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받아쓰기
[세상의 자막들] 받아쓰기
  • 임영석
  • 승인 2019.05.27 0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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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석<시인>
△ 임영석<시인>

나는 받아쓰기라는 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받아쓴다는 것은 소리 또는 음을 받아쓰는 일이 있을 것이고, 서예의 글씨를 받아쓰는 일도 있고, 용돈을 받아쓰는 것도 받아쓰는 일이다. 그러니 받아쓰는 일은 그대로 보고 들은 것은 옮기는 일과 재물을 물려받아 쓰는 일이다.

그러나 수억 년 지구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받아쓰는 것은 자기 종족을 남기는 유전학으로 분류되는 일이기도 하다. 풀은 풀로, 나무는 나무로, 동물의 동물로, 사람은 사람으로, 이 지구에 지속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물려받는 일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삶의 받아쓰기라는 것이다.

나는 받아쓰기를 다음과 같이 시로 쓴 일이 있다.

〈 내가 아무리 받아쓰기를 잘 해도 / 그것은 상식의 선을 넘지 않는다 / 백일홍을 받아쓴다고 / 백일홍 꽃을 다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 사랑을 받아쓴다고 / 사랑을 모두 받아쓰는 것은 아니다 / 받아쓴다는 것은 / 말을 그대로 따라 쓰는 것일 뿐, / 나는 말의 참뜻을 받아쓰지 못한다 / 나무며 풀, 꽃들이 받아쓰는 햇빛의 말 / 각각 다르게 받아써도 / 저마다 똑같은 말만 받아쓰고 있다 / 만일, 선생님이 똑같은 말을 불러주고 / 아이들이 각각 다른 말을 받아쓴다면 / 선생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 햇빛의 참말을 받아쓰는 나무며 풀, 꽃들을 보며 / 나이 오십에 나도 받아쓰기 공부를 다시 한다 / 환히 들여다보이는 말 말고 / 받침 하나 넣고 빼는 말 말고 / 모과나무가 받아쓴 모과 향처럼 / 살구나무가 받아쓴 살구 맛처럼 / 그런 말을 배워 받아쓰고 싶다〉

-임영석 시 '받아쓰기' 全文 , 계간 '시에' 2010년 가을호 발표

이 받아쓰기라는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된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논리가 왜 그렇게 색깔이 달리 보이는지, 물과 흙은 왜 다른지, 아이와 어른은 왜 다른지, 그 구분이 명확하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받아쓰기를 유전적 관점이 아닌 사람 삶의 도덕적 규정으로 바라보면 많은 것들이 제약을 받는다.

벌과 꽃들 사이에서도 받아쓰기는 치열하다. 벌은 꽃의 꿀과 꽃가루를 끝없이 받아서 자신의 양식으로 사용한다. 이 꿀이 새로운 벌을 만들어내는 받아쓰기의 받침이 되는 것이다. 꽃은 꿀을 주고 자신의 씨앗이 맺도록 만든다. 이 과정이 없다면 꽃은 꽃의 향기를 받아내지 못한다. 자연은 이렇게 햇빛과 바람 계절적 환경에 따라서 끝없이 자연에 적응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받아쓰며 생존을 거듭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인구 절벽이니, 결혼 적년기가 사라지고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추세다. 모두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다. 하지만 받아쓰기는 유전적 환경으로 접근을 하면 이해가 쉽게 된다. 개나리는 꽃의 씨로 번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줄기로 번식을 한다. 지금이야 남녀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있지만, 미래엔 개나리처럼 세포만 갖고도 사람으로 태어나는 세상이 올 것으로 예측이 된다.

받아쓰기는 유전적 흐름을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일이다. 자식에게 교과서적인 지식만 받아쓰라고 강요한다면 미래는 그러한 받아쓰기만 지속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행복한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그 방법부터 받아쓰도록 가르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야 곰팡이 균처럼 종족을 번식시키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보고 듣고 느낀 대로 살아간다. 살면서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삶을 잘 받아쓰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그 자식도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잘 따라서 쓰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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