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사랑하며] “아내는 참 좋은 친구였어...”
[살며사랑하며] “아내는 참 좋은 친구였어...”
  • 임길자
  • 승인 2019.04.2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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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 임길자〈정토마을 원장〉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어느 봄날 한 할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거기 노인복지관이죠? 내가 어려운 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우리 집에 방문해 줄 수 있는지요?”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서둘러 달려가 보니, 낮은 산 밑 외딴집에서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전화기를 통해 전해들은 목소리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침착하게 나를 맞았다. 잠시 집안을 둘러보니 시골 어르신 가정치고는 청소 상태가 정갈했고, 두 부부의 모습 또한 곱고 깨끗해 보였다.

할아버지께서 내어 준 쌍화차 한잔을 마시며 자초지종을 전해들었다. “우리 부부는 고향이 평창군 계촌면이랍니다. 근데 문막읍에서 30년째 살고 있으니 여기도 고향인 셈이지. 살림살이가 그리 풍요롭진 않았지만, 6남매를 남부끄럽지 않게 키워냈지. 크게 물려줄 재산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각자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도왔으니 부모로서 큰 짐은 다 덜어 낸 셈이라 생각했어요. 이제 우리 부부 건강하게 사는 날 까지 즐겁게 살다가 한 날 한 시에 이 세상 떠나는 것을 소원했는데 아내가 병이 들었어요. 처음엔 그냥 늙느라 깜빡깜빡 하는가 했는데 날이 갈수록 변해가는 아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나 좀 도와주시요”

할머니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셨다. 단기기억을 잃었고, 식사를 거부하는 일이 잦았고, 잠을 주무시지 않고, 불편한 행동으로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을 나가면 길을 잃고, 불편한 언어로 상처를 내기도 하고, 수시로 변하는 심리 상태 때문에 할아버지는 몹시 혼란스러워 했다. 몹쓸 병에 걸렸다는 생각에 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그냥 함께 죽을까 생각도 했으니...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다. 질병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없다보니 예측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변화에 가족들은 아프고 슬프다.

할아버지는 복지센터의 도움으로 처음엔 방문요양서비스를 받았다. 야간에 혼자서 아내를 케어 하는 것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할아버니는  “없는 살림살이에 나에게 시집와서 참 고생 많이 한 사람이지. 그래서 힘이 닿는데 까지 내가 곁에서 살피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들어서...”라며 힘을 내시는 듯 했다.

그러나 급히 속도를 내고 있는 할머니의 병세는 점점 심해졌다. 어쩔수 없었다. 결국 할머니를 시설에 입소시키고 수시로 면회를 했다. 평소 할머니가  좋아하던 간식을 챙기고, 장날 시장에서 산 꽃그림 셔츠를 입혀 주는등 극진히 챙겼다. 햇살이 착한 날에는 할머니의 뒤에서 휠체어를 밀며 시설 주변을 산책하며 아늑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기로 변해 버린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요구에 몸짓으로 응대했다. 벚꽃비가 향기를 뿜으며 쏟아지던 어느 날 오후. 할머니는 이승과 작별을 고했다. 부부는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남편은 스물셋, 아내는 스물에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이제 구순을 넘겼다.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할아버지는  말했다.

“집사람과 산 세월이 70년이야.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었지만, 우린 서로 참 많이 위하며 살았어. 어떤 경우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우린 서로 큰소리 내지 않고 살았어. 집사람은 착한 사람이었어. 불평하나 없는 사람이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착한 아내이면서 참 좋은 친구였던 것 같아. 좀 더 지켜주고 싶었는데,많이 아쉽고 미안한 생각이 드네. 이제 혼자 남겨진 나는 어찌 살아야 하나. 아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나를 걷게 하는 이유였는데... 자꾸 눈물이 나네...”

노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힘을 냈고, 서로에게서 함께 사는 공식을 익혔다. 할아버지는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할머니의 눈으로 세상을 보았고, 할머니는 가난하지만 자상하고 정직한 남편의 가슴으로 인생을 이해했다. 어디가 끝일지, 언제 끝날지, 누가 먼저 떠날지, 누가 어떻게 떠날지 모르는 미래를 노부부는 서로의 언어로 오늘을 살며, 서로의 몸짓으로 내일을 기다렸다.

구순을 넘긴 노부부의 안타까운 이별을 온전히 지켜봐야 했던 4월!
요란했던 마음의 경계를 넘으며, 남겨진 삶을 다시 한번 손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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