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칼의 언어, 꽃의 언어
〔비로봉에서〕 칼의 언어, 꽃의 언어
  • 심규정
  • 승인 2019.12.22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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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시의회 5분 발언, 시정질문 단골 발언자. 주요 현안과 관련, 집요하게 원창묵 원주시장과 집행부를 몰아붙였던 야당 매파의 선봉장. 때론 가시돋힌 언사(言辭)로, 때론 딱딱하고 나무라는 어투(語套)로 공세적이어서 시의회 본회의장을 일순 긴장감에 휩싸이게 했던 장본인. 이쯤되면 이 수식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만한 사람은 알 거다. 바로 원주시의회 전병선(3선·운영위원장)의원이다. 육군 중령 출신으로 무장(武裝)의 기개에 저돌적 기질까지 갖춰 집행부는 ‘긴장반, 걱정반’으로 바라보는 요주의 인물이다.

이런 그가 180도 달라져 해석이 구구(區區)하다. 지난 16일 오전 원주시의회 본회의장에서는 기해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정 질문이 열렸다. 첫 발언자로 나선 전병선 의원은 민감한 부분인 원창묵 원주시장의 공약을 거론했다. 화훼단지, 여주~원주 수도권 전철, 부론산업단지 등 주요 사업에 대한 진행 상황은 어떻게 되는지, 지연되는 이유를 이모저모 따져 물은 뒤 시민들의 기대가 높은 만큼 차질 없는 추진을 당부했다. 시민들의 일상이익을 챙기는 미시공약부터 원주시의 백년지대계를 내다보는 거시공약까지 시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그의 예리한 통찰력은 3선 중진 의원의 깊은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보충 질문 말머리에선 ‘선심공약’, ‘답변서가 무책임하다’고 내쏘았지만, 이내 원창묵 원주시장이 받은 공약대상, 사회공헌 대상 등 각종 수상 실적을 소개하며 “뒤늦게나마 축하한다”고 덕담까지 했다.

과거 경계의 촉수(觸手)를 날카롭게 세워 사사건건 충돌하던 양 측의 모습은 이날 온데 간데 없었다. 부드러운 질문 태도, 답변 시간을 최대한 부여하거나 원주시 홍보영상에 의장이나 시의회 언급이 한마디도 없다며 배려해 달라고 농반진반(弄半眞半)의 읍소를 던져 좌중의 폭소를 유발하기도 했다. 발언대에 나설 때만 해도 설핏 경직된 표정을 짓던 원 시장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피어 올랐다. 아마 엔돌핀이 팍팍 돌았을 것이다. 원 시장은 회의가 끝난 뒤 “칭찬받아서 좋겠다”라고 묻자,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그간 전병선 의원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야당 역할 제대로 한다”거나 “시민의 관심사를 콕 집어 이슈화한다”는 극찬과 함께 한편에선 “지엽말단적인 현상에 사로잡혀 현안을 부풀려서 문제 삼는다”거나 “자신만의 도그마(dogma)에 빠져 있다”는 혹평도 상존해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일부에선 “‘기·승·전·전병선’ 보다는 ‘기·승·전·결’이 똑 부러지게 드러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의원이 됐으면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낡은 편견과 부정적 선입견이라는 나쁜 두 마리의 개가 똬리를 틀고 있다. 본의 아니게 이념의 저장탑에 갇혀 헤어나지 못한다. 이것에 뿌리를 두고 서로 말길을 막아서고 격하게 부딪친다. 날카로운 칼의 언어는 상대의 가슴에 통증언어를 안긴다. 이에 질세라 수세에 몰렸던 측은 방패언어를 동원하고 다시 칼의 언어로 맞서고, 결국 소모적인 언어만 유령처럼 떠돌아 불신을 낳고 비생산성을 야기하는 것을 우리는 지겹게 봐왔다. 

정치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예술’이라고 했다. 한줌도 되지 않는 이념의 차이로 지금 여의도 국회가 예리한 창의 파편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이날 가슴 훈훈해지는 정겨운 풍경에서 모처럼 달콤쌉싸래한 감정을 지을 수 없었다. 집권여당 시장에게 찬사를 던진 주인공이 줄곧 안티적 입장을 견지해온 야당 소속이라서 더욱 그렇게 보인다. 지역 정치권은 니편 내편을 떠나 균형잡힌 이성을 갖고 지역민의 관점과 시각에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위인설항(爲人說項)의 미덕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연말. 2020년 경자년 새해는 희망의 말풍선이 우리의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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