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김형로 作 / 이만 원
[시가 있는 아침]김형로 作 / 이만 원
  • 임영석
  • 승인 2021.05.16 2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만 원

김형로

등단했다고, 시상식에는 꼭 가봐야겠다고 서울 달동네 사는 친구가, 스무네 시간 맞교대하고 최저임금 받는 친구가, 심야 버스 편으로 돌아가 새벽 출근할 친구가, 온돌처럼 밑바닥 따신 시를 쓰라며 건네준 구겨진 봉투 하나 꽃을 못 사 왔다고 꽃값으로 생각하라고, 종일 몸으로 덥힌 만 원 한 장 오천 원 두 장

김형로 시집 『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 《상상인》에서

마음을 주고받는 좋은 친구 하나를 곁에 두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내게 그런 친구가 있는가 생각을 하면, 나는 없다고 말한다. 다 경제적 잇속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득이 되는지 먼저 생각하고, 서로의 고민이나 아픔을 보듬어 주기보다는 '나 이런 친구 알고 있어'라는 장식용이 아니었던가 생각을 해 본다. 김형로 시인의 시 「이만 원」을 읽다 보니, 1985년 내가 등단했다고 동인회에서 등단 기념패를 줄 때 청주에서 대전까지 와준 선생님이 있었다. 수년 전에 작고한 박용삼 선생님이다. 요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찾아뵙고, 돌아가시고 문상을 가서 뵌 것이 전부다. 얼굴도 모르는 젊은 친구를 중견 시인이 찾아와 축하를 해 주며 격려를 해 준 마음이 고마웠다. 김형로 시인의 친구,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온돌 밑에 깔아 둔 따뜻한 돈 이만 원을 봉투에 넣어 꽃값이라고 건네준 마음은 피 같은 삶의 꽃다발일 것이다. 시를 쓰며 눈물 콧물 닦아줄 수 있는 친구들을 나는 다 잃었다. 눈물 콧물 닦아주는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내 마음속의 친구를 만들기 위해 글을 쓴다. 때로는 별이 되어서, 나무가 되어서, 강물이 되어서, 어둠이 되어서 나를 호되게 야단을 쳐 주는데, 외로워하지 말란다. 서글퍼 하지 말란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돈 한 푼 건네주지 않지만, 그의 삶을 내게 다 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