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김창균 作 / 가루가 된 말
[시가 있는 아침]김창균 作 / 가루가 된 말
  • 임영석
  • 승인 2020.10.1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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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가 된 말

-김창균 作

 

나는 반평생 칠판을 마주하고 살았다
백묵이 칠판에서 조금씩 자신을 소멸할 때
한 시절 나의 말은 흰색이었다.
아이들은 수시로 칠판을 지우고
칠판의 흰 말들을 지우고
가끔 막대기로 툭툭 때려 지우개를 턴다
지우개에 붙어 있던 말들을 털고
마침내 말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져 가도
몇몇은 입을 막거나
못본 척 하거나
깔깔거린다
가루가 된 말들과
가루가 될 말들
저 우수수 털리는 자음과 모음

생각해보면 칠판을 마주하고 산 세월은
참으로 아슬아슬하여
못내 잘못 쓴 받침처럼 기우뚱했다

 

*선경문학상 특집 신작시

계간 ‘발견’ 2020년 가을호에서

 

 

사람이 자기 삶의 직업에 애착을 갖는 것을 보면 천직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이들 앞에 서서 선생을 한다는 것이 칠판에 하얀 백묵 가루를 마시고 살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 그래 그 가루가 사람의 마음을 활짝 꽃 피게 한 빗방울이었고, 바람이었고, 시간이었고, 금가루였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김창균 시인 스스로 고백했듯이 칠판지우개로 칠판을 지우며 가루가 된 말들과 가루가 될 말들이 자음과 모음으로 아이들의 가슴을 뛰어놀게 한 터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스로 그 삶이 행복했는가를 물었을 때. 당당했냐고 물었을 때 도로에 잘못 쓰인 이정표는 아니었는지 마음을 조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참 많은 직업이 있다. 선생을 한다는 것은 그래도 교과서라는 기준의 척도에 의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자기 일에 대한 긍지와 확신, 그리고 삶에 대한 보람이 덧붙여진다면 그보다 행복한 직업은 없을 것이다. 선생이란 직업은 삐뚤어지는 나뭇가지를 바로 묶어 주는 일이다. 아이들의 마음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그 방향을 가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슬아슬하여 기우뚱했다고 말했다고 본다. 삶의 여정이 선명하게 보이는 물속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투명한 시다.

임영석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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