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울증은 어디서 오는가?
<기고>우울증은 어디서 오는가?
  • 임길자
  • 승인 2018.02.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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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자<정토마을 원장>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우울증은 매우 흔하게 일컬어지는 질병이다. 우울한 기분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가중되었다면, 이 증상은 우울증이라는 질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기도 하여 단순한 기분 변화정도로 단정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울증은 무서운 질병이고 인간의 삶을 매우 고통스럽게 만드는 정신장애이다. 개인의 능력과 의욕을 저하시켜 현실적 적응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일상적 생활은 물론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무너지게 할 수도 있어서 사회적 차원에서의 관심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한 조사(Lopez & Murray, 1988)에 따르면, 우울증은 전 세계적으로 직업적 부적응을 초래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흔히 자살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심리적 장애로 분석하고 있다.

얼마 전 예순은 넘어 보이는 여성이 정토마을을 방문했다. 방문 목적은 시어머님을 시설에 모시기 위해 상담을 온 것이다. 직원의 안내로 원장실에 들어온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흐느끼며 눈물을 쏟는 그녀의 모습에서 심리적 통증을 보았다. 호흡이 순조롭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흐느낌은 길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갔다. 잠시 후 그녀는 말없이 자신의 등을 쓰다듬던 원장의 손을 잡으며 “이제 좀 된 것 같습니다. 초면에 미안합니다. 내 속에 울화가 고여 있어요.....”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혼하는 날부터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올해로 33년차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생모를 일찍 잃은 터라 엄마와의 추억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여기며 살고 싶었고 실제 애를 많이 섰는데.... ”그녀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평생을 시어머니와 남편사이에서 갈등했는데 젊었을 때는 각자의 외부 활동(직장생활)이 있어서 적당히 서로를 포기하고 체념하며 크게 소리 내지 않고 살았단다. 그러나 그녀도 나이를 먹는지라 신체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고,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흔들리는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약이 없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고,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쳤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셨다. 거동은 멀쩡하지만 여러 가지 부적절한 행동으로 주변을 불편하게 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며느리가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와 같은 공간에서 가족들의 특별한 도움 없이 살아간다는 것!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시어머니를 시설에 모시고 안 모시고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그녀가 정말 힘든 것은 그녀의 배우자를 비롯하여 가족이 여럿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고통을 아무도 거들고 나누려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앓고 있는 우울증이 어디서 왔는가를 알고 있다. 이미 정신적 에너지가 바닥인 상태임을 알고 있고, 그래서 스스로를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살고 싶고 누군가의 지지와 격려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필자는 이미 몸도 맘도 상처투성이가 된 듯한 그녀의 모습에서 지난 세월만큼의 얼룩을 본다.

우울증은 심리적 감기가 아닌 독감이다. 감기는 흔한 질병으로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적당한 휴식이 필요하며 얼마큼 시간이 지나면 특별한 합병증 없이 완치가 가능한 질병이다. 그러나 독감은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심각한 2차 질병으로 이어져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으므로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언제나, 한결같이, 같은 속도로 행복과 불행사이를 오가며 자신이 중심인 삶을 추구하려 몸부림친다. 이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에서 서로 다른 누군가와 순조롭게 더불어 산다는 것이 그리 단순하진 않다. 백년해로를 약속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삶을 시작한 부부에게도 숱한 위기가 닥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마음의 병은 큰 사건이 아니라 소소하게 얽히고 설킨 사연들의 덩어리이다. 그러므로 불편한 사연들의 덩어리가 커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는 훈련이 필요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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