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클래식 이야기 “찌고이네르바이젠” 편에서 “집시음계”가 언급되었는데, 오늘은 집시음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 음계가 효과적으로 사용된 “슬라브 행진곡 (Slavinic March, op31)”을 소개하려고 한다.
슬라브 행진곡은 러시아의 대작곡가 차이코스프키가 작곡한 곡이며 세르비아의 민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곡의 원제목은 “세르비아-러시아 행진곡”인데, 이 제목에 얽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1876년 오스만투르크(지금의 터키)와 세르비아의 전쟁이 일어났는데, 처음에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지만 같은 “슬라브족”이라는 공통점을 명분으로 내세운 러시아가 개입하였고 전황은 러시아와 터키의 전쟁으로 확전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러시아의 속셈은 딴 데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도록 한다.)
한편 여러 가지 사정으로 러시아의 출병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르비아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불리한 처지로 몰리게 되자, 러시아에서는 같은 민족인 세르비아를 후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행사가 열렸는데, 그 중 하나가 부상병들을 위한 후원 음악회이며 그 음악회에 출품한 곡이 바로 “슬라브 행진곡”이다.
슬라브 행진곡은 세르비아를 비롯한 발칸반도에 거주하는 슬라브족의 민요와 러시아 국가 등을 인용하여 만들어졌으며, 아래 악보는 이 곡 첫부분에 나오는 멜로디이다. 이 멜로디는 지난 시간에 언급했던 “집시음계”가 쓰였으며, 이 곡 전체를 통하여 가장 많이 나오는 멜로디이다.
등장할 때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청중들의 귀를 호강시켜 주는 이 선율은 아래 악보에서 빨간색 부분이 증2도로 구성된 “집시음계”가 사용되었으며, 이 음계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슬라브 민족의 감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러면 집시음계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 터인데, 일단 집시음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려면 먼저 “화성단음계”에 관한 설명이 필요한데, 화성단음계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라시도레미파솔라”의 기본적인 단음계의 음들 중 제7음인 “솔”에 샾을 붙여서 반음을 올리는 음계이다. (아래 악보 참조)
그런데 “솔”에 샾을 붙이게 되면 위 악보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파”와 “솔” 사이가 사람들이 듣기 꺼려하는 “증2도”가 되기 때문에 그걸 피하기 위해서 제6음인 “파”에도 샾을 붙이게 되는데, 이러한 음계를 “가락단음계”라고 한다. (악보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세상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거꾸로 증2도를 즐기는 취향의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래 악보처럼 아예 제4음에도 샾을 붙여서 증2도가 나오는 구간을 하나 더 만든 음계를 “집시음계” 또는 “헝가리 단음계”라고 한다. 악보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제3음과 제4음 사이, 그리고 제6음과 제7음 사이가 증2도이다.
요약하자면 집시음계란 기본적인 단조 음계(라시도레미파솔라)에서 제4음인 “레”와 제7음인 “솔”에 샾을 붙이는 음계이다. 악기연주가 가능하신 분들은 위의 악보를 연주해 보면 느낌이 팍 올 것이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배경음악으로 나올 듯한 이국적인 느낌?)
“찌고이네르바이젠”에도 집시음계가 자주 등장하지만 “슬라브 행진곡”의 메인 테마에도 집시음계가 특징적으로 나온다.
오늘 감상할 곡은 수원시립 교향악단이 연주한 “슬라브 행진곡”이다. 유튜브에서 이 곡의 연주 동영상을 검색하다가 친한 후배가 바순 연주자로 동영상 첫머리에 나오길래 냉큼 이 영상을 선택하게 되었다.
https://youtu.be/yMRF5ljjb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