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자막들]그릇
[세상의 자막들]그릇
  • 임영석
  • 승인 2021.05.16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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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임영석 [시인]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공정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민주 사회라고는 하나 몇 %의 민주주의를 지켜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론의 자유라 하여 책임지지도 못할 근거 없는 말들이 얼마나 많이 생산되고 유통되고 있는가. 한마디로 그릇의 크기가 제 그릇이 아닌데도 억지로 그 그릇의 역할을 하려니 여기저기 흠만 철철 넘쳐흐르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요즘 들어서 왜 그릇의 크기가 제각각 다르게 만들어 사용하는지 확실하게 의문이 풀렸다. 접시는 접시대로, 옹기는 옹기대로, 주전자는 주전자대로 각기 그 쓰임과 용도가 다르다. 그런데 사회활동이 많아지면서 직장에서의 지위가 바로 자신의 마음의 크기로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그 직장에서 인정받고 능력을 발휘하니 직급도 상승했겠지만, 그 상승분이 모든 사람을 품에 품어주고 보듬어 주는 인격의 완성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흙을 담아 나르는 데는 흙으로 구운 그릇은 깨어진다는 위험성이 더 크고, 효율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불을 담아두는 목적의 그릇은 쇠나 점토로 된 화로를 이용했다. 그릇은 그 쓰임과 일치되는 용도여야 효율성이 높고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그 그릇의 용도가 소질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계산식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화학이나 수학 쪽의 공부를 해야 하고, 손재주나 그리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손으로 만드는 기술 쪽의 공부가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정말 내 자식이 무엇에 소질이 많은지 그 가능성을 확인할 만큼 충분한 기회의 교육이 학생들에게 제공이 되는지 의문이 든다. 시험 점수만 높게 나오면 최고로 치는 세상이다 보니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에 더 의지하고, 여기저기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차량들이 학생들을 학원으로 실어 나르는 모습은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흔히 목격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음식을 덜어내듯 / 내 안의 너를 얼마간 퍼낸다 / 네가 줄어져 이만하면 너를 업고 /사막을 건넬 수도 있겠다고 / 저으기 안도한다 // 그런데 아니다 / 너를 덜어내고도 너는 많이 남아 있고 / 오히려 내가 줄어져 / 오장육부 수척하고 / 눈 침침 귀 멍멍의 / 몰골이 되었다 // 운명이다 / 너는 나의 운명이고 / 나는 너의 운명이다 / 운명끼리 손잡고 / 땅끝 너머 더 끝까지 / 갈 수밖에 없다

▲김남조 시 「운명」 전문

조기교육도 중요하고, 선행학습도 중요하고, 체력을 강화하기 위해 태권도나 수영 등 체육활동도 중요하나 사람의 마음이 담기는 마음 그릇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 마음 그릇도 만들어지지 않은 아이들이 조기교육을 해서 담을 수 있는 지식의 양이 얼마나 될 것인지, 담아도 영원히 가슴에 담고 살아갈 수 있는 뜨거운 공부여야 그릇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가 있다. 그런 절차적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아이들이 민주주의의 방식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 걱정이다.

김남조 시인은 「운명」이란 시에서 “음식을 덜어내듯이 / 내 안에 너를 얼마간 퍼낸다”라고 말했다. 내 안의 음식이란 마음이다. 가수 나훈아 씨는 그의 노래 ‘테스형’에서 “세상이 왜 이래”라고 물었다. 사람이 사람다운 그릇으로 취급받아야 하는데, 모두 일회용 그릇으로 변질시켜 취급을 하다 보니, 한 번 쓰고 버린 쓰레기들처럼 너무 많은 사람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허덕이며 살고 있다. 일회용 그릇을 사용하여 쓰레기만 배출할 것인지, 고급 그릇을 사용하여 멋과 삶의 가치를 누리고 사는 사람이 될 것인지? 양심과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1회용 접시에 밥은 먹지 않을 것이다. 고용도 그와 같은 의지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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