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저물어 가는 ‘원창묵의 시간’
[비로봉에서] 저물어 가는 ‘원창묵의 시간’
  • 심규정
  • 승인 2021.05.16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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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심규정[원주신문 발행인·편집인]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거쳐 세계적인 경영사상가로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아웃라이어(outlier)’를 펴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아웃라이어는 ‘틀 밖의 사람’, 다시 말해 ‘보통 이상의 성취를 이룬 사람’(고성과자)을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강조했다. 하루 3시간씩 10년 동안 10,000시간을 꾸준히 달성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의지와 노력뿐만 아니라 ‘환경’, ‘배경’, ‘기회’라는 숨은 키워드도 아주 중요하다고 봤다.

횟수로 11년째 ‘원주호(號)’의 조타수 역할을 해온 원창묵 원주시장은 대표적인 아웃라이어 가운데 한 명이다. 2, 3대 시의원을 거쳐 3, 4대 시장선거에서 거푸 낙선 후 5, 6, 7대 내리 시장에 당선돼 기염을 토한 점, 1, 2, 3, 4대 정통 행정관료 출신의 시장에 이은 전문직 시장(건축사)인 점, 선거 과정에서의 극적인 상황에서 보듯 ‘관운-천운’의 기운을 보면 그는 분명 ‘환경’, ‘배경’, ‘기회’ 삼박자를 고루 갖춘 행운아다. 지역발전에 괄목할 만한 공을 세운 건 부인할 수 없다.

원 시장이 임기 1년을 남겨 두고 시의회에서 각종 사업 관련 예산이 연이어 제동이 걸려 그 배경을 둘러싸고 구구한 해석을 낳고 있다. 대표적인 게 판부면 신촌관광단지개발사업이다. 출자를 위한 타당성 검토 용역비 4,000만 원이 전액 삭감됐다. “차기 시장이 계속 사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라는 게 시의원들의 대체적인 기류다. 원주시로서는 원 시장 임기중 결국 헛물만 켠 셈이 됐다.

말 많고 탈도 많았던 화훼특화단지개발사업은 신촌관광단지개발사업의 예고된 전조증상이나 다름없다. 같은 관광단지개발사업이란 점, 민간자본 1,000억 원 이상을 유치해 추진할 계획인 점 등등. ‘사계절 관광지’, ‘미래먹거리’ 등 온갖 장밋빛 전망이 난무했지만, 결과는 연목구어다. 두 사업은 애초부터 성급한 무리수였다.

시의회가 제동을 건 예산안은 또 있다. 자작나무가 밀집된 호저면 산현리 9만 9,000㎡ 일대에 추진해온 자작나무숲 문화공원 사업의 실시설계 용역비 2억 원도 싹둑 잘렸다. ‘사업 타당성과 사전행정절차 미흡’, ‘나중에 수백억 원의 사업비가 추가될 수 있다’라는 시의원들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원창묵 시장으로서는 꽤 서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신촌관광단지개발사업 예산이 삭감되고 원주시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원 시장의 감정선이 그대로 녹아있는 듯하다. ‘적신호’, ‘제동’ 등 저널리스틱한 언어가 담겨있다. 오죽했으면 담당과장, 팀장의 부서가 관광개발과인데 관광정책과로 오기(誤記)했을까. 사업 무산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려고 했는데, 의회에서 발걸이해서 막혔다.”라는 속내를 은연중에 내비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시의회는 원창묵 시장에게 막힌 출구를 마련해준 셈이다. 일부 토지소유주, 주민들의 반발이 감지되고 있지만, 시의회가 원 시장의 부담을 훌훌 털어준 것이다. 이런 시의회에 솔직히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니 편 내 편을 떠나 원주시의 미래를 위해 대승적으로 결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원창묵 시장은 속 깊은 시의회의 결단을 존중해야 한다.

요즘 긴 안테나를 곧추세워보니 차기 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원창묵 원주시장의 행보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당내 경선을 염두에 둔 듯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는 귀뜸이다. 1년여의 남은 임기는 그저 찰나일 뿐이다. 그래서 당연한 행보로 볼 수 있다. ‘추진해온 사업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겠다.’라며 원 시장이 보여준 그간의 ‘조급증’, ‘강박증’, ‘집착증’을 이제는 보여주면 안 된다.

전형적인 ‘워커홀릭’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빛과 그림자는 늘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수많은 치적을 쌓았으니 ‘앓던 이’ 같은 사업은 미련을 갖지 말고 과감하게 빼야 한다. 원 시장이 현재라는 교차로에서 과거의 사슬에 갇혀 미래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저물어 가는 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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