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화훼단지를 위한 발전소인가, 발전소를 위한 화훼단지인가
<비로봉에서>화훼단지를 위한 발전소인가, 발전소를 위한 화훼단지인가
  • 심규정
  • 승인 2018.08.20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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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보랏빛 청사진이었다. 연간 관광객 300만명 달성, 일자리 2만5천개 창출. 문막읍에 추진하는 화훼특화관광단지의 기대효과다. 미래를 가늠하는 단골 화두가 됐다. 기대감이 고무풍선처럼 한껏 부풀어 올랐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는 문막지역의 절박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인구는 1만 9,000명선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저녁 때만 되면 주민들의 발길이 뚝 끊겨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연출한지 오래됐다. 사람들은 말했다. “공단이 6개나 있는 공단지역이면 뭐해...” 뭔가 획기적인 전환점이 절실했다. 바로 그 해답을 화훼단지에서 찾는 듯 했다.

화훼단지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최문순 강원지사와 원창묵 원주시장의 공통공약이다. 250만㎡에 재배단지, 워터파크, 호텔, 전시·판매공간을 갖춘 사계절 관광단지라고 홍보했다. 순진한 시골 주민들은 철썩 같이 믿었다. 화훼단지에 들어설 예정인 SRF열병합발전소 유해성 논란으로 8년이라는 억겁(億劫)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지금 화훼단지 조성사업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일부 사업부지는 경매를 거쳐 매각 결정됐다. SPC에는 보증채무금 소송서류가 날아들었다. 온갖 잡음은 셀 수 없다. 좌표를 잃은 채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위를 표류하는 배의 형국이다. 난제 중의 난제라는 부정적 수식어가 붙었다. 복합증후군에 빠져 산소호흡기를 다는냐 마느냐의 벼랑 끝 현실이다. 하지만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속수무책의 모습이다. 그동안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이 있다.

누구나 들어봄직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다. 화훼단지는 주 사업이고, 발전소는 부속사업이다. 화훼단지(닭) 보다는 발전소(달걀)가 속도감 있게 추진되는 것을 비꼰 것이다. 요즘 이런 논란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다. 이제는 더 거창해졌다. ‘황금알(발전소)을 낳는 거위(화훼단지)’이야기다. 전두엽에 확 와닿는 말이다. 사업무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발전소만 정상 추진되는 것처럼 비치자 “우선순위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다”는 문제제기가 비등해지고 있다. 이 말이 100% 맞다고 볼수는 없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사업자나 원주시는 발전소 유해성 논란이 제기될 때 마다 화훼단지의 경쟁력은 저렴한 열원을 공급하는 것이고 그 해답이 SRF열병합발전소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다. 원 시장도 반대 측의 실력행사에 “마치 발전소가 전부인양 비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침체의 나락으로 빠진 지역경제, 그리고 이를 타개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절박감이 어우러져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다. 지금 화훼단지의 본질은 어디 갔는지, 실종신고라도 해야 할 판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화훼단지의 과실(果實)’로 불리는 발전소 사업만 부각되고 있다. 마치 발전소가 화훼단지를 잉태하고 있는 듯한 반전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발전소를 위한 화훼단지’라는 이야기의 데시벨이 급상승하고 있다.

이런 화훼단지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관광단지 지구지정을 받은 지 2년 안에 조성계획승인을 받지 않으면 사업이 취소될 수 있다. 화훼단지는 정확하게 지난 2016년 11월 30일 관광단지 지구지정을 받았다. 오는 11월 30일 ‘D-데이’가 되는 셈이다. 물론 사업을 1년 연장신청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뚜렷한 연장사유가 있어야 한다. 과연 납득할 수 있는 연장사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원주시는 ‘세월아 네월아 식’이다. 시민들의 혈세(3억)까지 투입된 사업인데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관망만 하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 “도대체 왜?”라는 의심이 눈초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다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화훼단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 화훼단지가 과잉 환상, 신기루에 그쳐서는 안된다. 정확한 진단을 통해 수술대에 올려서 고강도 처방을 내려야 한다. 화훼단지라는 반신불수(半身痲痺)의 거위가 발전소라는 온전한 황금알을 낳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정상인 화훼단지를 바로 세운 다음 발전소를 추진해야 한다. 이게 거꾸로 가면 사업의 본질을 의심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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