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혈세 먹는 하마’ 중앙시장이 사는 길
<비로봉에서>‘혈세 먹는 하마’ 중앙시장이 사는 길
  • 심규정
  • 승인 2019.01.14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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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삭풍(朔風)이 몰아친 지난주. 화마의 상흔이 가지지 않은 중앙시장 화재현장은 헛헛함이 진하게 감돌았다. 매케한 냄새는 칼바람과 함께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온몸을 두꺼운 잠바로 중무장한 어르신들은 쓰디쓴 상처를 뒤로 하고 물건판매에 여념이 없었다. 구리빛 얼굴, 검버섯 핀 손의 나이테가 상인들의 세월의 무게를 웅변하고 있었다. 악마의 불길이 휘감은 현장은 흑백의 모노톤으로 또렷이 다가왔다. 가게는 경찰과 소방당국의 감식 때문에 차단선과 차단막으로 칭칭 막혀 있었지만, 틈새로 노출된 가게안은 옅은 검은색이 지배했다. 오래전부터 중앙시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코팅된 기억으로 아직도 머릿속에 선연히 남아있다. 지난 1953년 개설된 뒤 최근 화재까지 중앙시장은 3차례 불이나 414개의 점포가 탔다. 당시 상처는 사금파리처럼 상인들에게 암석처럼 박혀있을 것이다. ‘원도심의 랜드마크’, ‘시민의 애환이 서려있는 추억속의 공간’인 중앙시장은 지금 안팎으로 깊은 내상에 신음하고 있다. 재래시장 활성화, 구도심 회생이란 온갖 명분을 등에 업고 다양한 회생책이 추진됐다. 음침하고 쥐새끼들이 뛰놀던 2층은 문화예술을 덧씌워 청년들의 창업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동안 시설현대화 사업도 이어졌다. 지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이렇게 투입된 혈세가 60억 4,300만원이다. 올해도 시설현대화, 특성화사업이란 미명아래 99억 원이 투입된다고 한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원주시의 고민은 뫼비우스띠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중앙시장 재건축이 추진됐지만, 상인들의 이런 저런 이견으로 무산됐다. 사실상 재건축이 정답이지만, 선뜻 밀어부치기엔 똬리를 틀고 있는 난제가 부담이다. 점포주와 임대상인간의 이해관계, 임시시장은 어디에 조성할 것이며 주차난 해결문제 등 복합방정식 마냥 어려운 형국이다. 원주시는 일찌감치 중앙시장 활성화를 중앙동 도시재생과 결부시켜 접근해 왔다. 중앙시장 인근에 공영주차장을 대폭 확충하고 강원감영과 연계하면 구도심 상권이 되살아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여기에는 막대한 예산투입이 수반돼야 한다. 주차장 확보문제다. 땅값이 이미 오를 대로 올라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 중앙시장은 산소호흡기를 달고 하루하루를 연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악하기 이를데 없고 골병이 들대로 들어 잠재 화재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만신창이가 됐다”는 한 상인의 말에 고개가 끄떡여졌다. 뻔한 처방이 되풀이 된다 하더라도 건물 구조안전에 치명적 결함을 안길수 있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했건만, 수차례 화재에도 근시안적 단기처방만 되풀이하다가는 소잃고 외양간을 못고칠수 있다. 늦었지만 이제 소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 원주시는 중앙시장 재건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원창묵 원주시장은 최근 화재현장을 방문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재정지원(159억원)을 해도 위험요소 및 이용객 불편이 여전할 것이다”라고. 아주 정확한 진단이다. 원주시가 처한 고민의 깊이를 엿볼수 있다. 당장은 일부의 반발이 있을수 있고, 표를 쫓는 정치인의 속성상 눈치행정이 우려된다. 그러나 원주시 백년지대계를 생각해서 소신행정을 펼쳐야 한다. ‘혈세먹는 하마’,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어리석은 행정은 더 이상 안된다. 상인들도 낡은 것만 고집하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을 버려야 한다. 재건축 없는 중앙시장은 상인들에게 디스토피아(암울한 미래)가 될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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