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희망 쏘아올린 비례대표 선출방식
<비로봉에서>희망 쏘아올린 비례대표 선출방식
  • 심규정
  • 승인 2018.05.14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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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자기사람 심기 관행이다. 특정인을 황제가 내리꽂는다고 해서 ‘황제점지식’이라고도 했다. 표 확장만 의식한 묻지마 사전내정설, 심지어 돈 장사의 오명까지. 일부 표현은 좀 과장된 말일 수 있지만, 광역·기초의회 비례대표 선출과정을 빚댄 부정적 말이다.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관행이 정치불신을 가중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했거나 선출을 앞두고 있다. 비례대표 선출방식은 그동안 시민의 눈높이와는 차이가 있었다. 이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물론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으나 그 폐해는 여전한 것 같다. ‘고교 동문회장은 비례대표로 가는 징검다리’등.

비례대표제도는 각 정당이 득표율에 따라 미리 등록된 후보 순으로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다. 소수정당에게도 득표수에 비례하는 대표권을 보장해줘 다수 대표제의 모순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대안이다. 자력으로 의회 입성이 힘든 소외계층이나 약자들, 전문가를 의회에 진출시켜 그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채택됐다. 각 정당은 비례대표 1번을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선거법에서 규정해 여성의원 비율을 높힌다. 후보들간 당선 안정권인 기호1번을 배정받기 위한 피튀기는 경쟁을 벌인다.

지난 9일 아모르컨벤션웨딩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주시의회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후보정견발표회는 그래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순영 원주의료원 이사, 조상숙 강원도당 여성부위원장, 강윤순 상지영서대 강사, 강은성 원주갑여성위원장, 이숙은 국제다문화청소년협회 이사장 등 내로라 하는 여성계 인사 5명이 정책을 제시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당은 원주시의회 비례대표 정수(3명)에 따라 3명을 선출하게 된다. 투표권을 가진 상임위원들은 모두 당협위원장, 시도의원, 직능단체 대표 등 진성당원 70여명이다. 최근의 당 지지도를 감안하면 당선 안정권은 1,2순위로 전망된다. 2명은 탈락의 아픔을 맛봐야 하는 얄궃은 운명 앞에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수(?) 청중들 앞에서 연설이 낯선 탓인지 간간히 발언이 끊기기도 하고, 제한된 시간을 초과해 쩔쩔 매기도 하고, 정책 보다는 이력소개 중심의 연설에 상당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에서 정치초년생 다웠다. 그러나 열정 만큼은 대단했다. 사실 이날 선출과정을 끝까지 지켜본 필자는 첫 도입된 정견발표회라서 흥행요소는 충분히 갖췄지만, 시민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결과가 나올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앞섰다. ‘당에 대한 충성도’, ‘표 확장성’, ‘당협위원장의 친소관계에 따른 표 몰아주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투표결과 이숙은, 조상숙, 김순영후보가 1,2,3순위로 선출됐다. 이숙은 후보가 1위로 선출되며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조상숙 후보는 골수 민주당 인사, 김순영후보는 상지여고 총동문회장, 고교동문연합회장으로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갖췄다. 때문에 약체로 분류된 이 후보의 1위는 이변으로 받아 들여졌다. 결과에 하나같이 모두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평창출신의 이 후보는 정견발표회에서 “저는 한때 안면마비가 와서 주위에서 ‘병신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해 참석자들의 귀를 붙들어 맸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조사해 온 자료를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대책을 호소력 있게 소개했다. 참석자들로부터 “장밋빛 공약이 아닌 소외계층이 피부에 와닿는 공약을 제시했다”는 후한 평가를 받았다. 투표결과를 두고 한 상임위원은 “정견발표가 아주 내실있고 진성성이 느껴졌다”고 밝혔다. 친소관계보다는 특정분야의 전문성,대표성을 인정해준 결과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정인 사전내정설’, ‘국회의원 보좌관 부인 신청’, ‘짬짜미 투표’ 등. 지역에서도 선거구 후보 선출과정을 둘러싸고 불공정 경선에 따른 공천파동, 기호파동으로 집안갈등의 뇌관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거의 그릇된 비례대표 선출방식의 구각을 깨트리고 시민눈높이에 부합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성숙된 비례대표 선출방식이 그래서 더욱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정치선진화의 기름진 토양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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