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전복이 作 / 빨래
[시가 있는 아침]전복이 作 / 빨래
  • 임영석
  • 승인 2021.05.09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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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전복이

 

햇볕이 따사로운 나른한 휴일 아침

세탁기에 밀어 넣은 엄마의 블라우스

수백 번 텀블링으로 어제를 우려낸다

 

삐걱대며 돌아가는 세탁기 사이사이

지난 날 얼룩진 삶 거품일어 빼곡할 때

내 다만 한 마리 짐승, 울음조차 잃었다

 

햇살 고운 옥상 한편 엄마를 널어놓고

바람이 가져갈까 구름이 훔쳐갈까

이승과 저승사이를 집게로 꽉 찝는다

 

전복이 시조집 『커피가 그린 그림』, 《목언예원》에서

 

시라는 것은 과거의 생각을 얼마만큼 현실적으로 더 가깝게 접근해 바라보는 꽃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모든 어머니가 자기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다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사랑도 느낌도 숨소리도 달랐을 것이다. 전복이 시인의 시조집에는 첫 시조집이 갖는 낯섦을 많이 지워내려고 노력했다. 그 속에는 나이가 가져다준 경험과 세월이 가져다준 삶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읽어보는 시조 「빨래」도 현실과 상상 사이의 고리가 빨래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의 블라우스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며 세탁기 속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세탁물을 꺼내 옥상 빨랫줄에 빨래를 널면서 어머니의 흔적이 지워질까 사라질까 싶어 빨래집게로 빨랫줄에 꽉 찝어 놓았다고 말한다. 사람의 생각도 빨래와 같은 삶의 흔적들이 많을 것이다. 두 눈으로 다 사로잡지 못하는 일들도 무수할 것이다. 어머니라는 말 한마디는 세상의 어느 말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쉼터이기도 하다. 늘 어머니 품에 들어 쉬어만 가는 자식들이 아니었을 가 생각한다. 그런 어머니의 옷을 빨아드리며, 그것도 기계적 힘을 이용하여 빨면서 기계적인 사랑에만 익숙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 봐야 할 것이다. 빨랫줄 위는 저승이고 빨랫줄 밑으로는 이승이라는 그 경계선이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순간, 어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갈 것이다. 그러니 늘 마음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게 지켜내야 함을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임영석<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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