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엄마는 왜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날까?
<살며 사랑하며>엄마는 왜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날까?
  • 임길자
  • 승인 2018.11.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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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6년 전 아이의 나이는 27세! 그는 캐나다로 떠났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겠지만 남겨진 엄마 마음은 몹시도 복잡했었다. 아이는 별다른 경계없이 청소년기를 지났고, 특별한 충돌없이 대학에 입학했고, 큰 요동을 없이 대학시절을 이어갔다. 엄마의 눈에 비춰진 아이는 주어진 일상에 성의를 다하며 적당히 청춘스럽게 세상을 살피는 듯했다. 학기 중에는 스스로 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고, 가끔은 친구들과 노느라 늦은 귀가로 엄마한테 꾸중을 듣기도 하고,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만의 경제활동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자신이 번 돈을 누군가를 위한 이로운 일에 사용할 줄도 아는 따뜻함도 있었고, 짬짬이 틈을 내 테마가 있는 여행을 즐기고, 운동으로 심신을 관리할 줄 아는 그냥 평범한 보통의 아이다.

아이는 어느새 대학 4학년이 되었다. 다른 아이들이면 취업준비에 마음이 바쁘기도 하련만 아이는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나겠다며 연수비용을 부탁했다. “엄마! 연수비용을 빌려주세요. 제가 돈을 벌면 가장 먼저 꼭 갚아 드릴께요.” 아이는 이미 어학연수 출발준비를 마친 듯 했다. 그야말로 돈만 생기면 바로 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았다. 아이의 간곡한 부탁에 엄마는 “이건 분명히 엄마가 빌려주는 거다. 나중에 꼭 갚아야 해.” 라며 다짐을 받고 돈을 주었다. 아이는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고, 1년 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4학년 2학기를 시작하면서 취업 준비에 분주하더니 졸업을 2개월쯤 남겨두고 아이는 서울에 있는 모독일계회사에 입사를 했다. 회사 생활이 생각처럼 녹록치는 않았겠지만 나름 열심히 사는 듯했다.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밤을 새웠다며 새벽에 전화를 걸기도 하고, 고향인 원주 오크벨리로 워크샵을 왔다며 즐겁게 소식을 전하기도 했었다. 아이는 그렇게 내용있는 사회인으로 성장해 가는 듯싶어 엄마는 고맙고 감사했다.

그러나 아이에겐 변화가 있었다. 한국에서의 회사생활은 3년으로 종지부를 찍고 캐나다 행을 선택했다. 그 후 6년 세월이 흘렀다. 2년 전 잠시 다녀가고, 얼마 전 3주간의 휴가를 집에서 보내고 다시 떠났다. 6년 동안 두 번째 만남인데 이젠 좀 자리가 잡힌 듯 제법 여유가 느껴졌고 성숙해 보였다. 떠나기 전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의 엄마는 어떤 분이셨어요?”

“곱고 착한 분이셨지. 삼대가 한 집안에서 우글거리는 대 식수들 치다꺼리로 손에 물이 마를 날 없는 힘든 일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단정하고 한결같이 따뜻한 분이셨지. 내가 26살이 되던 해 가을 엄마는 세상을 떠나셨어. 올해로 35주년이 되었네. 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엄마는 늘 그 자리에서 같은 크기로 보고 싶고 그리워서 눈물이 나.”

“그렇군요. 아직도 엄마는 엄마가 많이 보고 싶군요. 그러보면 난 엄마보다 엄청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내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 엄마가 곁에 계시니... 엄마! 고마워요. 근데 참 이상해요. 엄마는 왜 그냥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날까요? 엄마의 다른 이름은 눈물인 것 같아요.”

엄마는 아이의 철든 소리에 다시 눈물이 났다. “엄마! 자꾸 눈물이 나도 난 엄마를 많이많이 부르며 살 겁니다. 이제 내 걱정은 말고 엄마 마음이 시키는 대로 엄마자신을 위해 살기 알았지요? 2년 후에 다시 건강하게 만나요” 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는 다시 먼 길 떠났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엔 엄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빠도 있고 같은 피가 흐르는 형제・자매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그냥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아이의 말처럼 엄마는 눈물인가보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는 다 똑같다. 자신보다는 아이가 더 좋고 아이가 더 소중하다.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다 그렇다. 아이를 위해, 아이를 향해, 아이와 더불어 살고 싶다. 몸과 마음이 늙어 보이는 것도 흐릿하고 들리는 것도 희미하지만, 끝까지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단 한 가지는 엄마가 부르는 아이의 이름이다.

이글을 읽어주실 소중한 그대! 어떤 모습이건 생모(生母)가 곁에 살아계신다는 건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실 누군가의 딸이며 누군가의 엄마인 그대! 귀한 당신의 오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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