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이미 오래부터 법률을 무기로 하여 이루어지는 전쟁을 ‘법률전(法律战)’이라고 규정하고, 이른바 ‘삼전’에 한 연구를 축적하여 왔다. 2003년 12월 수정된 「중국인민해방군 정치공작조례」는 ‘삼전’을 처음으로 규정하고, 학계 에서는 법률의 개념과 삼전의 관계 미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한 각국의 법률 운용 방법 연구 및 그 사례를 수집하여 실제 군의 훈련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한 연구2)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학자들은 법률을 해상에서의 무장충돌에 주로 운용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의 ‘중국 군사력’ 보고서(2009, p. 16)는 ‘삼전’을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Three Warfare’라는 이름으로 ①Legal Warfare, ②Psychological Warfare, ③Media Warfare의 개념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역시 2011년 「국안보장 보고서(NIDS China Security Report)」를 통해 중국의 법률전에 대해 세부적인 분석을 해오고 있다.
중국은 최근 대만을 상대로 ‘여론전’, ‘심리전’ 및 ‘법률전’ 등 이른바 ‘3전(三戰)’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리제(李傑) 대만 국방부장이 9일 대만 입법원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가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중국 인민해방군 내부에서 ‘3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3전’에 대한 연구와 비군사적 무력훈련이 강화되었다.
대만군 당국은 중국의 이 ‘3전’이 전통적인 통일전선 공세를 강화하는 것이며 올해 중국 전인대에서 통과시킬 반(反)분열법(反分裂國家法)도 ‘3전’을 구성하고 있는 법률전의 일환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와 관련 뤼슈롄(呂秀蓮) 부총통도 이날 중국의 반분열법에 대응해 "대만의 법적 지위를 연구해 법률전으로 대항해야 한다"고 강조, 국제법 측면에서 대만이 주권독립국가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의향을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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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중국의 대외정책은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과시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실력을 축적한다)라는 조용한 확대전략이었지만, 금세기에 들어 이 노선에서 대외강경노선으로 변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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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는 여론전(輿論?), 심리전(心理?), 법률전(法律?)(3전=三?)강화에 뛰어들었다. 법률전을 통해 중국행위의 합법성과 상대국의 위법성을 주장하고, 요약하자면 국제 룰의 변경을 요구, 중국의 정의와 상대국의 부정의를 선전함으로써 국내외로부터 지지를 획득하려 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여론전, 법률전은 일본에게도 좋은 교본으로, 국제사회를 향해 또는 중국 국민을 향해 적극적인 발신이 효과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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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정책연구재단 회장 ◆아키야마 마사히로(秋山昌廣)
[ ..... 중국은 내외의 법률을 구사한 ‘법률전’, 선전력으로 우위적인 지위에 오르는 ‘정보•여론전’, 동요시켜 상대방의 반발심을 꺾는 ‘심리전’을 짜맞춘 전술을 ........ ]
흔들리는 일중한】 日, 中 대일비난 강화에 방침전환 ”정면 맞대응”
12/10/02
센카쿠제도(尖閣諸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의 국유화에 따라 대일 비난을 강화시키는 중국에 대해 노다(野田) 정권이 반전 공세에 나섰다. 중국의 언행을 받아 넘기는 종래 방침을 전환하고 국제사회에 “중국 측의 주장에는 논거가 없다”(외무성)며 정면에서 대응하는 전술을 취한다. “일본이 댜오위다오를 훔쳤다”는 중국의 주장에 각국이 귀를 기울인다면 일본이 어려운 입장에 처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양측의 주권과 체면을 건 분쟁이 시작됐다.
▽세 개의 진실
“지금은 법률전, 정보전이 실시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을 알기 쉽게 주장할 필요가 있다”.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郎) 외무대신은 2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다.
국제분쟁의 경우 중국은 내외의 법률을 구사한 ‘법률전’, 선전력으로 우위적인 지위에 오르는 ‘정보•여론전’, 동요시켜 상대방의 반발심을 꺾는 ‘심리전’을 짜맞춘 전술을 강구하는 경우가 많다. 겐바 외상의 발언은 중국의 자세를 주시하고 논전에 지지 않기 위해 대응할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서영득 변호사는 "한·중·일 3국의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돼 우발적 충돌 및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법적 과제의 완비를 통하여 방공식별구역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은 삼전(三戰) 전략의 하나인 법률전의 일환인데, 일방적 선포로 주변국의 주권 및 관할권을 침해하고 공해 상공 비행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며 타국 방공식별구역과 중첩되는 등 문제가 있다"며 "우선 주변국과의 협의를 통하여 중첩구역에서의 처리방안을 논의하는 등 갈등의 소지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법적으로도 미식별 항공기의 식별절차에 관한 법적 근거를 설립하는 등 법제 정비가 필요하고, 또한 세부 요격절차를 수립하여 이를 공시함으로써 요격절차에 내재하는 위험성을 줄일 필요가 있다"며 "방공식별구역 논쟁을 영토분쟁문제로 국한 시킬 것이 아니라 유럽의 예와 같이 평화적인 접근법을 고민할 시기어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중국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야당 의원들이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외교부 고위 당국자들을 잇달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이 한국 정부의 공식 외교라인은 홀대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를 대비해 야당과 적극 교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7일 베이징의 외교소식통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 등에 따르면 같은 당의 강훈식 김영호 정춘숙 의원 등 4명은 5일 오전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들을 만난 데 이어 오후에는 한반도 담당인 류전민(劉振民) 외교부 부부장(차관)과 면담했다.
베이징 소식통은 “연구소와의 만남은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사드 등 한반도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류 부부장과의 면담 주제도 북한 핵·미사일 대응,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를 통해 본 남북협력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류 부부장은 이 자리에서 사드 배치 반대를 주장했고, 의원들은 “사드 갈등의 근본 원인은 북핵에 있으므로 중국과 한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사드 때문에 간 게 아니라 최근 북한을 다녀온 중국 측 인사를 만나 북한 얘기를 듣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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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4일에는 중국 측 6자회담 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민주당 심재권 의원을 베이징에서 만났다.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는 중국의 여행객 제한과 한류 제한 조치에 대한 중국 당국의 입장을 듣기 위해 리진짜오(李金早) 국가여유(旅遊)국장 및 녜천시((섭,접)辰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한 달째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사드 배치를 위한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는데요, 중국 정부에 이어 언론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한국과 중국간의 단교에 준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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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롯데와 한국을 벌하는 것이 중국의 유일한 방법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사설 제목입니다.
롯데를 중국시장에서 축출해 외부세력에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대한 광범위한 불매 운동도 제안했습니다.
한류 콘텐트를 완전히 봉쇄해야하고, 자동차나 휴대전화도 한국산 대신 다른 나라 상품을 구매할 것을 권했습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해외판의 SNS 매체는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한중 관계는 준단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중국 매체가 준단교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겅솽/중국 외교부 대변인 : 외국기업이 중국에서 경영에 성공하느냐 여부는 중국 시장과 중국 소비자가 결정합니다.]
미국은 즉각 중국 견제에 나섰습니다.
미 국무부는 중국이 한국의 자위조치를 압박하는 것은 비이성적이고 부적절하다고 논평했습니다.
한미, 한일 관계가 전과 같지 않으니 중국은 한국을 외톨이로 간주하였고, 더구나 그 한국 안에 자신들을 편드는 세력이 막강하다고 판단, 밀어붙여 사실상 항복을 받아낸 셈이다. 더 확실해진 것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趙甲濟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대하여 사드 추가 배치, MD 참여,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 강화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은 대한민국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굴욕적인 외교 참사이다. 중국이 한국의 방어적 무기 배치에 개입한 것은 주권침해인데, 말을 듣지 않는다고 경제 보복까지 한 것은 명백한 국제규범 위반이다. 우리가 오히려 사과와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북한 핵위협을 막는 데 너무나 핵심적인 3대 사안에 대하여 허무하게 중국에 양보하고 말았다. 중국은 속으로 드디어 한국을 조선조처럼 조공국 신세로 전락시켰다고 기분 좋아할 것이다.
3. 韓美 군사 동맹, 美日 군사 동맹을 연결하는 것은 韓日 우호 관계이다. 유엔군 전방 사령부는 용산에 있지만 후방 사령부는 일본에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에서 함정과 전투기가 출동한다. 한일간의 군사적 협력은 전쟁 수행에 있어서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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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국이 사드 배치를 외교문제로 만들기로 작정한 것은 한국 내에 중국 편을 드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일 것이다. 國論이 단결되어 있었더라면 중국이 감히 이런 억지를 부릴 수 없었을 것이다.
6. 한미일 관계가 강화되었더라면 한국은 미국 및 일본과 공조, 중국에 대응할 수 있었다. 한미, 한일 관계가 전과 같지 않으니 중국은 한국을 외톨이로 간주하였고, 더구나 그 한국 안에 자신들을 편드는 세력이 막강하다고 판단, 밀어붙여 사실상 항복을 받아낸 셈이다. 더 확실해진 것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오늘은 병자호란 이후 최악의 對中 굴욕 외교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태평로] 중국의 三戰에 당한 줄도 모르나
안용현 논설위원
2017.12.02
중국은 상대 국가 다룰 때 심리전 여론전 법률전 써
사드 三不은 법률전에 해당… 習와 회담 때도 당할까 걱정돼
안용현 논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참모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은 중국 부상을 경계하는 책 '웅크린 호랑이'에서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는 2003년 중요한 전투 방식 중 하나로 '삼전(三戰) 전략'을 공식 승인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삼전이란 심리전·여론전·법률전(문서전)을 뜻하는데, 총 한 발 안 쏘고 안보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전략이다.
심리전은 경제·외교 압력, 유언비어 등으로 상대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2011년 중·일 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때 중국이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막은 것이 대표적이다. 여론전은 국내외 여론을 조작해 사람들이 공산당 주장을 무심결에 따르게 하는 것이다. 공산당은 중국의 모든 TV·신문·잡지는 물론 인터넷까지 통제하고 있다. 14억 중국인은 공산당이 조종하는 여론에 따라 흥분하고 분노하는 경우가 많다. 법률전은 각종 문서나 지도, 국제 규약 등을 끌어들여 분쟁 상황을 중국에 유리하도록 왜곡하는 방식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등 각종 분쟁에서 모호한 역사적 근거와 국제법을 내세워 전략적 이익을 굳히려 한다.
중국은 한반도 사드 문제를 다루면서도 '삼전 전략'을 그대로 썼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한국행 관광객을 차단하는 등 경제 제재는 심리전이다. 대중(對中)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두려움과 혼란에 빠뜨리겠다는 계산이다. 이어 모든 관영 매체를 동원해 반한(反韓) 분위기를 조성하는 여론전을 펼쳤다. '소국(한국)이 대국(중국) 이익을 크게 침해했다'는 공산당 선전술에 흥분한 일부 중국인은 한국 상품을 불태우고, 반한 시위에 나섰다. 중국 내 교민들은 신변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공산당은 이 모든 과정을 조작해놓고도 '중국 인민의 자발적 불만 표출'이라며 딱 잡아뗐다.
중국은 마지막으로 사드 합의문을 통해 법률전을 구사했다. 그 결과 '삼불(三不·사드 불추가, 미국 MD 불가입, 한·미·일 3국 동맹 불추진)'을 문서에 넣는 데 성공했다. 우리 외교부는 삼불이 중국 주장처럼 '약속'이 아니라 '입장 표명'일 뿐이라고 하지만 중국 전략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거짓말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는 말을 잘 이해하는 게 중국이다. 관영 매체와 관변 학자를 총동원해 약속이라고 무한 반복하면 어느 순간 진실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11월 29일 자 사설에서 "한국의 삼불 표명은 중국이나 해외에서 보기에는 약속"이라며 "사드가 완전히 철수하기 전에는 한·중 관계의 새 장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중국은 '삼불 굳히기'를 넘어 사드 철수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야금야금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삼불에 더해 일한(一限·배치된 사드 시스템 사용에 제한을 가하라)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중국은 한국의 사드 문제에서 총 한 발 쏘지 않고 이겼다"고 전했다. 한국의 삼불 합의는 중국의 삼전 전략에 완전히 당한 결과라는 평가다.
'사드 봉합'이라는 청와대 발표와 달리 중국 최고 지도부가 잇따라 '적절한 사드 처리'를 압박하는데도 우리 정부는 "사드 협상은 우리가 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해 놓고도 당한 줄도 몰라서 이러는가.
[ ..... NMD, TMD정책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며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 ]
[ .... 외세와 냉전수구 반통일세력의 방해를 극복하고 올해 기필코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결정적 진전을 .......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과 2차 남북정상회담을 조기에 ....... ]
글쓴날 : 2001-04-11
글쓴이 : 범민련 부경연합
제목: 제2차 정상회담 성사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부산지역 각계인사 선언 발
표
어제 6.15 부산시민연대(준) 결성식 공간에서 <2차 정상회담 성사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부산지역 각계인사 선언>의 선언문과 선언참가자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언문과 선언자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2차 정상회담 성사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부산지역 각계인사 선언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이어받은 6.15남북공동선언은 외세가 우리 민족에게 강요한 분단을 자주적으로 극복하고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민족의 통일과 융성 번영을 달성할 것임을 온 세계에 천명한 민족사적 쾌거였다. 더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은 평화와 통일을 향한 민족의 성취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을 향한 우리민족의 대전진에 중대한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것 또한 오늘의 현실이다. 밖으로는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집권과 동시에 '힘의 외교'를 표방하며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시키고 남북화해협력과 통일의 기운에 찬물을 끼얹고 있으며 안으로는 보수야당을 비롯한 냉전수구 반통일세력들이 민족의 이익보다는 분단으로 살찌워온 자신들의 기득권을 고수하기 위해 시대착오적인 남북대결논리를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외세와 냉전수구 반통일세력의 방해를 극복하고 올해 기필코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결정적 진전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온 겨레의 절실한 요구에 따라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선언을 하고자 한다.
<남북당국에 고함>
남북 당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과 2차 남북정상회담을 조기에 성사시키고, 한반도평화선언과 정상회담 정례화를 비롯하여 전쟁방지와 평화통일을 위한 구체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1.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은 우리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온 국민과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을 적극 환영한다.
2. 남북의 양 정상은 2차 정상회담에서 남과 북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무력충돌에 대한 내외의 불안요소를 제거하고 전쟁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한반도평화선언]을 전 세계에 천명해야 한다.
냉전의 마지막 보루라는 오명을 벗고 우리 민족사이에 화해, 교류 협력을 통한 통일의 초석을 다지고 남과 북 사이에 항구적 평화를 보장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3. 남과 북 양 정상은 민족의 통일을 자주적이고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남북의 공동노력을 결집하기 위해 정상회담을 정례화 해야 한다.
4.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 전에 남측당국은 국가보안법의 폐지, 북한에 대한 주적 규정철폐, 평화군축을 포함한 정치군사적 문제의 전향적 해결과 관련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5. 남측당국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외세 의존적 모습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입장을 확고히 견지해야한다. 나라의 통일문제는 그 주인인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 어떤 외세도 자국의 이익을 위할 뿐 우리민족의 통일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외세와의 공조는 자주적 입장에서 벗어나는 것이자 통일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또한 남측당국은 미국에 대해 자주적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여 주한미군의 치외법권적 지위를 규정한 한미행정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진취적으로 개정하고, 북을 공격대상으로 하는 한미합동 군사훈련과 군사비를 축소하여야 한다.
<미국정부에 고함>
미국정부는 한반도 평화보장체제를 규정한 10.12북미공동선언을 이행하고, 세계유일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NMD TMD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동시에, 한반도에서 비정상적인 준전시상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보장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
1. 미국은 10.12북미공동성명이 천명하고 있는 대로 대북 적대정책을 중단하고 북미관계정상화와 한반도 평화보장체제 수립에 적극나서야 한다. 지금 부시행정부의 대북강경발언과 주일미군의 군사훈련으로 인하여 북미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10.12북미공동성명이 천명하고 있는대로 힘에 의한 외교가 아니라 북미간에 맺어진 협정(협약)을 성실히 이행하는 가운데 구체적 평화보장체제 수립의 길로 나가야 한다.
2. 또다시 전세계적인 군비확산과 냉전의 부활을 꿈꾸며 전세계 유일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부시행정부의 시대착오적인 NMD TMD정책은 세계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인들과 함께 부시행정부의 힘의 외교와 NMD, TMD정책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며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정치세력, 언론에 고함>
모든 민족과 정치세력, 언론은 낡은 냉전의식과 편협한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향한 대행진에 함께 나서야 한다.
1.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21세기 우리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업이다.
우리민족 모두는 자신의 이념, 지지정당, 출신지역, 계층, 계급의 차이를
떠나, 민족의 화해와 협력에 동참해 나서야 한다. 민족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주체는 바로 민족 모두이기 때문이다.
2. 정치인들은 자신의 소속된 정당이나 정파의 차이를 떠나 민족의 통일
대업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역사적 소명을 저버린 정치인은 민족으로부터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 모든 민족이 통일역사의 주인으로 나서는 이 시점에 정치인들이 앞장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정치인들은 민족의화해를 위해 당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초당적으로 협력함으로서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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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10일
2차 정상회담 성사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부산지역 각계인사 선언참가자 일동
선언참가자 명단 (총37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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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북공동선언은 민족자주 선언, 민족대단결 선언이며, 통일선언이다. 6.15남북공동선언에는 화해의 정신, 교류와 협력의 길이 열려 있으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을 실현할 방안이 밝혀져 있다. 6.15남북공동선언 1주년 오늘, 7천만 겨레의 가슴에는 반드시 6.15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여 2000년대의 멀지 않은 몇 해 안에 조국통일을 이룩하겠다는 벅찬 희망과 의지로 가득하다.
지금 외세와 반통일 수구세력은 통일로 향하는 민족사의 물줄기를 되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늘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낸 6.15남북공동선언을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로 이어나가느냐, 아니면 반통일 수구세력의 방해에 부딪쳐 민족분열의 역사를 이어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민족의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이 하나되어 힘을 합치면 외세와 반통일세력의 어떤 책동도 통일의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한 민족사의 물줄기를 막을 수 없다.
6.15남북공동선언은 온 겨레의 통일염원을 담아 민족 앞에 내놓은 엄숙한 약속이다.
6.15남북공동선언은 어떤 어려움이 잇더라도 민족의 운명을 걸고 반드시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 행사 계획
① 8.15 59돌 기념 민족통일대회(가) : 민족공동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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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서울 행사
* 8.15 민족통일대회 성사 결의대회(분산개최의 경우 규탄집회로)
- 일시 : 8월 14일 오후 4시
- 장소 : 대학로
- 대회 이후 광화문까지 행진
* 8.15반전평화자주통일대회
<방향>
- 한미동맹 문제는 자주를 실현하는데에도, 민주를 실현하는 데에도, 통일을 실현하는 데에도 반드시 넘지 않으면 안될 과제라는 점에서 전체 평화, 통일진영의 공통화두로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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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정세 자료
0. 들어가며
지난 6.15우리민족대회를 통해 남과 북, 해외는 민족대단합선언을 통해 ??내년은 6.15공동선언발표 5돌이 되는 해이며 조국광복 60돌, 민족분열 60년이 되는 해이다. 남과 북, 해외 온 겨레가 단합하고 또 단합하여 뜻 깊은 내년을 조국통일의 원년으로 만들자!??는 결의를 내외에 천명한 바 있다.
6.15공동선언이행의 단계를 높여가면서 조국통일의 결정적 진전을 이루자는 겨레의 결의를 높여가고 있는 과정에서 최근 조성된 정세는 우리에게 더 확고한 결심과 태세를 요구하고 있다.
북미간, 한미간, 우리민족대 미국사이의 격돌이 현실속에서 계속 격화되고 있으며, 남측내 반통일세력의 준동도 심화되고 있다. 6.15공동선언에 대한 다방면적 도전도 격렬해 지고 있다.
최근 남북관계에 조성되고 있는 심상치 않은 긴장은 6.15이행의 질적도약과정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NLL문제를 비롯하여 남북간 합의 자체를 파탄내려는 반통일호전세력들의 책동이 한편으로 놓여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6.15이행에 실천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남측당국의 반민족적 태도가 놓여 있다.
이러한 총체적 도전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우리민족 대 미국의 대결을 실천으로 해결하고, 반통일적 도전을 분쇄하면서 6.15이행의 질을 높여가는 방향에서 통일원년을 주동적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민족공조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자주통일의 활로를 개척해 나가면서 2005년을 통일원년으로 빛나게 맞이하자!!
..... 허징즈(前 중국문화부장관) ... 최삼용(중국 정율성 회의 조직자) ... 등이 참석 ....... ]
[ ..... 정기적으로 북경과 연변에서 추모음악회가 개최 .......
..... 영화는 1992년 북한에서 처음 제작된 뒤 2002년 중국에서는 <태양을 향해서>란 제목으로 제작 ........ ]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정율성
양림동 출신 '중국 최고 음악가'
남구청 오는 11일 학술대회 열어
정현주
2004-06-01
잊혀진 한 음악가의 생애와 음악을 가까이 불러오는 자리가 마련된다
남구청이 중국 최고 음악인으로 꼽히는 광주 양림동 출신 정율성 선생을 기리는 국제학술대회를 오는 11일 프라도호텔에서 연다.
고 정율성 선생(1914∼1976)은 `중국인민해방군가’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국가 작곡가인 니에얼을 비롯, 샌싱하이 등과 함께 중국 최고 음악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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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의 음악과 독립운동 그리고 한·중 현대사’를 주제로 한 이번 `한·중 문화교류 촉진을 위한 음악가 정율성 기념 국제학술대회’에는 허징즈(前 중국문화부장관), 양회석(전남대 교수), 최삼용(중국 정율성 회의 조직자), 박준희(중국 영화감독), 신정호(전남대 문화예술연구원 교수)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중 현대사를 통해 정율성의 삶과 음악을 재조명한다.
정율성 선생의 부인 딩시에쑹씨와 딸 쩡샤오티씨도 초청된 상태이다.
이번 학술대회와 관련 신정호 연구교수는 “학문적 접근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을 중국 음악인이 직접 공연하는 시간을 갖는 등 의미있는 한·중 문화교류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이 혁명의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정율성. 군가, 가사, 대합창, 가극, 영화 삽입곡, 동요 등 300여 곡을 작곡했는데, 대륙적 기질이 돋보이는 `팔로군 행진곡’은 인민해방군가로 88년 중국정부의 비준을 받았고,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식때 연주됐다.
그가 죽은 이듬해에 북경에서 정율성 기념 음악회가 열렸으며 그후 정기적으로 북경과 연변에서 추모음악회가 개최되고 있다. 정율성 관련 영화는 1992년 북한에서 처음 제작된 뒤 2002년 중국에서는 <태양을 향해서>란 제목으로 제작됐다.
정율성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남구청 관계자는 “중국 최고 음악가이자 항일 운동가였던 정율성 선생의 고향이 광주라는 점은 상당히 뜻깊은 일이다. 기념관 건립 및 생가 복원사업을 통해 한·중 문화교류가 더욱 활성화됐으면 한다.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처럼 그를 추모하는 아시아국제음악제 등도 기획할 생각이다”고 사업의지를 밝혔다.
율성은 섬북공학을 졸업한 뒤 1938년 3월 노신예술학원이 창립됨에 따라 노신학원에 입학해 음악학부에서 작곡과 성악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이 무렵 그가 작곡한 곡이 중국의 대표적인 항일음악이자 혁명가인 연안송이었다.
보탑산 봉우리에 노을 불타고
연하강 물결위에 달빛 흐르네
봄바람 들판으로 솔솔 불어치고
산과산 철벽 이뤘네
아 연안 장엄하고 웅위한 도시
항전의 노래 곳곳에 울린다.
1937년 중.일 전쟁에서 부터 1945년 일본 항복 때까지 8년간의 항일 전쟁 기간 중 이 노래가 정식으로 출판된 적은 없었지만, 마치 노래가 날개가 돋친 듯 연안에서, 전선으로, 해방구에서 국민당 통치구로 퍼져나갔다.
정율성은 연안송 창작 이후 유명세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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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송은 지금도 중국 대륙에 울려 퍼지고 있다.
중국 국영방송 CCTV 4에서 내보내는 중국혁명 드라마 제목이 바로 연안송이며, 주제곡 또한 그의 노래다.
이 다큐드라마는 수 백만개의 테이프로 제작돼 중국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다.
또 베이징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의 안내 모니터를 보면 대표적인 항일가요로 연안송이 흘러 나온다.
그 뿐 아니라 대도시 공원에서 노래를 배우는 합창단의 악보에는 어김없이 연안송이 들어있다.
1938년 7월말 노신예술학원을 졸업한 율성은 8월께 중국인민항일군정대학 정치부 선전과에 부임했고, 39년 1월 군정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하며, 중국인민해방군가로 공식 지정된 팔로군 행진곡등 팔로군대합창을 창작한다.
1990년 9월22일 제11회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혁개방의 기치 속에서 비상을 위해 날개를 펼쳐든 13억 중국대륙의 자존심이 듬뿍 담긴 국가적인 메가 이벤트였다.
이를 상징하듯 중국은 경쾌하고 씩씩하면서도 장중한 중국인민해방군가의 대연주로 아시안게임 개막 테이프를 끊었다.
수 백명의 마칭 밴드가 연주한 중국인민해방군가는 다름아닌 정율성이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이였다.
또한 우리네 독립기념관과 유사한 중국인민항일전쟁 기념관에는 노래 동판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현재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니에얼 작곡)과 팔로군 군가 단 둘 뿐이다.
중국인민해방군가로 지정된 팔로군 행진곡과 항일기념관의 팔로군 군가는 정율성의 팔로군 대합창가운데 한 곡이다.
그의 군가에는 화약냄새가 풍겼으며, 최전선에 선 전사의 기백이 담겨 있었고, 서정송가에는 절절한 항일의 혼이 스며 들었다.
조선의용군과 조선혁명군정학교 대원 400여명은 1945년 9월, 드디어 독립된 내 땅을 찾아 옌안을 떠난다. 1933년 중국에 건너왔으니, 어언 12년만에 내 나라 내 겨레를 찾아 가는 길이었다. 장가구(張家口), 금주(錦州)를 걸쳐 기차로 선양까지 도착했다. 해방 당시 2000명 가량이던 조선의용군을 석 달이 지난 11월 중순에 약8만 명으로 증가했다. 중국에 살던 조선 청년들과 특히 일본군으로 중국에 끌려와 있던 한인 병사들이 조선의용군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북으로 갈 수가 없었다. 1944년 조선의용군이 편제상 중공 팔로군 예하 부대로 편입돼 팔로군 명령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며, 특히 소련군이 의용군의 무장 입국을 불허한데서 비롯됐다.
정율성은 의용군 사령관 무정, 김두봉, 최창익, 한빈 등 소수의 노 혁명가에 포함돼 1945년 12월 평양으로 들어가 해주에 음악전문학교를 개교, 북한에 음악의 씨앗을 퍼뜨렸고 인민군 협주단을 창설해 전국 순회 공연을 했으며 조선인민군 행진곡(조선인민군을 상징하는 공식적인 군가) 두만강 대합창 등을 창작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국으로 돌아간 뒤 12월 중국 인민지원군 창작조로 북한에 들어가서 활동 한 뒤 1951년 4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북경인민예술극장에서 활동했다.
1951년 1월께 서울에 내려왔을 때 그는 거리에서 귀중한 책자를 발견한다. 바로 조선궁정악보였다. 이 때 그가 챙긴 궁정악보집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유가족에 의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6년 부인 띵쉬에쑹은 문체부를 방문, 기증했다.
리영희는 지난 3월에 발간된 「대화」라는 책에서 소년 시절 社會主義 사상에 경도되어 있던 외삼촌 최모린을 존경했다고 밝혔다. 그 다음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은 巨富였던 외조부 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 사라진 뒤 독립군의 일원이 되어 세 번에 걸쳐 외조부의 재산을 털고 끝내 외조부를 총으로 죽인 머슴 문학빈(그후 일본군에 협조한 것으로 밝혀짐)을 憧憬(동경)하며 성장했다고 말했다.
리영희는 미군 통역관으로서의 軍생활과 외신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軍의 불합리와 부패, 그리고 당시 기자 사회에서 나타난 부조리와 연줄관계에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리영희는 「그 代案으로서 중국혁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는 중국 毛澤東(모택동)의 중국 사회주의 혁명과 1965년에 일어났던 文化革命(문화혁명)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의 사상적 기조를 형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그후 일관되게 親北 논조를 유지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사회주의국가에 대해서는 동경하는 태도를 견지해 오고 있다.
리영희는 『문화대혁명은 자본주의의 조건에서 만들어진 인간을 개조하여 사회주의적 인간을 만드는 것과, 계급분화의 제 조건을 근본적으로 제거함으로써 평등한 인간사회를 보장·발전시키는 사회구조를 창조하자는 두 가지의 목적을 지닌 운동』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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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리영희는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毛澤東을 극찬하고 있다. 그는 한 서방의 평자의 말이라고 하면서 『레닌은 최초의 사회주의혁명은 하였으나 공업화는 못 했다. 스탈린은 공업화는 했으나 인간혁명은 못 했다. 毛澤東은 공업화와 인간혁명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최대의 극찬을 늘어 놓았다.
리영희는 한마디 더 덧붙인다. 『문화혁명이라는 급격하고 웅장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미국 기자들만 모를 뿐 全세계에 널리 알려진 지 오래다』 리영희는 『毛澤東은 레닌과 스탈린을 뛰어넘은 위대한 사회주의 사상가로서 인간의 평등사회에 대한 꿈을 실현하는 올바른 노선에 있다』고 했다. 그 노선의 실현이 문화대혁명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리영희는 1977년 발간된 「우상과 이성」에서 문화혁명 당시의 「下放(하방: 지식인을 지방으로 내려보내 노동을 시키는 운동)」을 「인간우선주의」의 실천으로 부르고 있다. 그는 『이러한 문화혁명의 과정이 (스탈린의 경우처럼) 무시무시한 내부 숙청이 아니라 이론정립과 토론, 자기비판, 설득 등 매우 인간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다』고 찬양했다.
그 예로 『가장 극심한 비판을 받았던 劉少奇도 北京 교외에서 현재 再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리영희의 毛澤東 숭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毛澤東은 인간적으로 그릇이 매우 큰 영웅의 풍모를 지녔고 동시에 사상가·교육가·정치가·전략가·詩人 등 다양한 자질을 한몸에 지닌 인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리영희는 더 나아가 『毛澤東이 사회주의 혁명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마르크스·레닌·스탈린 세 사람을 합친 것보다 위대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인연으로 저는 선생님의 두 차례 중국여행을 직접 함께하는 행운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 여행은 1997년 4월로 기억하는데,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가 하신 후 베이징을 둘러보시는 일정이었는데, 선생님이 존경한 중국작가 루쉰(魯訊) 기념관과, 광주출신으로 중국혁명에 참가했던 정율성(郑律成)을 비롯한 중국의 혁명 열사들이 묻혀있는 빠바오샨(八宝山)혁명열사묘지, 마오쩌뚱이 지키고 있는 티엔안먼(天安門)광장 등을 둘러 보셨습니다.
....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등을 다 읽었다 .... 그것 보고 (노 대통령이) 의식화 되신 것 .......... ]
문재인 “리영희 선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
2010-12-07
우리시대 ‘사상의 은사’였던 리영희 선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회에 눈을 뜨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7일 오후 리영희 선생 빈소가 차려진 서울 신촌 연세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 조문하고, 부인 윤영자(78)씨를 만나 “선생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정신적인 스승이었다”고 말했다.
문 전 비서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범한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부일 사건’을 통해 사회의식을 가지게 되었는데, 피고인을 변호하면서 선생님의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등을 다 읽었다고 하더라. 그것 보고 (노 대통령이) 의식화 되신 것”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정신적인 스승”이라고 말했다.
문 전 실장은 “리영희 선생이 참여정부 기간에 진실과화해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아 과거사 정리 작업에 격려를 많이 해주셨고, 최근에는 노무현재단의 고문을 맡아 몸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도움을 주셨다”며 “참여정부를 많이 응원해 주셨다”고 소개했다.
문 전 실장은 “우리 세대들에게나 학생운동, 민족운동 한 사람들은 선생님 영향이 절대적 이었다”며 “개인적으로도 선생님을 통해 이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지식인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을 배우고 큰 사표가 되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