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다시 마을의 시대로
[문화칼럼]다시 마을의 시대로
  • 전영철
  • 승인 2020.10.18 2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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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철 [한국지역창생연구소장]
△전영철 [한국지역창생연구소장]

어릴 적 원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할머니에게서 목숨을 구해 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은 꿩과 치악산에 얽힌 옛날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산이 깊은 곳엔 골짜기마다 마을을 이루고 사람들이 살았고, 그로 인해 이야기가 많았다. 마을의 이야기가 많은 지역일 수록 그 만큼 지역의 서사가 말하는 역사가 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려 때에는 백 개가 넘는 절터가 원주 시내를 둘러싼 농촌지역에 있었다 하니 고려 초기에는 불교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준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도 하더라도 농촌은 나름 마을 단위의 공동체를 이루며 그 당시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농촌은 어느 한 시인의 말처럼 “촌아 울지 마”가 되었다.

원주는 남한강과 섬강, 치악산과 백운산 골짜기 그리고 문막 평야를 바라보는 마을들이 그대로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성장하는 도시이미지로 인해 마을과 마주하는 도회지 손님들이 깜짝 놀라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도시가 가까운 농촌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농촌도 쇠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던 흐름의 멈춤을 가져온 것이 바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다. 사람들은 주말이면 신림IC를 빠져나와 황둔으로, 황둔에서 다시 영월 무릉도원면의 운학리나 법흥리 계곡까지 들어가 자연 속에서 캠핑을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일요일 점심 즈음이면 과거 리조트가 밀집된 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 떠나갔던 시골 마을이 대안적인 삶의 공간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농촌이나 산촌에 대한 접근이 농촌활성화 사업이나 권역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하드웨어 중심이나 몇몇 마을 리더 중심의 사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성공보다는 실패의 흔적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원주는 이 같은 상황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일자리를 로봇이나 컴퓨터에게 빼앗기고 다시금 시골 마을로 돌아오기 일보직전인데 고령화와 소도읍 중심으로 재편된 편의시설과 복지시설로 마을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러한 시기 원주시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을 공모하여 3년간 지원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어 보인다. 마을 만들기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그나마 강원도는 새 농촌건설 사업을 통해 자그마한 역량들이 모여 큰 사업으로 이어져 하드웨어적인 지붕개량이나 가옥구조의 변화, 도로의 개설 등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농촌 역시 도시의 빠른 삶과 다를 바 없는 구조로 진행되어 버렸다. 이제는 다시금 농촌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한 시기이다.

자꾸 편안함을 추구해 사라져가는 우리의 세시풍속이나 마을의 공동체를 통한 돌다리 놓기, 섶다리 만들기 등등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다양한 활동이나 기술들을 기록하고 다시금 살려내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도농복합도시의 경우 도심지역에 관심이 집중된 나머지 밀집도가 낮아 대안적인 삶의 공간으로 떠오르는 농촌지역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이 필요한 시기이다.

또 귀농귀촌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여행처럼 시작하는 지역 살이 실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최근 ‘남원에서 살아보기’,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 등의 프로젝트는 지역으로의 이주를 강요하지 않은 스스로 귀농과 귀촌을 탐색하는 프로그램 같은 실험이 필요하다.

농촌다움이 사라진 시대 우리는 어딘가 기댈 수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시금 마음을 줄 고향인 마음속의 외갓집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원주의 마을들이 그런 환대의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마을의 시대는 이미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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