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임을 위한 행진곡
<세상의 자막들>임을 위한 행진곡
  • 임영석
  • 승인 2017.05.22 0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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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영석 <시인, 문학평론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내가 애국가 다음으로 많이 부른 노래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는 시민운동가도 아니고 진보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이 노래 말속에 깃든 정신이 너무나 절절하고 가슴 깊이 다가와 내 정신을 올곧게 다잡기 위해 부르는 노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를 함께 하였던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 아득한 산 넘어 산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지난 세월이 아닌가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중 계엄군에 희생된 윤상원씨와 1979년 노동 현장에서 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1981년)에 헌정된 노래다. 소설가 황석영 씨가 백기완 선생의 옥중지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가사를 썼고, 전남대 재학생이던 김종률씨가 작곡을 한 노래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노래의 사연이 있겠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 땅에서 단순한 노래를 넘어 애국가 다음으로 시민 사회단체의 의식 행사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는 5.18 기념행사에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한 박근혜 정부의 행동을 보고 내가 살아온 삶의 경험으로 볼 때 민주주의가 1980년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의식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기 때문에 국가보훈처를 앞세워 국민을 이념대결의 장으로 몰아세운 것 아닌가 생각한다.

  • 들꽃을 못 봐서
  • 봄날을 버렸다
  •  
  • 바다를 못 가서
  • 여름을 버렸다 
  • 사랑을 못 만나
  • 가을을 버렸다
  •  
  • 책을 못 읽어
  • 겨울날을 버렸다
  • 돈에 바빠서
  • 삶을 버렸다
  •  
  • 이러다 영영
  • 사람 버리겠다
  • 박노해 시 '사람 버리겠다' 전문

박노해 시인의 시다. 우리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읽을 수 있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지닌 국가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남북이라는 이념의 분단국가에서 표현은 언제나 검열 대상이 되었던 시대도 있었다. 노래가 금지되고 책의 출판이 금지된 시대를 넘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박노해 시 「사람 버리겠다」도 자유롭게 읽고, 「임을 위한 행진곡」도 자유롭게 부르는 세상이 되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들꽃을 못 봐서 봄날이 지나갔다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 바다를 못 봐서 여름날은 갔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또한 돈 벌기 바빠서 삶을 잃어버렸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시대여야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 속에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는 말에도 모순은 있다. 언제까지 지난 과거에 매몰되어 살아갈 수는 없다. 지난 과거의 아픔을 교훈으로 삼아야겠지만 과거에 얽매여 미래를 향한 걸음이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박노해 시처럼 사람 버리기 전에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는 문제로 세상이 둘로 쪼개져서는 안 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사람은 부르고 부르기 싫은 사람은 부르지 않으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세월이 지나가면 모든 시간은 역사 속에 묻히게 되어 있다. 오늘 우리가 치열하게 보수와 진보라는 논리도 어떤 나무를 산에 심을까라는 싸움이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삶의 숲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그 행복을 찾아가는 노래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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