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그리고 부자의 정
산사, 그리고 부자의 정
  • 신동협
  • 승인 2015.11.22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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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신동협.jpg▲ 신동협
 
고리타분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을 때 자주 찾는 곳이 있다. 강원도 홍청군 팔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참선원. 울긋불긋 붉게 물든 단
풍사이로 여기저기 고개를 빼꼼 내민 기암괴석, 인근에는 비취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홍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야말로 천하 비경이다. 사찰로 향하는 오솔길 사이로 담대하게 버티고 있는 거대한 장송이 두팔을 벌려 나를 반긴다. 도심에서 찌든 때를 씻어내는 마음의 안식처로는 아주 제격이다. 이곳 사찰과의 인연은 지난 2년 전부터 시작 됐다. 토끼같은 자식들의 아빠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 그리고 부모님의 아들로서, 침체된 나 자신을 되돌아 보고 미래를 구상하기 위해서다. 주지인 칠순의 무애스님의 가르침은 내 삶의 길잡이다. “사람의 귀와 눈이 두개이고 입이 하나인 것은 남의 말을 잘 경청하라는 거야”, “내 주장을 내세우기 전에 책임과 의무는 다하고 있는지 되짚어 봐” 어두컴컴 한 망망대해에서 등대가 배의 안내자 역할을 하듯 주지스님은 나에게 언제나 등대같은 존재다. 가끔 찾아가는 30분 거리의 장터에서 느끼는 넉넉한 시골인심은 또 다른 볼거리다.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 맛깔스런 토속음식,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갖가지 나물. 이런 풍경에서 여유를 느끼곤 한다.

하지만 환갑이 지난 아들을 향한 팔순 할아버지의 애틋한 부정(父情)을 목격하고 부터 내 가슴은 먹먹해졌다. 할아버지는 온종일
장애를 앓는 아들의 팔, 다리 노릇을 하고 있었다. 행여 음식 흘리랴, “물” “물” 외치면 먹여주랴. 뒤뚱뛰뚱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랴. 내내 안절부절 못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할아버지의 내리사랑이 훈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며느리는? 할머니는? 섣불리 판단할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평생을 아들 뒤치닥거리 하다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부자(父子)간의 정(情)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흔히들 아버지와 자식간의 관계를 천륜(天倫)이라고 한다. 부자(父子)간의 기구한 운명에 관한 사연이 매스컴을 탔을 때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6ㆍ25 전쟁 당시 두 다리를, 아들은 월남전에서 두 팔을 잃었지만, 서로 부족한 부분을 의지하며 고단한 삶을 헤처나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뗄래야 뗄수 없는 천륜을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갑자기 아들과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음 씀씀이, 행동 하나하나 나랑 판박이란 것을 느낄때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번진다.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동안 가족들에게 너무 소홀했고 어린 아이처럼 투정만 부린 나 자신이 왠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색단풍을 휘감는 고즈넉한 산사(山寺)가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다. 그동안 내 어깨를 짓눌러 왔던 모든 것들,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뚜벅뚜벅 헤쳐나가겠다.<한동건설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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