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책갈피에서 울려 퍼진 총성(銃聲)
[비로봉에서] 책갈피에서 울려 퍼진 총성(銃聲)
  • 심규정
  • 승인 2020.01.1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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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 [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경자년 새해 마라톤 출발선에 섰다. 독서 마라톤 풀코스(42.195km)완주라는 긴 여정에 동참했다. 풀코스는 총 4개 코스 가운데 가장 힘들다고 한다. 중도 포기자도 나온다고 한다. 오는 10월 말까지 책 42,195쪽을 읽어야 한다. 1권 당 평균 400쪽으로 보면 어림잡아 책 150여 권을 읽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바쁜 직장생활과 얼기설기 얽힌 관계망 속에서 독서까지 병행하는 것은 버겁고 힘에 부칠 것이다. 때마침 원주시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과 문화체육관광부 문화도시 선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쥔 만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어주기 위해 도전장을 던졌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고된 육체노동만큼 뇌를 지치게 해서 몸이 자지러질  때도 있을 것이다. 주변에선 “2~3일에 책 한 권을 어떻게라거나 심한 경우 가당찮다며 콧방귀를 뀐다.

사실 나는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뱄다. 가급적 퇴근 후에는 집으로 직행해서 책과 씨름하고, 특히나 새벽형 인간이라 기상과 함께 책을 연다. 그렇다고 책을 맹신하지는 않는다. 때론 저자가 내 사고의 지평과 다른 주장을 할 때는 이건 아니지”, “나 같으면 다른 선택을 했을거야라고 되뇌며 냉정함을 유지하곤 한다. 이렇게 독서삼매경에 빠지게 된 것은 글쓰기를 직업으로 가진 덕분이다. 몇 년 전이다. 정신일도(精神一到)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 갑자기 주제에 맞는 어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짰지만, 기억의 저장소에서는 아웃풋(output)되지 않았다. 아뿔사. 빈약한 어휘 구사력에 큰 충격에 빠졌다. “글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이 정도라니... 앞으로 정체된 언론인으로 남게 될거야라며 자책했다. 요즘처럼 이슈가 복잡다단한 현실은 더더욱 내 마음을 되새김질하게 했다. 저출산고령화, 신재생에너지, 무역전쟁, 자원전쟁 같은 메가 이슈에 접근하기 위한 책 탐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R.L 겔리언은 말했다. “책은 나의 벗, 나의 사랑, 나의 교회, 나의 주막, 나의 유일한 재산이요, 나의 정원(중략). 또한 나의 유일한 의사요, 유일한 건강이다라고 설파했다. ‘삶의 불청객근심, 걱정을 잠시 나마 떨쳐버릴 수 있고, 특히 저자의 추체험을 통해 내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방향성을 깊이 음미해볼 수 있다. 지식에 대한 허기증으로 책을 게걸스럽게 읽지만, 단지 읽고 처박아 두는 게 아니다. 알토란 같은 지식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독서, 내 삶과 사유에 활용하는 저금식 독서를 지향한다. 무릎을 탁 치게하는 섹시한 비유나 은유적 표현을 발견하면 금맥을 찾아낸 것처럼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그리고는 메모장에 옮겨 적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입으로 씹고 머릿속에 꾹꾹 쟁여 넣는다. 분명 언젠가는 인간 관계망 속에서 좋은 말길이 되고 글 속에서 깊은 문장으로 재탄생하여 내 글을 더욱 튼실하게 해줄 것이다.

두보는 만 권의 책을 읽으면 글을 쓰는 것이 신의 경지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 구양수는 책 읽기 좋은 장소로 마상(馬上, 말위), 측상(廁上, 화장실), 침상(枕上, 침실)을 꼽았다. 이쯤되면 책을 끼고 살라는 것일게다. 소의 뿔에 책을 걸어 놓는다는 뜻으로, 시간을 아껴 오로지 공부하는 데 힘쓰는 태도를 비유한 우각괘서(牛角掛書)도 구양서가 말한 3가지 공간에 버금가는 잠언이다. 독서광인 로마의 황제 시저는 숱한 명언을 남겼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 강을 건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말은 비록 짧지만 본질을 꿰뚫는 함축적이면서도 예리한 메시지로 지금도 자주 회자된다. 많은 독서, 사고와 저술로 다져진 내공 때문이 아닐까.

흔히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정보의 홍수속에 오디오북이 등장하는 청서(聽書)시대에 이 말은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다. 이제 독서는 사시장철해야 한다. 얼음장 같은 한겨울 추위 속에서 동장군 대처법이요,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한 여름에 현명한 피서법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이젠 내 서재에서 책들이 병목현상을 일으켜 빵빵하고 경적을 울릴 것이다. 하나하나 교통정리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 책장에 자분자분 꽂히면 뿌듯한 정신적 포만감에 젖어들 것이다. 2020년은 내 마음을 더욱 살찌게 하는 활자의 숲에 풍덩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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