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조선과 예술'을 다시 읽으며
<세상의 자막들>'조선과 예술'을 다시 읽으며
  • 임영석
  • 승인 2017.08.21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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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문학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著 박재삼 시인이 번역한 '朝鮮(조선)과 藝術(예술)', '범우문고 082'를 다시 읽는다. 이 책을 쓴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일본 정부가 광화문을 철거하고 일본총독부 건물을 지으려 하자 광화문 철거를 반대하여 광화문이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게 한 사람이다. 이를 이유로 그는 일본 내에서 위험한 인물로 낙인이 찍혔으나 한국인으로부터 감사는 나의 부자유를 보상하는 충분한 보수였다고 후일 밝힌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쓴 '朝鮮과 藝術'에는 여섯 가지의 주제 글이 있다. 〈조선의 미술〉, 〈석굴암의 조각에 대하여〉, 〈아, 광화문이여!〉, 〈조선 도자기의 특질〉, 〈조선의 목공품〉, 〈조선인을 생각한다〉라는 글에서 조선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기술하고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미술〉에는 조선의 불교미술과 고미술에 대한 이해의 글을 썼다. 여기서 그는 “예술은 민족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라며 조선 미술의 위대함이 민족혼을 되찾는 길이고 “국가는 짧아도 예술은 길다”라는 말에서 일본 통치가 혼의 정신을 이길 수 없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강원도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 범종에 양각된 문양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녀는 옷과 구름의 물결을 헤쳐 흐르는 것처럼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저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매혹시키는 모습은 세상에서 드물 것이다. 그것은 새삼 형태의 그림이기보다는 선의 그림인 것이다.”라며 상원사 범종의 예술성에 감탄을 한다. 여기서 그는 “망하지 않는 힘이 미에 있다고 절실히 느끼라. 칼은 약하고 미는 강하다. 모든 민족은 이 보편적인 원리를 굳게 믿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칼 앞에 조선의 예술이 굴복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의식을 1922년 《新潮》 1월호에 발표를 한다.

조선이 망하지 않는 힘을 예술의 미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은 정신의 미를 강조한 것이다. 정신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의식을 강조한 대목이다. 예술은 그 나라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삶이다. 그 아름다운 삶의 기둥이 예술로 표현된 것이다. 이 기둥이 무너진다는 것은 민족혼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다양하게 발전되고 구속되지 않는 자유 속에서 발전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인이 조선의 미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 통치를 당하고 있다고 조선의 예술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다.

조선의 예술에서 선의 미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고 미적 감각을 절정으로 끌어올린 것이라 야나기 무네요시는 이해하고 존경심을 갖는다. 그림, 건축물, 목공예 품, 악기, 춤, 생활용품 등등 어느 곳에서나 선의 미는 자연스럽고 부드럽고 조선인의 정신과 같은 마음을 담아낸다. 이를 일본인은 당시 조선의 미적 수준을 끓어 내리기 위해서 “갸냘푸다”라는 식으로 비하하는 표현을 썼다. 가냘프다고 조선의 미를 주입한 일본의 통치 정신은 조선인에게 스스로 나약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목적이 담겨 있었다.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 하나하나까지 일본은 치밀한 정치적 계산을 하며 조선의 혼을 차단한 것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한다. 거기에 비해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예술을 사랑한 일본인으로 조선인에게 많은 귀감을 남긴 일본인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정신의 혼을 되찾을 때 진정한 광복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광복 72년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문화재들이 일본 통치와 6.25를 거치면서 소실되거나 사라졌다. 예술의 진정한 의미는 제 자리에 있어야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도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열정의 삶에 우리 모두가 박수와 응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삶의 기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많은 장인정신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예술인의 혼이 무너진다면 전통의 예술은 사라진다. 또한 새로운 예술의 발상은 모두 과거로부터 이어져온다는 것이다. 예술은 지배문화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창의적 예술은 항상 자유로운 정신에서 이루지기 때문에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예술을 그러한 정신으로 바라보고 애정을 가졌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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