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 한국시의 문제점과 나갈 방향을 읽고
[세상의 자막들] 한국시의 문제점과 나갈 방향을 읽고
  • 임영석
  • 승인 2019.11.03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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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시인>
△임영석<시인>

-이 글은 월간 ‘문학공간’ 2019년 10월 김관식 평론을 읽고 씁니다

먼저 이 글은 월간 ‘문학공간’ 2019년 10월 호에 발표된 김관식 평론가의 글을 토대로 시인들의 마음 자세와 한국 시문학의 발전의 방향을 되짚어 보자는 차원에서 써본다. 김관식 평론가는 ‘한국시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서 시인들의 증가와 문예지의 증가로 인하여 시인정신이 빈약해졌다는 것을 짚어주고 있다.

6.25를 거치고 산업화 이후, 사회가 발전되면서 정신적 소외감을 극복하고자 은퇴 후에 취미와 여가 활동을 겸한 시 창작 교육을 받은 세대들을 흡수하고자 자의 반 타의 반 등단을 하게 되었다. 이들 등단 시인들은 1930년 유명 문인들이 추천과 등단을 했던 것을 답습해 등단만 하면 모두 시인이라는 자격이 부여되었다고 믿고 시의 질적 수준을 위한 노력보다는 수적 우위와 결속을 통해 문단의 임원 등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경우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바탕에는 기존 문단의 원로라는 분들의 암묵 하에 이루어진다는 것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들은 대중적 시선을 끌기 위하여 시 낭송회, 시화전 같은 이벤트 행사를 통해 일반 시민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주력을 한다. 행정기관에서 보면 이러한 행사가 시민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호응도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기대치를 가져왔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노래와 오페라처럼 감정에 기대는 그런 문화가 아니다. 글로 표현하고 글로 지적 수준을 말하는 창작활동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지역 문화 재단은 문학의 발전 방향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앞에서 시인들의 수가 증가하고 시인의 질적 수준 저하 현상이 있다는 것은 한국에 600여 개의 문예지가 발행되고 있고 이들 문예지 가운데 일부 문예지는 문단 장사라 할 만큼 많은 시인들을 배출하는 곳이 있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문인 협회는 발간 5년 이상의 문예지 출신만 협회 회원 자격을 주고 있으나 이미 이들 문예지가 5년 이상 되었기 때문에 그 효과도 미미하다는 것이다. 기존 문단의 시인협회에서는 입회 자격이 엄격하다 보니 이들은 새로운 협회를 스스로 만들어 활동을 하고 시인이라는 직함이 사회적으로 과시용이 되어간다는 것은 이미 시인 사회의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김관식 평론가는 냉철한 비판을 다음과 같이 한다. “옛날부터 가짜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요란한 행사로 감쪽같이 속이는 행사를 벌여야 위장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짜 시인들의 행태가 문학 풍토로 자리 잡은 것은 중앙단체의 정상적인 운영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증명한다.”고 말한다. 물론 글은 잘 쓰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좀 못 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인에게도 심리적 양심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자기 진단을 할 줄 알고 시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할 수 있을 때 등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이란 그 첫째가 시를 쓰는 사람이다. 그리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 더 나아가 평화를 추구하고 가진 자와 권력으로부터 억압당하는 사회적 문제를 풀어내고, 일반 시민 대중이 행복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시를 통해 마음을 전해야 한다. 시인은 외로운 사람이다. 자신의 이기심과 사회적 양심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 시인이 노천명, 서정주 시인보다 월등히 훌륭한 것은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민족의 양심을 지켰기 때문에 오늘날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 시인은 민족 시인이라 하지만 서정주, 모윤숙 같은 시인은 친일행위의 발목이 사후에 그들 작품까지 거짓된 양심이라 치부되고 있다.

이제는 문학이 사회적 갈등의 고리를 끊어내는 삶의 공간을 만들어 내야 한다. 문학의 본질은 깨어있는 정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촛불은 자신을 불태워 빛을 낸다. 시인도 자신의 인생을 불태워 시를 통해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수가 많다고 좋은 단체라 하지 않는다.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많아야 좋은 단체라 할 수 있다. 우후죽순 사람의 수만 모아 난립하는 문학 단체를 보면 그들은 제사보다는 잿밥에 눈먼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우를 탈피하고 좋은 작품으로 이 시대를 아우르는 시인과 문학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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