높이의 나무 앞에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석판에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이란 금색 글자가 새겨졌다.


김 여사는 “저도 통영에 가면 동백나무 꽃이 참 좋았는데, 그래서 조국 독립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선생을 위해 고향의 동백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가져오게 됐다”며 “이렇게 큰 나무를 심어도 되나 물어봤는데 된다고 해서 '아 선생님하고 저하고 뭔가 마음이 맞나' 하면서 심었다. 선생의 마음도 풀리시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해 윤 선생과 같은 ‘음악인’인 김 여사는 특히 윤 선생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참배 때는 사회자의 '묵념' 구호에 따라 묵념을 하다가 '바로'라는 신호에도 혼자서 20여초간 더 묵념을 이어갔다. 김 여사는 “저도 음악을 전공해서 윤 선생의 음악을 잘 알고 있다”며 “학창 시절 음악 공부할 때 영감을 많이 주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김 여사는 또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조국과 통영의 마음을 이곳에 남깁니다'라고 리본에 적은 꽃을 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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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kookilbo.com/v/a27c7b70e7da4f18a2d7f045e3fe562f






2017.9.17. 문재인


[ .... “윤이상을 기억하고 되새기려는 통영 시민의 노력에 격려의 마음을 보탠다” ....... ]


문 대통령 “윤이상 되새기려는 통영시민 노력 격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2017.09.17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추모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윤 선생 고향인 경남 통영시가 최근 도천테마기념관의 이름을 ‘윤이상기념관’으로 바꾼 것을 언급하며 “윤이상을 기억하고 되새기려는 통영 시민의 노력에 격려의 마음을 보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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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아직 우리에게 베를린에 잠든 윤이상의 음악은 낯설기만 하다”며 “국민과 함께 윤이상이 사랑했던 이 땅, 이 바다, 이 하늘의 소리를 그의 음악에서 발견하고 즐길 날을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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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10203&artid=201709171800001








[ ..... 반동파를 깨끗이 소멸할 때까지, 마오쩌둥의 기치는 높이높이 휘날린다. .......

..... 동지들 발맞춰 해방의 전쟁터로 달려가자, .......

..... ‘연안송’은 .... 피끓는 젊은 청년들을 연안으로 끌어들이는 촉발제가 됐다 ....... ]




[ ..... 조선인민군협주단 단장, 조선국립음악대학작곡부 부장 등을 역임 ........

.... <조선인민군행진곡>... <조선해방행진곡>... 등을 작곡 .......

..... 북한은 1992년 대형예술영화 <음악가 정률성>을 출품 ....... ]




조선인 음악가 ‘정율성’ 중국 또 하나의 보물 - 중국·북한 2개국 군가 작곡



하얼빈(哈爾賓)에서는 안중근(安重根) 의사 기념관 이외에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있다.


그곳은 ‘정율성 기념관’(鄭律成記念館)이다. 정식 명칭은 ‘인민음악가 정율성 생애사적 전시관’이다. 이름 그대로 이 곳은 정율성 음악가(1914~1976)가 살아 있을 때의 행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안중근 의사가 총으로 직접 적을 쓰러뜨렸다면 정율성 음악가는 노래의 선율로 인민해방군의 심장을 격동시켜 일본을 물리친 혁명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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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더 인정받는 조선인 음악가…‘신중국창건 100명 영웅’에 뽑혀



중국 사람에게 정율성 음악가를 물어 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실제 13억의 중국 인구중 80%이상인 10억의 인구는 정율성이 작곡한 노래를 최소 1곡 이상은 알고 있다. 정율성은 중국 국가(國歌)를 작곡한 네얼(?耳,1912~1935)과 황하대합창을 창작한 셴싱하이(先星海,1905~1945)와 더불어 중국의 3대 음악가로 불린다. 정율성은 2009년 건국 60주년때 ‘신중국창건 100명 영웅’에 뽑혔다.




정율성은 일생동안 서정가곡을 포함해 군가, 합창, 동요, 영화음악 및 오페라음악을 포함한 360여 곡을 남겼다. 그중 중국이 인정하는 정율성의 최대 공로는 ‘연안송’(延安頌)과 ‘중국인민해방군군가’(中國人民解放軍軍歌) 두 곡이다. 이 두곡은 중국 현대음악사에서 큰 줄기를 형성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외에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我們多?幸福)는 아직까지도 초등학교에서 불리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인민해방군군가’는 중국 국가(國歌) 다음의 위상을 갖고 있다. 정율성 기념관에 들어서면 대형 텔레비전 모니터에 육해공 인민해방군인들이 행진하는 영상과 함께 장중하면서도 힘찬 ‘인민해방군군가’가 흘러나온다.



전진, 전진, 전진! 우리의 대오는 태양을 향하고, 조국의 토지를 밟으며 민족의 희망을 ?어지고 있는, 우리는 하나의 무적의 역량. 우리는 농민과 노동자의 자제, 우리는 인민의 무장, 두려움없이, 굴복은 없다. 영특하고 용맹하게 전투해서 반동파를 깨끗이 소멸할 때까지, 마오쩌둥의 기치는 높이높이 휘날린다.


들어라! 바람이 외치고 신호나팔 소리가 울려온다. 들어라! 혁명의 노래소리 얼마나 우렁찬가! 동지들 발맞춰 해방의 전쟁터로 달려가자, 동지들 발맞춰 조국의 변강으로 달려가자, 전진, 전진! 우리의 대오는 태양을 향하고, 마지막 승리를 향하고, 전국의 해방을 향한다!

(출처: ‘중국인민해방군군가’)



중국 정부의 정율성에 대한 평가는 아주 높다. 중국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정율성은 중국의 걸출한 작곡가이다. 또한 유명한 국제주의 전사이다. 그중에 인민해방군군가는 순박간결한 언어와 울림이 있으면서도 힘있고 장엄하고 호방한 곡조를 담고있다. 인민군인의 이미지를 강하게 새겼다. 인민군대의 무한한 전투품격과 산이 첩첩이 줄을 서고 바다를 뒤집는 기세를 보여준다. 진군의 나팔소리와 같이 인민군대 성장의 장대함과 인민전쟁승리의 역정에 따라서 중국인민해방군전투역량과 정치적업무의 한 구성부분이 되었다.”



정율성 기념관을 방문한 중국인들중 팔로군 출신의 옛 병사들은 이 영상을 보면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기념관 입구에서 “샹첸!(向前) 샹첸!(向前) 샹첸!(向前)~” 이란 곡조를 듣다보면 항일 당시의 치열성과 긴장감이 온몸에 전해온다. 중국 대륙을 삼키려는 일본에 대항해 죽음을 각오한 인민해방군들에게 이 노래는 심장의 피를 끓게 하고 곧바로 전쟁터로 달려가도록 만드는 진군의 나팔소리였다.



이 곡은 중국 역사의 큰 줄기와 함께 했다. 이 노래는 홍군이 국민당군을 물리치고 베이징에 입성해 1949년 10월 1일 천안문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선포할 때 불렸다.



정율성 음악가는 1937년 10월에 연안에 가게 된다. 이름도 본명 정부은(鄭富恩)에서 “아름다운 ’선율’(律)로 인민의 목소리를 완성(成)하겠다”란 의미에서 정율성(鄭律成)으로 고쳤다.



그가 ‘인민해방군군가’를 작곡한 것은 1939년 가을로 25살 때였다. 정율성은 공목(公木)과 연안에서 총 8곡으로 구성된 <팔로군대합창>을 창작하였고 <팔로군행진곡>은 그중의 대표곡이다. 이 <팔로군 행진곡>은 1951년 2월 1일 <인민해방군군가>로 이름을 바꾸면서 가사에 약간의 변경이 있었다.



그 뒤 1953년 5월 1일 <인민해방군행진곡>으로 고쳤다가 1965년에 <중국인민해방군진행곡>으로 명명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7월 25일 덩샤오핑(鄧小平)이 서명한 명령에 의해 정식으로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반포되었고 그뒤 군대의 모든 행사, 각종 집체의식 및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에서 널리 유행중이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식때도 울렸고 중국 건국 60주년 기념식때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도 울려퍼졌다. 또 매년 건국기념일 열병식 때마다 톈안먼 광장에서 들을 수 있다.




이와함께 중국 공산당의 혁명기지였던 산시성(陝西省) 옌안(延安) 도착뒤 1년이 안된 1938년 4월 작곡한 ‘연안송’(延安頌)은 서정적이면서도 웅장한 느낌으로 당시 중국 전역에서 애창됐다.



석양의 빛은 산봉우리 탑을 비추고, 달빛은 강가의 반딧불을 비춰주네, 봄바람은 평탄한 벌판에 불어가고, 많은 산들은 견고한 장벽을 이루었네.

아, 연안! 너 이 장엄하고 웅위한 고성(古城), 여기저기에 항전의 노래소리가 울려퍼지네. 아, 연안! 너 이 장엄하고 웅위한 고성, 뜨거운 피가 너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네.



천만 청년의 마음, 적들에 대한 원한을 품었네, 산야와 논밭의 길고긴 행렬에서 견고한 전선을 이루었네. 봐라! 군중들은 이제 머리를 들었노라, 봐라! 군중들은 이제 손을 들어올리노라. 무수한 사람과 무수한 마음, 적들에 대해 분노의 포효를 하고 있네. 사병들은 총구를 겨냥하고, 적들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네.



아, 연안! 너 이 장엄하고 웅위한 성벽, 견고한 항일의 전선을 구축하였고 너의 이름을
2018-02-19 05: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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